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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균 10년 만의 인터뷰 "선장이 남았으면 희생 줄었을 것"

입력 2024-04-16 16:32 수정 2024-04-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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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세월호 참사 당일 침몰 소식을 언제, 어디서 들었나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4월 16일 아침이었죠. 제가 집무실에 있었는데 그때가 9시 24분쯤이었습니다. 상황 담당관이 와서 보고하기를 '진도 관매도 인근에서 다수의 여객이 승선한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 그런 보고를 다급하게 했어요. 그래서 저는 즉흥적으로 '대형 사고가 일어났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고. 제 집무실이 5층에 있는데 6층 상황실로 바로 올라갔죠. 올라가니까 그때 저희 참모들은 미리 먼저 와서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고, 저도 도착하자마자 바로 상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받고. 빨리 제일 가까운 구조 지역이 어디냐, 빨리 출동 시켜라. 그런 지시를 내리고 계속 어떤 상황인지, 그 당시에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저희가 파악하기가 좀 어려운 그런."

Q2. 처음 보고를 받을 당시 세월호의 상황은 어땠나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사고가 일어나고 벌써 전복이 한 여기가 세월호가 기울어진 게 한 45도 정도 되었고요. (해경) 123정이 도착을 했을 때 벌써 (세월호가) 한 45도에서 50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불과 한 20분 정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게 9시에 한 50분경이 된 건데. 그때 그 상황은 더 이상 어떤 구조를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4층 데크까지 이렇게 벌써 침수가 되고 해서 구조 세력이 진입을 할 수 없었고, 안에 있는 승객도 나올 수 없었던 그런 상황이라고 이제 검찰이 그때 주장을 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너무 배가 이제 급속하게 이렇게 전복이 되는 바람에 어떤 다른 조치, 그러니까 지금 갑판에 나와 있는 그런 승객들 구조하고 이런 거 외에 특별하게 안으로 더 진입을 한다든지, 어떤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이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급박하게 전복이 됐다라는 게 보고 사항이었고."

Q3. 구조 실패의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퇴선 명령은 어떤 배가 어떤 조난을 당했을 때 거기에는 배의 위험 상황, 선박 안에 있는 승객들의 상황, 그 다음에 주변의 여러 가지 여건들을 이렇게 감안을 해서 선장이 조치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거든요. 최후의 비상 수단. 그런데 이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선장이 할 수 있는 겁니다. 밖에 이제 구조 세력은 뒤에 사고 일어나고 나서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된 뒤에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거고. 처음에 그런 상황은 절대적으로 선장이 판단할 사항인데 그 당시에 이런 판단을 하고, 조치를 해야 될 선장과 선원이 이렇게 승객들을 두고 탈출을 해버린 상황이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그걸 알게 되고, 퇴선 관련된 조치도 지시도 내려봤죠. 그런데 그때는 이미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버리는 상황이 돼서 또 퇴선 조치를 한다고 바로 승객들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에요. 이렇게 배가 전복이 돼 있는 상황에서는 안에서 선원이나 선장이 그 미로 같은 그런 구조에서 안전하게 승객들을 안내를 해주지 않으면 또 승객들은 또 패닉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질서정연하게 단기간에 다수 인원이 나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선장과 선원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끝까지 남아서 안전하게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그 역할을 해줬었어야 되는데 이렇게 나가버리고, 탈출을 먼저 해버렸었으니까. 그 실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

Q4. 구조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에게 있다는 의미인가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왜 해경이 진입을 안 했느냐. 123정이 이렇게 도착을 해가지고 여기서 밖에 승객들도 구조도 하고 더불어 또 우리 직원이 처음에 먼저 이제 배에 승선을 시도를 하다가 기울기가 급하니까 미끄러져 내려오고. 그리고 수차례 반복을 했는데 마지막 한 사람이 겨우 조타실까지 접근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 직원의 증언에 의하면 (선내) 방송을 하려고 방송 장비까지 결국 거기까지는 도착을 했는데 결국 또 방송도, 방송 장비까지 끝까지 이렇게 접근을 못하고 실패한 그런 상황이었는데. 제일 좀 아쉬운 부분이 여기서 선장과 선원이 끝까지 남아서 저희가 이제 저희가 교신을 계속하면서 승객의 대피 조치 이런 걸 했었으면 이 정도 큰 희생은 발생하지 않았지 않았을까. 희생을 많이 줄이지 않았을까라는 그런 정말 큰 아쉬움 정말 너무나 통탄스러운 그런 부분입니다."

Q5. 정부의 해경 해체 계획을 알고 있었나요. 해경 해체 방침을 곧바로 수용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제가 그 사실(해경 해체)을 알게 된 건 이제 대통령 담화하는 날, 당일날 아침에 저희가 (해경) 3009함에 거기에 있었는데. 대통령은 담화하는 날 저희 현장에 있던 간부들하고 같이 담화 내용을 TV로 시청을 했었는데. 그때 그 순간 담화하는 그 내용을 듣고 저희도 저도 그걸 알게 됐고 너무나 큰 충격이었죠. 그 전에 언론에서 해경 책임을 물어서 해경을 해체해야 된다라는 그런 주장이 보도가 되기는 했었습니다만 저는 지나가는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고 생각을 했었고요. 거기에 신경을 정말 진짜 안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게(해경 해체가) 발표가 돼서 너무나 그야말로 쇼킹했었고, 그래서 당장 저는 조직이 없어지는 마당에 어떤 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당시에 사의 표명을 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그 당시에 유가족분들께서 해경이 해체되면 앞으로 수색은 누가 하느냐고 기자회견도 하시고 해서. 그때 제가 그만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거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고. 제가 이 남은 부분이 끝까지 책임지고 수색을 마쳐야 되겠다 해서 다시 사의를 거둬들이고 나서 그때 제가 수색 구조 관련해서 언론 브리핑이 예정돼 있었는데 대통령이 또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까 우리 해경에서도 입장을 표명해야 될 그런 상황이었고 그래서 그 당시에 현장에 있던 그 참모들하고 상의를 해서 발표문에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입장 발표를 하게 됐었습니다. 국정 최고책임자 입장이니까 저희가 거기에 또 따라가는 게 맞다. 또 내부 의견이 모아져서 입장 표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Q6.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라와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이후 수사 과정에 대해서도 국민이 믿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데 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나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제가 사고 이후에 한 재판까지 9건의 조사와 수사 마지막에 이제 재판까지 이렇게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떻게 밝혀진 걸 보고, 또 제가 또 이렇게 기록을 남겨야 되겠다 해서 이제 또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어떤 사고 초기 검찰이 합동수사단을 만들어서 이 사고 원인 규명까지 다 하고 어떤 의혹 관련되는 부분을 이렇게 밝혔는데. 저도 그때 놀란 게 그때 밝혀진 내용이 저희가 계속 그 이후에 수사받고, 조사받고, 재판까지 받은 그 내용에서 크게 거의 벗어나는 게 없었어요. 그때 거의 거의 대부분 이렇게 규명이 됐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걸 생각을 해보면 워낙 참혹한 사고였고 이런 사고에 대해서 처음에 어떤 사고의 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서 계속 이제 의혹이 제기되고, 또 그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조사와 수사를 또 하자는 여론이 있었고, 또 거기에 따라서 기구가 만들어지고. 이게 계속 반복이 됐었죠. 그래서 재판에서 그런 게 객관적으로 규명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계속 수사와 조사가 반복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되고요. 또 하나의 원인 하나가 사고가 또 정치화돼서, 또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이러다 보니까 객관적이고 밝혀진 사실도 계속 또 불신을 받게 되는 그런 결과 때문에 오랫동안 이런 일이 계속되지 않았나."

Q7. 최근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을 냈는데,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저희가 제일 잘못 알려졌다고 하는 부분이 세 가지 정도를 들 수가 있는데. 첫 번째가 그때 해경이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못했다거나 아니면 또 구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그런 거. 두 번째가 퇴선 명령만 내렸었으면 다 구할 수 있었다라는 거. 세 번째가 왜 진입해서 구하지 못했냐 뭐 이런 상황들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Q8. 지난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많은 생각과 정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개인적인 그런 것도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게 그 당시에 법원에서 판단이 재판 과정 1심, 2심, 3심을 거치면서 그 사고 당시에 상황 제가 앞에 말씀드린 대로 선박이 떠다닐 수 없는 배가 이렇게 떠다니면서 사고가 나서. 그것도 통상적인 배라면 한 6시간에 걸쳐 서서히 전복이 되는데 이거는 불과 1시간 반 만에 완전 전복이 되서,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 그 다음에 (해경) 123정이 도착을 해가지고 거기서 승객들을 구조를 하고 그 이후에 불과한 한 20여 분 만에 그런 상황. 그 다음에 선장과 선원이 탈출해버린 상황에서의 구조상 이런 것에 대해서 법원이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저희가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적인 판단이었고, 제가 바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었고. 그리고 또 저희 직원을 지휘하는 그런 입장에서 이런 참담한 사고가 나서 많은 정말 희생이 일어났던 것에 대해서 도의적인 책임까지 저희가 무죄를 받았다는 건 아니다. 거기에 대해서 항상 또 유가족분들이나 국민들한테 또 죄송한 마음을 여러 개 가지고 있습니다."2

Q9.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게 옳다고 생각하나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어떻게 기억하느냐보다는 저는 앞으로 이걸 큰 교훈으로 삼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말 뼈아픈 교훈으로 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사고 일어나고 나서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유가족분들이나 또 많은 국민들한테 아픔과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데. 어떤 아픔으로 기억되는 것,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앞으로 이런 비극이 아픔이 다시는 생각되지 않도록 정말 이 사건을 우리가 '징비'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경계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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