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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B] '최초 여성 임원' 어머니의 죽음…메일함엔 '수상한 파면 신부'

입력 2024-01-06 19:03 수정 2024-01-06 20:04

암 걸리자 "기도로 극복" "네 죄 때문에 아픈 것"
'육정 끊어라' 메시지…가족 11년 못 봐
신부 시절 꿈 해석도…"이건 금기사항,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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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걸리자 "기도로 극복" "네 죄 때문에 아픈 것"
'육정 끊어라' 메시지…가족 11년 못 봐
신부 시절 꿈 해석도…"이건 금기사항, 충격"

[앵커]

탐사 기자들이 만드는 [뉴스B] 시간입니다. 오늘은 암으로 숨진 어머니의 이메일 수천 통에서 드러난 가스라이팅 흔적을 취재했습니다. 10년 넘게 가족과 만나지 못했던 어머니는 함께 다니던 성당의 전 주임 신부와 그가 '어머니'로 모시던 한 여성으로부터 일상을 통제당하고 있었습니다.

안지현 기자입니다.

[기자]

고 김애선 씨의 테블릿PC에 남아있는 이메일들입니다.

'사랑니를 제거해도 되는지' '앞마당을 산책해도 되는지' 그리고 '1만 원 대의 치마를 사도 되는지' 등을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고 김애선 씨 아들 : 매월 가계부 써서 보고하게 만들고, 매달 쓴 돈 이런 거 있잖아요. 뭐 사도 되냐? 허락받게 만들고…]

김 씨는 국내 H 실업에서 최초 여성 임원을, 미국 J 의류 업체에선 수석 부사장을 역임하며 4억 원 넘는 연봉을 받던 성공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고 김애선 씨 직장 후배 : 냉철하게 판단도 빨리 잘하셨고, 카리스마도 있고 리더십도 되게 좋으셨어요. 정말, (이 메일이) 조작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허락을 구하는 메일을 계속해서 주고받아 왔던 겁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암에 걸리고만 김 씨. 치료를 받아도 묻는 김 씨에게 '항암 치료를 거부'하라고 하고, 종교적 기부를 뜻하는 '봉헌'을 하라는 답변이 지속적으로 돌아옵니다.

[고 김애선 씨 아들 : 암 치료하고 나면 항암이나 추적을 계속해야 하는 게 당연히 상식적인 건데 '네 죄 때문에 네가 아픈 거다' 이러면서 항암 받는 거 늦추고 못 받게 하고 그걸 읽는데 정말…]

이후 김 씨는 실제 '유언장'을 작성하고 전 재산을 '봉헌'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적었습니다.

[김성윤/고 김애선 씨 남편 : 정말 (봉헌) 규모가 얼마일지는 상상을 못 하는데 (그 중 일부는) 현금으로 인출한 돈이 2억원이 있더라고요.]

김 씨가 메일을 주고받은 상대 중 하나는 김 씨가 다녔던 서울 한남동 소재 성당의 전 주임신부 김모 씨였습니다.

그리고 김 전 신부가 양어머니로 모시던 '김 아녜스'란 여성과 그를 따르는 기도 공동체 구성원들이었습니다.

김 전 신부는 스스로 신부직을 내려놔, 2011년 면직됐습니다.

김 전 신부는 주임 신부 시절에도 신자들에게 '꿈을 해석'해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성윤/고 김애선 씨 남편 : 꿈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신부로 있을 때도 자기는 항상 '꿈의 계시를 받는다'고요. 자매님이 '내가 꿈을 꿨는데 이상하다' 그러면 (김 전 신부는) '그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땅을 봉헌하라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이는 천주교에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홍성남/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 정말 제 입장에선 충격이다. 불안몽에 대해서 해석을 해주면 이 사람의 증세가 더 악화되죠. 그래서 꿈에 대해서는 해석을 해주면 안 되는 거예요. 금기 사항이고…]

이들은 김 씨를 가족과 떨어져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한 뒤, 

[김성윤/고 김애선 씨 남편 : (김 전 신부가) '아들이 지금 대신 벌을 받고 있는 거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 {그런 식으로 미국에 가라고 하신 거예요?} 네, 이제 미국에 가야 한다.]

'가족과는 연을 끊으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습니다.

실제 김 씨는 11년 간 가족을 보지 않았습니다.

같은 기간 김 전 신부도 거주지를 미국으로 옮긴 후 신학대를 다녔고, 영어가 능숙했던 김 씨에게 숙제 등을 부탁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말기암 환자로 가족들에게 돌아온 김 씨는 보름여일 만에 결국 숨졌습니다.

이후 유품을 확인하던 유족들은 이메일을 열어보다 뒤늦게 김 씨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됐습니다.

분노한 유족들은 유기치사와 사기 등의 혐의로 김 전 신부 등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이에 김 전 신부 측은 "김애선 씨가 스스로 전 재산을 봉헌하겠다고 하는 걸 김 아녜스가 거부한 것이고, 항암 치료 중단 역시 의학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취재진에 밝혀왔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유족 측이 자신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다며 공갈미수와 명예훼손 등으로 거꾸로 고소한 상탭니다.

양측의 고소를 접수한 서울용산경찰서는 사실관계를 파악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VJ 한재혁 이지환 허재훈 / 리서처 이채빈 박효정]

※자세한 취재 내용은 웨이브(Wavve)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악인취재기; 사기공화국' 4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wavve.com/player/vod?landing=season&programid=C9901_C990000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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