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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X' 공동 대응”…WHO 첫 '팬데믹 조약' 추진, 성공할까

입력 2024-04-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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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6일 화이자사의 코로나19 백신이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다. 〈사진 EPA=연합뉴스〉

2020년 12월 26일 화이자사의 코로나19 백신이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다. 〈사진 EPA=연합뉴스〉

'질병 X'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적으로 심각한 전염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미지의 병원체에 붙인 이름입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전히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전염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만약'이 아니라 '언제'의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병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질병 X'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치명적인 의료 재난 앞에 각국이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바이러스 위협에 대한 사전 연구와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됐죠. 재앙적 질병 앞에 국가간 기본적인 협력 체계조차 없다는 한계도 드러났습니다.

이에 지난 3월 194개국의 관계자들이 모여 '질병 X'로 지칭한 미래 전염병의 위협에 대처하는 글로벌 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사상 첫 '팬데믹 조약'입니다. 최근까지 9차례 국제 협상이 진행됐는데 결과는 다음달 제77차 세계보건기구 연례 총회에서 제출될 예정입니다.

조약은 각국 정부와 기관, 국민들이 코로나 위기의 실수를 피하고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같은 협의가 신종 전염병의 조기 발견과 의약품 및 백신에 대한 공정한 접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사안별로 입장 차가 커 최종안에 합의할 수 있을지 전망은 아직 불투명합니다.

백신의 '라스트 마일'…공동 책임 범위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제네바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과 부유한 국가, 제약 회사들이 생명을 구하는 의료 자원을 공유하는 데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팬데믹 당시 아프리카의 백신 접종률은 100명당 35.92명으로 유럽연합(EU)의 100명당 195.8명의 1/6 수준에 그쳤습니다.

코로나 위기 동안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글로벌 불평등이었습니다. 부유한 국가들이 수십억 개의 백신을 사들이는 동안 저개발국은 최소한의 접종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팬데믹 기간 나이지리아 질병통제예방센터장(CDC)이었던 이헥 케아주는 “백신에 접근할 수 없었던 나이지리아 여론의 분노는 컸습니다. 이것이 신뢰 결핍의 핵심이며 매우 어려운 논의가 진행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협약을 통해 국가간 책임 범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개별 국가 입장에서 미래 상황을 가정해 백신 등 의료 물자 지원 범위를 합의하긴 어려운 겁니다. 미국 폭스TV는 '팬데믹 조약' 협의에 대해 “바이든 정부가 WHO에 미국의 주권을 팔아 넘기는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WHO 팬데믹 관리 능력은 있나”

WHO는 전염병 위기에 대한 범정부적 경보 시스템 구축과 병원체 데이터 공유, 의약품 생산에 대한 글로벌 협력 개선 등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팬데믹 조약'은 법적인 강제가 아니라 세계 각국이 지켜야 할 윤리적 의무에 준한다고도 했습니다.

국가적 이해관계를 떠나 인류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WHO의 코로나19 대처를 문제 삼았습니다. 당시 WHO가 중국을 두둔해 초기 대처가 늦었고 공기 전파를 통해 확산된다는 사실을 늦게 인정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WHO의 존재 가치를 따진 겁니다.

중국 “자국 정책 영향 미쳐선 안 돼”

조약의 적용 범위도 논란입니다. 공화당 소속 브래드 웬스트럽 미 하원 코로나19 팬데믹 소위원장은 “미국민의 권리와 미국의 지적 재산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국 기업들의 이해 관계를 대변한 셈인데 실제 국가간 협약 이면에 거대 제약 회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봉쇄 조치 시행, 치료 및 진단, 예방 접종, 입국 금지 관련 등은 조약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팬데믹 조약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최초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 우한 화난수산물시장. 〈사진 박성훈 기자〉

코로나19 최초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 우한 화난수산물시장. 〈사진 박성훈 기자〉


관영 차이나 데일리(China Daily)에 따르면 중국은 팬데믹 조약 회담에 참석해 “개도국의 실질적 필요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글로벌 협력은 지지하지만 자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미국은 대선이 불확실성을 높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7월 미국을 WHO에서 탈퇴시키는 공식 절차를 시작했죠.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번째 행보 중 하나가 이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조약 참여 여부가 180도 바뀔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다른 국가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팬데믹 '질병X' 후보는…인수공통전염병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연구 우선 순위 감염병. 〈사진 WHO 홈페이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연구 우선 순위 감염병. 〈사진 WHO 홈페이지〉

팬데믹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전염병은 대부분 인수공통바이러스입니다. WHO가 공개한 긴급 연구 우선 순위 질병 관리 명단에는 코로나19, 에볼라, 라사바이러스, 메르스, 니파바이러스, 지카바이러스 등이 포함됐습니다.

코로나19는 변이 가능성 때문에 여전히 잠재적인 팬데믹 위험 질병이고, 에볼라와 유사한 라사바이러스, 인도,방글라데시에서 발견된 박쥐 유래 니파바이러스, 매년 변이가 발견되는 조류인플루엔자 모두 위험 요소입니다.

감염병 유행 주기는 과거 10~30년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사스(2002)-신종플루(2009)-메르스(2015)-코로나19(2020)까지 갈수록 빨라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바이러스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한 걸까요. 전세계 7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19 경험이 인류에 '백신'이 됐을지 시험대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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