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이 '디폴트'

입력 2024-01-22 08:00 수정 2024-01-22 09:4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9)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9)

우리가 행하는 것들 거의 대부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일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에너지의 사용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에너지의 사용이 곧 문명화를 의미할 정도이죠. 그래서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우리 모두는 학교에서 '에너지를 절약하자'고 배우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탄화수소”라는 조건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이 '디폴트'
우리가 무언가를 태우며 살아온 지는 꽤나 오래됐습니다. 처음엔 바이오매스를 태웠습니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태우기도, 태우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기도 했죠. 향유고래의 기름도 살뜰히 등불을 켜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 것은 이런 전통 바이오매스가 아닌 탄화수소를 본격 활용하면서부터였습니다. 생명체가 성장하고, 살아가며 쌓아둔 탄소는 그 생명체가 생명을 다한 이후 시간이 흘러 점차 땅속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로부터 탄소를 떼어내고, 산소를 내뱉고, 그 식물에 남은 탄소는 시간이 흘러 쌓이고, 묻히거나 먹이사슬을 따라 초식동물에게 옮겨갑니다. 그리고, 그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에 잡아먹히게 되고요. 결국 그렇게 축적된 탄소는 결국 땅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자연의 순환 과정을 통해 땅속 깊숙이 쌓이고, 쌓여 '최종 끝판왕'의 형태로 저장된 것이 탄화수소, 즉 화석연료이고요.

이렇게 자연이 스스로 이산화탄소로부터 탄소를 떼어내 최종 형태로 저장하기까지 수천~수만 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 인간은 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산소와 결합시킵니다. 바로, 연소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의 대부분이 화석연료이고, 이를 사용하는 방법이 불에 태우는 것이기에 '에너지의 사용'은 곧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의미하게 됐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무탄소 에너지'였다면, 국민학교 시절 “지구가 아파요!”. “에너지를 아껴요!”와 같은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그릴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의 열쇠가 그런 탄화수소 기반의 에너지에 있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이 '디폴트'
그럼에도 지난주 연재에서 전해드렸듯, 우리의 에너지 사용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좀처럼 줄지 않았고, 그 결과 지구는 역대 가장 뜨거운 상태를 이어가고 있고요. 2021년 처음으로 탄소중립 로드맵을 제시했던 IEA(국제에너지기구)는 결국 2023년 연말, 이를 다시 개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뿜어내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는 만큼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 대비 1.5℃ 이내”라는 인류 생존을 위한 최후의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지구의 '온실가스 통장'에 남은 잔고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해마다 우리는 그 잔고를 지키지 못하고 갉아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작년보다 지출을 줄이지 못한 상태로 말이죠.

최소한 이 1.5℃ 목표를 사수하려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흡수 또는 제거량과 일치하는 '넷 제로'의 상태를 달성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당장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도, 새로운 유전이나 가스전도 개발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이고, 해외 가스전 개발 사업이 정부와 기업이 함께 협력한 '우수 사례'로 거론되고 있지만요. '에헤 망쳤네, 이거'라며 손을 놔버리기보단, 지금부터라도 즉각적인 에너지전환에 나서야 합니다. 향후 국제사회 차원의 '책임 공방' 혹은 '네 탓 공방'이 벌어질 때, 조금이라도 주권국가로서의 면이 살기 위해선 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이 '디폴트'
IEA가 새롭게 내놓은 로드맵에서 선진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전 지구 차원에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지만, 그간의 역사적 누적 배출량이 더 많고, 그만큼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더 크며, 상대적으로 기술적으로나 자본적으로나 여유가 있는 선진국은 새로운 2035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로 '80% 감축'을 목표로 해야 하며, 2045년 전후로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로드맵의 내용입니다. 또, 단순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상태를 만드는 것을 넘어, 2045년 이후엔 아예 배출량이 마이너스 상태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해야만 하고요.

물론, 위의 그래프를 통해서도 '에헤 이미 망쳤네, 이거'라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진국의 배출 총량은 2010년이 정점이었고, 최근까지 '하는 듯, 마는 듯' 완만한 기울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내려가는 방향인데, 우리나라는 2018년이 배출 정점이었고, 아직 완벽한 '감소세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하기 모호할뿐더러 2030년까지 40%를 줄이겠다는 것마저 '너무 가혹한 목표'라고 부르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신흥 개도국이야'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을까요. 2023년부터 급격한 감축을 본격화해야 하는 오른쪽 그래프를 보면, 선뜻 그러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는 감축을 미룰 시간도, 피할 구멍도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첫 번째 기회는 70년대 석유파동이었습니다. 당시 석유는 자동차를 비롯한 내연기관을 작동하는 용도로만 쓰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력 발전원이었죠. 전력을 생산하는 데에 있어서도 석유가 매우 큰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회경제구조의 혈액과도 같았던 석유의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그 피해는 사회 곳곳에 미쳤습니다.

“태양열 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에 주력하고, 광산의 안전대책에 만전을 기하라.”
1978년 2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동력자원부 연두순시 발언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원자력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세계에서 21번째로 핵 발전국 대열에 참여하게 돼 과학 한국의 모습을 자랑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태양열과 조력, 풍력 등 새로운 자원을 연구, 개발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힘써야겠다.”
1978년 7월 20일, 박정희 대통령 고리 1호기 준공식 발언

두 차례의 석유파동 이후, 국가 지도자의 발언에서 한 해 두 차례의 주요 일정에서 지정학적 요소에 구애받지 않는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강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선택은 여전히 탄화수소, 화석연료에 머물렀습니다. 1960년대, 연탄 파동으로 석탄이 주, 석유가 보조 역할을 하는 주탄종유(主炭從油) 정책은 주유종탄(主油從炭) 정책으로 변했고, 1970년대엔 탈유전원(脫油電源)을 꾀했으나 이는 다른 비 화석연료 전원의 확대가 아닌 석탄으로의 회귀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석탄은 2022년 기준, 전 세계 총에너지 공급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총에너지의 26.6%가 석탄을 통해 공급되고, 석유는 24.6%, 천연가스는 21.5%로 전체의 72.7%가 탄화수소(화석연료)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IEA는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에선 2030년 석탄 15.8%, 석유 19.7%, 가스 18.2%로, 화석연료의 비중이 절반 가량으로 감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이 신속하게 진행되면서 이 숫자는 실제 앞으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 215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막 내린 COP28, 혼돈의 RE100과 CF100 (상)〉에서 전해드렸듯, 원전을 적극 활용 중인 프랑스에선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16.9%(2020년 기준)에 달하며,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무려 27.9%(2023년 1~3분기 기준)에 달합니다. 영국의 경우, 최종에너지의 13.5%, 전체 전력 생산의 47.1%가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지고, 미국에선 최종에너지의 11.2%, 전력 생산의 22.5%가 재생에너지일 정도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이 '디폴트'
탄소중립의 목표시점인 2050년엔 전 세계 총에너지 공급에서 아무런 저감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지금의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3.8%로 줄어듭니다. 41.1%는 오직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통해서 공급된다는 것이 IEA가 제시한 로드맵 내용입니다. IEA는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의 비중 또한 지금의 4.6%에서 2030년 7.6%, 2050년 12.4%로 증가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력 생산만 놓고 봤을 땐, 2030년 이미 풍력과 태양광의 발전비중이 40%를 넘어서며, 2035년엔 전 세계 원전의 발전용량이 65% 이상 늘어나야 하고, 2050년엔 전체 전력 생산의 90%가 재생에너지에서 비롯돼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풍력과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탈 화석연료에 따른 남은 공백을 원자력발전이 채워주는 것 말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전체 에너지 공급량 자체의 감소입니다. 2022년 전 세계에 공급된 에너지의 양은 631.2EJ(엑사줄)에 달합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넘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선 이러한 에너지 공급량 자체가 2030년엔 572.7EJ로, 2050년엔 541EJ로 줄어야만 하죠.

'그럼 지금보다 춥고, 덥고, 어둡게 지내라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매번 IEA에 대해 강조하는 저의 설명으로 그 답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IEA는 글로벌 환경단체 등 NGO 같은 '친환경적'인 기구가 아닙니다. 1차 오일쇼크 직후(1974년), OECD 회원국들이 세계 석유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입니다. 오직 환경만을 생각해 정부나 기업에 지나치게 가혹한 일을 요구하는 기관이 아닌 것입니다. 여타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IEA에 직접 소속된 직원들도 있지만, 이곳엔 각국 정부 소속으로 파견된 직원들도 있습니다. IEA의 로드맵을 '권고사항'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한', 소위 '최소 요구 사항'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이 '디폴트'
IEA는 이처럼 전 세계 차원에서의 변화만을 언급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국가별, 지역별로는 어떻게, 얼마나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제언을 이어갔습니다. 현재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풍력과 태양광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상회합니다. EU 평균으론 20%를 넘어섰습니다. 다른 친환경 비연소 재생에너지(수력, 조력, 지열)를 비롯해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바이오매스를 제외하고서도, 간헐성이라는 한계로 주력 발전원이 될 수 없다고 불리는 두 에너지원이 이미 주력 발전원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와 환경이 비슷한 일본도, 우리가 그토록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비난하는 중국과 인도도, 우리보다 풍력 및 태양광발전의 비중이 월등히 높습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전 세계에서 점차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친환경 발전을 늘린다'는 측면을 넘어, '산업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포부와 함께 각국이 경쟁적으로 나선 덕분입니다. 2030년, EU에선 일부 선진국뿐 아니라 회원국 전체 평균으로 보더라도 이 두 발전원의 발전비중이 50%를 넘게 되고, 세계 평균으로 봐도 40%에 육박하며, 아프리카에서조차 그 비중이 40%에 육박할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게 IEA의 설명입니다.

재생에너지의 'ㅈ'도 꺼내기 어려운, 꺼냈다 하면 '그건 우리나라에서 얘기가 안 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우리로선 꿈나라 같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걸 '꿈나라'로 둘지, '현실'로 만들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세계는 단순히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넘어 '더 중요한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IEA의 제언 속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선 다음 연재를 통해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이 '디폴트'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