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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의 진짜 감축, 수년 후에야 시작?

입력 2024-01-08 08:00 수정 2024-01-14 17:5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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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7)

국가 단위의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가 나오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대규모의 공장이나 발전소와 같은 사업장부터 시민 개개인이 사용하는 자가용, 가정에서 쓰는 에너지, 논·밭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등 모든 요소들을 따져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현재까지 확정 집계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1년도 배출분으로, 지난 연말(2023년 12월 29일) 공개됐습니다. 2022년의 배출량은 '잠정 배출량'으로, 추후 확정 과정에서 소폭 조정될 수도 있고요. 이런 가운데, 지난 연말,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온실가스 감축을 비롯해 탄소중립과 녹색성장 이행 내용을 점검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22년 잠정 배출량은 6억 5,450만톤으로 전년 대비 3.5% 감소했습니다. 전환(에너지)과 산업부문이 국가 전체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 가량입니다. 그런데, 이 두 부문의 배출이 크게 줄어든 것입니다. 전환부문과 산업부문의 배출량은 각각 전년 대비 4.3%, 6.2% 줄었습니다. 탄녹위는 전환부문 배출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이 높아지고,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이 낮아지는 등 에너지믹스의 개선을 꼽았고, 산업부문 배출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는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생산 및 수요의 감소를 꼽았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의 진짜 감축, 수년 후에야 시작?
전환부문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찍은 2018년 이래로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8년 2억 6840만톤에 달했던 전환부문 배출량은 2022년(잠정) 2억 1390만톤으로 줄었습니다. 이는 발전량의 증가세와 함께한 결과로,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결과입니다. 이 기간, 발전량은 59만 127GWh에서 63만 8,220GWh로 증가했습니다. 덜 만들어 덜 뿜어낸 산업부문과 달리, 더 생산하고도 덜 배출한 것입니다. 탄녹위는 전환부문뿐 아니라 산업, 수송, 건물, 농축수산, 폐기물 등 각 부문에 대해서도 배출 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필요한 정책을 제언했습니다. 그리고, 이달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인 2035년 NDC의 수립 과정에 있어 이 내용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선진국 평균의 에너지전환 흐름에는 크게 뒤쳐졌으나 나름의 진전을 보인 전환부문의 배출 상황은 새해 '굿 뉴스'처럼 보여지나, 탄녹위가 제시한 앞으로의 계획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도 엿보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의 진짜 감축, 수년 후에야 시작?
위의 그래프는 탄녹위가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 그래프에서 실제 배출량은 총배출량을 기준으로, 앞으로의 목표 배출량은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그려졌습니다. 이 용어의 의미를 따지지 않고, 그저 그래프의 모양으로만 보면, 2018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코로나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배출량이 잠시 줄었고, 2021년 이내 다시 반등했으나 이후 계속 감소세를 이어가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용어의 의미를 따져보면 의문점이 생깁니다.

순배출량 = 총배출량 - 흡수 및 제거량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배출량(Gross Emissions)과 순배출량(Net Emissions)으로 구분됩니다. 총배출량은 말 그대로, 우리가 한 해 동안 뿜어낸 온실가스 배출량의 총 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순배출량은 이러한 총배출량에서 산림 등을 통해 흡수된 온실가스의 양이나 아직 국내에서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탄소포집 및 저장) 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해낸 양을 뺀 값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에서 순배출량은 총배출량보다 클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탄녹위가 제시한 그래프를 다시 그려봤습니다. 탄소중립이, 넷 제로라는 것이 결국엔 뿜어낸 것과 흡수 또는 제거한 것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이번엔 모든 연도의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탄녹위가 세운 2023년, 2024년, 2025년 목표 배출량은 2022년 배출보다도 많습니다. 2025년 목표 배출량은 2020년의 실제 배출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즉, 실질적으로 '감축했다'고 할 만한 감소는 2026년부터야 비로소 일어나는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의 진짜 감축, 수년 후에야 시작?
얼핏 '숫자 놀음'처럼 보이는 이러한 일은 사실 이전 위원회인 탄중위, 탄소중립위원회에서도 있었습니다.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2030년 NDC가 제시됐던 당시에도 '2030년의 순배출량을 2018년 순배출량 대비 40%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2030년의 순배출량을 2018년 총배출량 대비 40% 줄이겠다'는 내용이 행간에 숨겨졌던 것이죠.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감축률을 따져보면, 이는 40%가 아닌 36% 가량이 됩니다. 순배출량 기준으로 40% 감축하려면, 2030년 우리나라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 배출량은 4억 3천만여톤이 나닌, 4억 1천만여톤이었어야 하고요. 그러나 기준과 목표의 배출량을 모두 동일하게 총배출량으로 맞추거나 순배출량으로 맞춰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다는 해명과 함께. 또, “어쨌든 지금보다 많이 줄이는 것 아니냐”, “달성하기 쉽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 등의 목소리와 함께 이 문제는 금세 잊혀졌습니다.

탄녹위에서 위의 그래프와 같은 2030년까지의 연도별 목표 배출량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 실질적인 감축의 부담과 책임을 다음 정권에 미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가까운 미래엔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을 지우고, 미래에, 그것도 목표 시점인 2030년에서야 갑자기 '한 해에 17.5% 감축'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보니 가까운 미래의 감축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을 넘어섰습니다. 2023~2025년, 순배출량이 2022년보다 많아도 '목표 달성'인 셈이니까요. 물론, 2022년 이러한 실제 배출량의 배경엔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스코가 유례없는 조업 중단을 하게 된 일이 있습니다. 2023년, 다시 용광로에 쇳물이 부어지며 정상가동을 한 만큼, 배출량이 다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2023년 목표치와 2022년 추정치의 차이가 1,720만톤에 달하는 것은, 그리고 실제 2023년 배출량이 이러한 목표치에 머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힌남노 여파 등으로 줄어든 포스코의 몫은 830만톤 가량. 1,720만톤의 절반도 채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2022년 국가 배출량을 '감축 잠재력을 엿볼 수 있었던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향후 2035년 NDC 수립에 지금의 배출 상황과 그에 따른 점검 및 정책제안 내용을 반영할 계획인 만큼, 보다 현실적이고도 혁신적인 감축안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의 진짜 감축, 수년 후에야 시작?
'더 강력한 감축안이 어떻게 더 현실적인 감축안이냐'는 목소리가 지배적인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이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기 위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2030년 NDC를 강화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는 여전히 2050년 탄소중립의 실현과 거리가 멉니다. 위의 그래프는 전 지구적인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배출 경로와 각국 NDC 사이의 차이를 보여준 그래프입니다. 2015년 파리협정 타결 당시에 감축을 시작했다면, 2019년을 전후로 한 전 세계 탄소중립 선언 물결과 더불어 본격적인 감축을 시작했다면, 위 그래프의 녹색선의 기울기는 훨씬 완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축을 미뤄왔고, 그 결과 녹색선의 기울기는 점점 가파르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순배출량 0'이라는 목적지도, '2050년'이라는 도착시간도 정해진 탄소중립 레이스에서 '그나마 쉬운 길'은 당장의 감축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021년,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Net Zero by 2050: A Roadmap for the Global Energy Sector)〉의 내용에 대해 6주에 걸쳐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IEA가 그해 5월 처음으로 내놓은 넷 제로 로드맵을 지난해 11월 업데이트했습니다. 2년 반 만의 개정에서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의 진짜 감축, 수년 후에야 시작?
2021년의 로드맵도, 지난 연말에 나온 로드맵도 2050년 에너지 부문의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은 0을 목표로 합니다. '넷 제로'인 만큼,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2년 반 사이 우리의 배출은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새 로드맵에선 그런 현실이 반영됐습니다. IEA는 지금과 같은 감축수단 없는 화석연료의 비중이 2030년 62%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당초 로드맵에서의 58%보다도 높은 비중입니다. 그 결과, 에너지 부문에서의 2030년 순배출량이 211억톤에서 240억톤으로 늘어났고, 최종에너지 소비도 2030년 390EJ(엑사줄, 100경J)에서 410EJ로 늘어났습니다.

대신 전환의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목표는 그대로인데 시간은 흘렀고, 배출량은 도리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2030년, 820G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를 추가해야 합니다. 2030년 전기차의 판매 비중은 종전 60%에서 65%로 더 늘어나야만 합니다. 늘어난 VRE(Variable Renewable Energy, 변동성 재생에너지)에 맞춰 고정형 배터리의 설치 용량은 2030년 1,020GW까지 확보해야 하며(종전 목표: 590GW), 전기화에도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2030년엔 28%, 2050년엔 53%에 달해야 하는 것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의 진짜 감축, 수년 후에야 시작?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그 세부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에 앞서 달성해야 하는 주요 이정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당장 지금부터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도, 신규 유전이나 가스전의 개발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3배 늘리고, 에너지 효율은 배로 개선해야하죠.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 외에도 메탄 배출도 줄여야 합니다. IEA는 2030년 이를 75% 줄여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또, 새롭게 설치되는 중공업 기반 설비의 경우, 탄소중립에 대응이 가능한 설비여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2035년엔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80%, 신흥 개발도상국은 60% 감축해야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IEA의 설명입니다. 막연하고도 원대한 목표라기보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최소 요구조건'인 셈이죠. 우리나라의 2030년 NDC는 40%이며, 내년(2025년)엔 2035년 NDC를 제출해야 합니다. IEA가 제시한 NDC의 기준점을 봤을 때, 우리의 갈길은 더욱 험난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경로를 거쳐 2050년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최소 절반을 전기로 바꾸고, 그러한 전력 생산의 90%를 재생에너지로 만들어내며, 원전의 설치 용량을 배로 늘려야 비로소 넷 제로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넷 제로의 '근접'을 넘어 달성을 위해선 여기에 추가로 연간 17억톤의 이산화탄소를 인위적으로 제거해야만 하고요.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이정표만 봐도 아득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이미 이 이정표에 따라 갈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라들도 다수 있습니다. 당장의 걸음을 주저하는 일이 얼마나 미련하고도 위험한 일인지, 단순히 '조삼모사'의 수준을 넘어서 '조삼모구'를 부르는 일인지 우리는 다가올 불과 1~2년의 시간 사이에 직접 몸소 겪게 될 것이고요.

IEA는 단순히 이런 대략적인 이정표만 안내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은, 개도국은 각각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노력의 내용에 대해서도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년 반 전, [박상욱의 기후 1.5]를 통해 IEA의 첫 2050 넷 제로 로드맵을 소개했던 당시 '고정 댓글'처럼 항상 강조했던 문장과 함께 이번 주 연재를 마칩니다.

IEA는 글로벌 환경단체 등 NGO 같은 '친환경적'인 기구가 아닙니다. 1차 오일쇼크 직후(1974년), OECD 회원국들이 세계 석유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입니다. 오직 환경만을 생각해 정부나 기업에 지나치게 가혹한 일을 요구하는 기관이 아닌 것입니다. 여타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IEA에 직접 소속된 직원들도 있지만, 이곳엔 각국 정부 소속으로 파견된 직원들도 있습니다. IEA의 로드맵을 '권장사항'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한', 소위 '최소 요구 사항'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의 진짜 감축, 수년 후에야 시작?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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