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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적 계엄 문건, 그러나 내란 음모는 아니다" 이유는?

입력 2024-02-22 10:15

검찰, 조현천 직권남용 혐의 기소…내란 예비·음모 혐의는 무혐의 처분
계엄 문건엔 "시민들이 화염병 투척, 방화, 무기 탈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엄 선포되면 기계화사단 6개, 기갑여단 2개, 특전사 6개 부대 투입"
"계엄 해제 시도하면 국회 무력화…계엄사령관엔 육군참모총장 건의"
조현천 직권남용 재판 시작하기도 전에 소강원 전 참모장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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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현천 직권남용 혐의 기소…내란 예비·음모 혐의는 무혐의 처분
계엄 문건엔 "시민들이 화염병 투척, 방화, 무기 탈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엄 선포되면 기계화사단 6개, 기갑여단 2개, 특전사 6개 부대 투입"
"계엄 해제 시도하면 국회 무력화…계엄사령관엔 육군참모총장 건의"
조현천 직권남용 재판 시작하기도 전에 소강원 전 참모장 '사면'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가운데)이 지난해 3월 자진 입국하고 있습니다. 조 전 사령관은 이날 5년 동안 들어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도주한 것이 아니고 귀국을 연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가운데)이 지난해 3월 자진 입국하고 있습니다. 조 전 사령관은 이날 5년 동안 들어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도주한 것이 아니고 귀국을 연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검찰이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기무사에 비밀 TF를 구성하고, TF 팀원들에게 '위헌적 내용이 포함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란 예비·음모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위헌적 내용이 담겼지만, 그 문건을 작성한 것만으로는 '조직화된 폭동의 모의나 실행을 위한 의사 합치'에 이르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 가운데 일부입니다. 기무사는 탄핵 선고 이후 상황을 예상하면서 '시민들이 화염병을 투척하고, 경찰서에 난입해 불을 지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적어 놨습니다. 〈출처=JTBC〉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 가운데 일부입니다. 기무사는 탄핵 선고 이후 상황을 예상하면서 '시민들이 화염병을 투척하고, 경찰서에 난입해 불을 지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적어 놨습니다. 〈출처=JTBC〉

기무사 "화염병 투척·방화·무기탈취 예상된다"

검찰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짚어보려면 이른바 '계엄 문건'의 내용부터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기무사는 2017년 2~3월 8쪽 분량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여기에 딸린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작성했습니다.

국회가 2016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직후이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있던 시기입니다.

기무사는 탄핵선고 이후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상했습니다. 문건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탄핵심판 결과에 불복한 대규모 시위대가 서울을 중심으로 집결해 청와대·헌재 진입 점거를 시도
· 정부가 대규모 시위를 차단하면 국민감정이 폭발하고 동조 세력이 급격히 규합되면서 화염병 투척 등 과격양상 심화
· 사이버공간에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진보(종북) 또는 보수 특정 인사의 선동으로 집회·시위가 전국으로 확산
· 학생·농민·근로자 및 시민단체가 가세하고, 일부 시위대가 경찰서에 난입해 방화·무기탈취를 시도하는 등 심각한 치안 불안 야기

평화적으로 촛불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화염병 투척' '경찰서 난입' '방화·무기탈취'를 예상했습니다.

시민을 향해 군대를 투입하는 '위수령'과 '계엄령'을 검토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런 예상에서 나왔습니다.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 가운데 일부입니다. 기무사는 계엄을 선포한 뒤 전국에 기계화 사단과 특전사를 배치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습니다. 〈출처=JTBC〉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 가운데 일부입니다. 기무사는 계엄을 선포한 뒤 전국에 기계화 사단과 특전사를 배치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습니다. 〈출처=JTBC〉

기계화사단 전면 배치…전국에 특전사 투입

기무사는 문건 속 '계엄임무수행군 판단 및 편성' 부분에 기계화사단 6개(8·11·20·26·30사단, 수기사), 기갑여단 2개(2·5기갑), 특전사 6개(1·3·7·9·11·13여단, 707대대) 부대를 투입한다고 적었습니다.

청와대, 헌재, 정부청사, 국방부, 광화문, 여의도(국회)에 어떤 부대를 몇 명씩 배치할지도 정해놨습니다.

경기도엔 2개 기갑부대와 9여단, 강원도엔 11사단과 3여단, 충청도엔 8사단과 13여단, 전라도는 26사단에 11여단, 경상도는 수기사와 7여단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있습니다.

시민을 향해 중화기로 무장한 기계화 부대와 특전사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비판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상당수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조 전 사령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시에 따랐다 하더라도 잘못된 일이라는 주장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최선의 계획을 세웠을 뿐"이라고 맞받았습니다.

이런 해명들은 상당 부분 효과를 봤습니다.

조 전 사령관이 여권 무효화 조치에도 미국에서 버티는 동안 나머지 문건 작성 관여자들에 대한 수사는 늦어졌고, 합동수사단은 끝내 기소중지 처분으로 수사를 잠정 중단했습니다.

조 전 사령관이 귀국한 뒤 수사가 재개됐지만 이미 수사팀은 다 바뀐 상태였고, 검찰은 '장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계엄 문건을 작성한 것만으로는 (위헌적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도) 실질적 위험성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 조 전 사령관의 내란 예비·음모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에는 이런 해명이 통하지 않는 몇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검찰이 말한 '위헌적 내용'이 무엇인지, 그동안 공개된 자료를 통해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초법적 계획 '국회 무력화'

기무사는 문건에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는 표결을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몇 가지 계획'을 적어놨습니다.

이 가운데는 '계엄사령부가 (국회의원의) 시위·집회 금지, 반정부활동 금지를 포고하고 위반 시 구속 수사 등 엄정처리 발표 뒤 반정부 활동 의원 집중 검거 후 사법처리해 의결 정족수에 미달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는 표결을 하려고 하면, 찬성표를 던질 만한 국회의원들을 미리 체포해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계엄의 근간인 우리나라 '계엄법'과 '계엄법 시행령'은 물론 계엄의 실무 매뉴얼인 합동참모본부의 '계엄 실무편람'에도 계엄사령부에 국회를 무력화시킬 권한이 있다고 나와 있는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계엄 실무편람'에는 계엄 상황에서도 국회의원의 신분은 보장한다는 '계엄법 제13조'가 적혀 있습니다.

아무리 계엄 상황이라고 해도 국민이 정부를 견제할 마지막 수단만큼은 보장하겠다는 취지인데, 기무사의 계엄 문건에는 이마저도 막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최선의 계획을 세웠을 뿐"이라는 무적의 논리도, 초법적인 국회 무력화 계획 앞에선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 가운데 일부입니다. 기무사는 '국내 최고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는다'는 상식을 깨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어 놨습니다. 〈출처=JTBC〉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 가운데 일부입니다. 기무사는 '국내 최고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는다'는 상식을 깨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어 놨습니다. 〈출처=JTBC〉

의문의 대목 "계엄사령관으로 육군참모총장을 추천"

계엄 문건에는 '계엄사령관 추천 건의'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 내용이 담겼지만 골자는 '합참의장은 북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계엄사령관으로는 육군참모총장을 건의한다'는 것입니다.

위법한 주장은 아닙니다. 계엄법 5조에는 '계엄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습니다. 장관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면 육군이 아닌 해군이나 공군참모총장도 계엄사령관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계엄사령관은 군내 최고 군령권(실제 병력을 움직여서 작전을 지휘할 권한)을 가진 합참의장이 맡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 계엄 업무도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아 합참본부 계엄과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검토해본 것일 뿐'이라면서, 굳이 평상시 업무 체계를 벗어나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겠다'고 건의하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기무사가 정식으로 계엄 업무를 담당하는 합참을 두고 '계엄사령관을 통상의 경우와 다르게 임명하도록 건의할 권한'을 갖고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계엄 문건 논란이 한창일 때, 일각에선 '국회 무력화'와 '육군참모총장 건의'만 빼면 다른 부분은 문제없지 않느냐, 일부의 문제를 가지고 전체를 문제 삼느냐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전혀 작지 않습니다. '계엄사령관을 누가 하는가'는 계엄령의 시작이고 '마지막 순간에 국민이 계엄을 견제할 수단이 있는가'는 계엄령의 끝입니다. 이 문제들은 기무사가 검토한 계엄의 시작과 끝이었던 것입니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그의 지시를 받아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한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은 사면됐습니다. 〈출처=연합뉴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그의 지시를 받아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한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은 사면됐습니다. 〈출처=연합뉴스〉


웃으며 귀국한 조현천, 먼저 사면된 소강원

2017년 12월 미국으로 출국해 5년 넘게 버티던 조 전 사령관은 지난해 3월 29일 자진 입국했습니다.

"계엄 문건 작성의 책임자로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기 위해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5년 동안 들어오지 않은 건 "도주한 것이 아니고 귀국을 연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웃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구속돼 '2016년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선거 당시 김경재 전 청와대 홍보특별보좌관 당선을 위해 부대원들을 동원하고, 기무사 예산을 빼돌려 예비역 장성 등에게 전달해 사드 배치 지지 여론 형성을 조성하게 한 혐의'로 먼저 재판을 받아왔습니다.

재판에선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JTBC가 '계엄 문건'의 존재를 최초 보도한 2018년 7월 5일로부터 5년여 만에 조 전 사령관이 '위헌적 내용이 포함된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조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아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행사)로 유죄가 선고됐던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은 지난 6일 사면됐습니다.

계엄 문건 작성을 지시한 사령관이 기소(2월 21일)되기 보름 전에 핵심 참모인 참모장이 사면(2월 6일)된 상황에서 조 전 사령관은 내란 예비·음모 혐의를 벗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만 재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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