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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막 내린 COP28, 혼돈의 RE100과 CF100 (하)

입력 2024-01-01 08:00 수정 2024-01-01 15:2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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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6)

아랍에미리트에서 개최됐던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은 이전까지의 COP에서와 달리 국제사회를 향해 큰 목소리를 냈습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수소 등 무탄소 에너지(CFE)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이끌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그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를 이끌었던 이회성 전 의장을 CF연합 회장으로 추대하고, 정부 관계자들은 해외 각국의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이행의 핵심인 에너지 부문에 있어 야심찬 도전에 나선 정부의 행보는 반갑지만, 이내 우려가 이어집니다. 원자력을 중심으로 내세운 한국의 CFE 이니셔티브가 우려되는 이유, 지난 주에 이어 살펴봅니다.

민간 차원에서 시작된 RE100은 특정 국가의 주도가 아닌 시장의 주도로 확산됐습니다. 한 기업이 그 기업에 부품을 납품하거나 그 기업의 생산을 대리하는 협력기업에 영향을 미쳤고, 그렇게 RE100 의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 퍼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첨예한 갈등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RE100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이유입니다. 또한 RE100의 이행을 위해 필요한 근원적인 에너지원은 지구 어디에나 존재하는 햇빛과 바람이라는 점 역시 이 이니셔티브가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그런데 특정 국가가 이를 주도 한다는 점은 이니셔티브의 글로벌 확장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CFE 이니셔티브를 통해 가장 강조되는 발전방식이 원자력으로 비쳐지는 현 상황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주도국가에 따라 참여국이 제한될 수 있는 것이죠. 아태지역의 개발투자를 두고서도, 우리는 ADB와 AIIB의 갈등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결과, 주도하는 국가가 어디냐에 따라 각각의 개발은행에 가입하는 국가가 나뉘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막 내린 COP28, 혼돈의 RE100과 CF100 (하)
우라늄 수출국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2020년 우리가 수입한 우라늄의 34%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핵연료에 있어 러시아의 영향력은 매우 막강하죠. 연료를 넘어 글로벌 원전 건설 시장에서도 두 나라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최근 5년간 전 세계에서 새로 지어진 원자로 31기 가운데 27기가 러시아산이거나 중국산이었죠. 이런 가운데 한국이 CFE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하고, 원전 용량을 2050년까지 2020년 대비 3배 이상 늘리는 '넷 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에 한국과 미국 등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지지 선언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CFE 이니셔티브를 주도함으로써 어느 나라나 지역과의 연계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COP28에는 197개국이 참여했습니다. 이 중엔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도, 이란도 있습니다. 당장 내치에도 정신없을 것 같은 나라지만, 북한은 영국에서 열린 COP26에도,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에도 대표단을 보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CFE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한국이 “전 세계 모두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 한, 선언적인 표현에 그칠 것입니다.

결국 CFE 이니셔티브는 RE100과 같은 범용성을 갖기 쉽지 않습니다. 바람과 햇빛이라는 지구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에너지원과 달리 우라늄은 중국, 러시아, 미국 등 특정 국가에 매장되어 있고, 이러한 우라늄으로 만든 핵연료는 재처리 등을 통한 무기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첫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이기도, 오랜 기간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위해 파이로프로세싱 등 각종 기술을 갈고 닦아왔음에도 여전히 역량껏 재처리를 하지 못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CFE 이니셔티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 중심의 CF 세력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CF 세력 간의 갈등으로 비화할 수도 있습니다.

원전의 유지보수부터,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규제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땀과 비용을 쏟아왔습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이 밀집된 나라 중 하나이고, 원전 인근에 거주중인 인구 또한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임에도, 지금 이 순간까지 대형 사고 없이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죠. 이는, 원전의 수출이 그저 발전설비의 수출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롭게 원전을 수입한 국가에 요구되는 기술적 숙련도와 리스크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에 요구되는 숙련도와 리스크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습니다. 태양광 또는 풍력발전단지가 부실한 유지보수로 발전 효율의 하락이나 일부 부품의 탈락 등의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면, 원자력발전소의 부실한 유지보수 및 관리는 반경 수십km 내의 인구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고, 반경 수백km의 인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원자로의 수출을 넘어 발전설비의 운영 및 유지보수 인력의 양성, 국가 차원의 원자력안전 및 규제 시스템의 구축 등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IAEA 기준, 세계 평균 원전 공사기간은 93개월에 달합니다. 원자로의 건설이 종료됐다 하더라도, 처음 원전을 도입하는 국가에 인력과 시스템을 구성하고, 숙련도를 향상시키는 데에는 가동 이후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오랜 시간 공들여 습득한 노하우가 하루아침에 전수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결국 안정적인 원전의 운영까지 기대하기에 '2050년까지 원전 3배 확대'라는 목표는 너무도 빡빡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에 중점을 둔 한국의 CFE 이니셔티브 확산과 2050년까지 원전 3배 확대라는 선언이 원전의 해외 수출이 아닌 국내 확대를 의미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한국의 경우, IAEA가 집계한 세계 평균 공사기간보다 훨씬 짧은 56개월이 평균 소요 기간입니다. 세계 평균 대비 배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공사 속도를 자랑한다 하더라도, 이미 25기의 원전이 가동 중인 상황에서 신규 원전을 대폭 늘리는 일은 56개월만에 끝내기 어렵습니다. 원전 자체를 건설하는 데엔 5년 남짓이 걸린다 하더라도, 부지를 찾고, 선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강한 반발과 같은 수용성 이슈를 해결하는 데엔 공사기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그렇게 지연된 시간은 이자 등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고요. 이는 그간 '국내 한정'으로나마 통했던 '저렴한 원전'이라는 간판마저 내리게 만들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막 내린 COP28, 혼돈의 RE100과 CF100 (하)
또, 신규 원전의 건설에 앞서 우리에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장 마련이라는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2023년 4월 15일, 세계 최초로 탈원전을 실천한 독일의 경우, 고준의 방폐물 영구처분장 설치에 40~60년이 소요될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 탈원전을 마친 독일이라 할지라도 영구처분장의 건설은 계획대로 되지 못 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큰 충돌이 일어날 수도, 그로 인해 건설 계획 자체가 표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미 우리는 지난 2003년 9월 부안 사태로 그 위험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초격차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한 차세대 원전, SMR(소형 모듈러 원자로)은 어떨까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20여년 뿐입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의 SMR 개발이 끝나고, 실제 건설 및 가동이 이뤄져 유의미한 발전원으로 기능할 것을 기대하기엔 그리 충분치 않은 시간입니다. 설령 설치와 가동이 2050년 전에 이뤄진다 하더라도, 적은 발전 용량은 SMR이 주력 발전원으로 기능하는 데에 제약이 될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막 내린 COP28, 혼돈의 RE100과 CF100 (하)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발 중인 혁신형 SMR(i-SMR)의 경우, 기당 발전용량은 170MW입니다. 한국이 보유한 최신 대형원전 기술의 발전용량인 1,400MW의 12% 수준인 것이죠. 크기가 줄어들었기에 발전용량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결국, 170MW의 원자로 4기를 모듈로 엮는 배치 방식을 택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최신 대형원전의 절반 수준이지만요. 그로 인해 해안부지 기준, 약 13만㎡의 면적이 필요할 걸로 예상됩니다. 또, 원자로의 용량이 줄고, 구조가 단순해지고, 기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안전성 개념이 도입됨에 따라 비상구역의 경계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i-SMR 사업단 측의 설명입니다.

정부는 최초의 i-SMR이 2031년 완공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존 원전 1기를 대체하기 위해선 최소 8기의 원전이 필요한 만큼, 기존 원전의 대체재로 보기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또, 비상구역의 경계뿐 아니라 신규 설치를 위한 부지 선정도 주민 수용성 등의 문제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력 발전원으로 거듭날 만큼 그 수를 늘리는 데에 그만큼 어려움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는 이유입니다.

그간 군사적, 외교적 난관에도 맨땅에 헤딩하듯 지금의 원자력 기술을 개발하고, 원전 수출을 수주한 한국 원자력계의 입장에서, 원전의 세계적인 확산을 꾀하는 CFE 이니셔티브의 의미는 매우 클 것입니다. 하지만 원전의 글로벌 확산은 그저 순수한 공학 기술의 확산이나 산업의 수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사고의 위험부터 무기 제조의 위험까지, 통제 어려운 리스크의 확산을 의미하기도 하죠. 이를 특정 국가가 주도한 가운데 이러한 리스크가 현실로 찾아온다면, 그 책임 또한 특정 국가에 집중될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막 내린 COP28, 혼돈의 RE100과 CF100 (하)
한국 주도의 CFE 이니셔티브를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화석연료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COP28 기간, 글로벌 기후변화 싱크탱크들이 평가한 기후변화 대응지수 평가에서 평가 대상 67개국 중 64위에 머물렀습니다. 이런 저조한 성적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매번 최하위권을 전전했기 때문입니다. 올해엔 최하위권에 머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오늘의 화석상'에 선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COP의 합의문에서조차 석탄의 퇴출이 거론되는 상황에 여전히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국내에 짓고 있고, 한국의 공기업과 한국의 공적 자금이 투입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추진중인 덕분입니다. 심지어 정부는 지난해 심의·의결한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서 민간의 해외 자원개발을 지원하겠다며 그 성공사례로 베트남 15-1 광구와 UAE 할라바 유전 개발 사례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 유전 및 가스전의 개발 기술과 유전의 공정 자동화 등을 향후 정부의 지원 분야로 꼽았죠.

이처럼 한국이 진정한 무탄소 에너지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습니다. 에너지전환에 이념을 투영하지 않고, 이니셔티브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설정하고, 이를 위해 말이 아닌 행동(정책, 예산, 숫자 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한국 주도의 CFE 이니셔티브는 한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가 아닌 한국만의 나홀로 이니셔티브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 연재는 과거 1978년, 2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에너지를 강조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마칩니다.

“태양열 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에 힘쓰고, 광산의 안전 대책에 힘쓰라.”
1978년 2월 15일 동력자원부 연두순시 발언

“고리 1호기 준공식을 갖게 된 것은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도정에서 이룩한 하나의 기념탑이다. 이제 우리는 태양열과 조력, 풍력 등 새로운 자원을 연구 개발하는 데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힘써야겠다.”
1978년 7월 21일 고리 원자력 발전소 준공 및 기공식 발언
 
[박상욱의 기후 1.5] 막 내린 COP28, 혼돈의 RE100과 CF100 (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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