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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B] 500억 돈세탁에 검사 뒷조사까지 했지만…범죄수익 97% '박탈'

입력 2024-02-11 18:30 수정 2024-02-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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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기 돈뭉치로 쌓아올린 탑이 있습니다, 한 얼마 정도 될까요? 자그마치 500억원대로 추정되는데 모두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이 벌어들인, 검은 돈입니다. 이들은 갖은 돈세탁 기술을 동원하고, 담당 검사의 뒤까지 캐가며 수사에 대비했는데 결국 범죄수익 97%를 박탈당했습니다.

임지수 기자입니다.

[기자]

5만원권 현금이 거실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사진이 찍힌 곳은 오션뷰를 자랑하는 해운대 마린시티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불법 도박사이트 돈세탁 총책이 살고 있었습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이건 저희가 돈다발 개수를 가로세로 높이로 해서 저희가 세어본 건데요. 500억원을 훨씬 더 초과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2017년부터 필리핀 서버를 통해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일당이 벌어들인 돈입니다.

이들은 기업형 돈세탁 조직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먼저 사이트 이용자들이 입금하는 돈이 수백 개 대포통장으로 들어오면, 월급을 받는 인출책들이 전국 각지의 ATM기를 돌며 매일 현금 6억원을 뽑아 돈세탁 총책에게 전달해왔습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사진은) 자금 세탁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휴대전화에서 포렌식해서 나온 거였어요. '내가 돈을 제대로 줬습니다'라고 인증샷을 찍었던 것으로.]

[이홍석/부산지검 검사 (사건 주임검사) : 처음 보고 조작한 사진인 줄 알았습니다. 믿기 어렵지 않습니까?]

수사 초기 확보된 사진 한 장에 수사팀도 들썩였습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저희가 아무리 형사처벌해서 징역을 살게 한다 하더라도 밖에 그 정도 돈이 있으면 그게 형사처벌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 잡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죠.]

수사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넘쳐나는 현금을, 슈퍼카를 사고 팔고 각종 부동산 사업에 투자하면서 세탁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서울 신사동 인근 부동산 관계자 : 시가가 이게 3억 좀 안될 텐데. {평당?} 네. 120평 좀 안 되는데…(총) 350억~400억?]

전국 여러곳에 점포가 있는 타이어 회사를 140억원에 사들여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자금세탁을 돌릴 때 (돈세탁 총책이) 전달받은 현금을 가지고 있다가 그거를 와이프한테 갔다가 그 돈이 쭉 여러 번 계좌에서 돌다가 나중에 다시 또 자기 부동산 사는 데 오기도 하고 (여러 단계의 세탁이 이뤄졌습니다.)]

이 과정엔 운영 총책의 아버지, 돈세탁 총책의 부인과 장모, 자금관리책의 아버지 등 가족들까지 동원됐습니다.

[운영 총책 한모 씨 가족 : {(한모 씨와) 연락하고 계신가요?} 저는 할 얘기 없어요.]

수사팀은 1년 동안 450여개 계좌를 분석하며 압수와 추징보전을 거듭했습니다.

피카소와 백남준, 이우환 작가 등의 고가 미술품과 화려한 명품들을 차례차례 찾아냈습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하나라도 이제 연결고리가 있으면 주임 검사실에서 다 불러서 조사를 했어요. 자기들이 숨겨놓은 자산까지 오고 있는 게 눈에 보이니까 '이거 어떻게 알았지' '이게 뭐지, 어떻게 알았지' 이런 상황들이…]

돈세탁 조직도 순순히 당하진 않았습니다.

수사 초반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초고가 슈퍼카들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이 차가 시가가 한 45억 정도 된다고 하는 부가티 시론입니다. 지금 페라리 2대가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고 이거는 시가가 한 2억~3억씩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지인 이름으로 서울 오피스텔을 빌린 다음에 주차장에 슈퍼카 3대를 보관하고 있는 걸 압수한 거였거든요.]

검찰이 핵심 조직원을 소환하자 대담하게 해외로 도주시켰습니다.

자신들을 쫓던 담당 검사의 인사 시기를 수소문해, 대응 전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홍석/부산지검 검사 (사건 주임검사) : 검사 인사 2월에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조직원에게) 해외에 나가 있으라고 얘기를 하면서…이 친구들은 사실 돈이 많은 사람들이니까 법무법인을 4곳을 선임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일당이) 수사기관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인사가 나서) 떠나기 전에 모두 검거를 하겠다고 다짐을 했죠.]

하지만 담당 검사 개인 사정으로 인사 대상에서 빠지게 됐고, 결국 집요한 수사 끝에 돈세탁 총책 등 9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홍석/부산지검 검사 (사건 주임검사) : 이 친구들은 이번 검찰 인사에서 제 이름이 명단에 없어서 아마 좀 당황했을 겁니다.]

이렇게 수사팀이 특정한 범죄수익이 550억 원, 그 중 97%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럼에도 수사팀은 범죄조직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처벌이 가벼워 비슷한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도박장소 개설이나 범죄수익은닉죄 모두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그치고 있습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자금세탁 범죄로 저희가 경합범 가중을 하더라도 법원에서 선고할 수 있는 최고형이 징역 7년 6월밖에 안 됩니다.]

[이홍석/부산지검 검사 (사건 주임검사) : 이 정도 형을 받고 은닉한 범죄수익으로 평생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재범)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자금세탁한 범죄 금액에 차등을 둬서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두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실제 이번 사건은 이미 도박 사이트 개설 초기 적발돼 수사가 진행됐지만, 조직을 총괄했던 운영 총책이 5년 전 필리핀으로 도주하고 직원들은 법원에서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면서, 급격하게 범죄 규모가 커졌습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이미 형사 처벌을 받았는데 그때도 이미 해외 총책이 변호인을 선임해 주고 법률 조력을 계속해주면서 뒤를 봐줬죠. (수사를 받아도) 형을 얼마 안 살고 쉽게 풀려나기도 했었고요.]

2022년 불법도박 총매출액 추정치는 처음 102조를 넘겼고 특히 온라인 도박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하지만 도박 관련 사건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비율은 꾸준히 높아지는 등 처벌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인천에선 2조원대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이 적발됐지만 주범이 1심 징역 3년형을 선고받는 데에 그쳤습니다.

대부분 해외 서버를 이용하며 다단계의 돈세탁을 거치다보니 전체 자금 운용 규모를 특정하는 것조차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

이번 사건에서 필리핀으로 도주한 운영 총책에 대해선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고, 추가 범죄수익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김보성/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 지금 어차피 해외에서 계속 버텨봤자 범죄사실만 계속 늘어나는 거고 저희는 수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진 귀국하셔서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VJ 허재훈 이지환 / 영상디자인 조승우 김윤나 김관후 / 리서처 박효정 이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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