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어제(16일) 첫 선을 보인 탐사 코너, 꿀벌처럼 부지런히 취재하는 '뉴스B' 시간입니다. 오늘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지켜본 한 보좌진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5년 전 JTBC에서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 씨를 도왔던 문상철 전 비서관. 7년간 안 전 지사의 곁에서 일하며 그의 부상과 몰락을 지켜본 소회를 기록해 현 정치권에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김지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한 청중이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에게 질문합니다.
공직자 면접에서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냐는 겁니다.
안 전 지사는 이에 대한 대답 대신 누군가를 연단으로 불러냅니다.
[안희정/당시 충남도지사 : 이 대목에서 산증인을 요청하겠습니다.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이 친구가 젊은 날 육사 필기 합격을 했다가 면접 때 '일부 정치군인의 행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정직한 대답을 했다가, 참고로 이 친구는 군인 집안이기 때문에 절대로 운동권에 물들 확률이 없던 친구예요. 문상철 비서! 이럴 때 답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객석에서 단숨에 뛰어 올라간 문 씨가 말합니다.
[문상철/당시 안 지사 수행비서 : 제 신념을 대답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안 지사님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신념을 말하겠다'던 문 씨는 어떻게 됐을까.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안희정 지사와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약 7년 정도 일했습니다.]
안 전 지사의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했던 문 씨는 충남도청 근무 당시 안 지사가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다"고 회상했습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지도자가) 그 조직을 장악해야 되고, 지도력을 발휘를 해야 되는데 대부분 그런 경험이 없다 보니까, 기존 조직에 있던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되고 특히 그 도움은 의전 조직에 계신 분들에게 받습니다. 그 이후에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는 일이 굉장히 쉬워지는 겁니다. 임금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게 정답이라고 제안해버리면 이분이(지도자)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한쪽)에 치중되기 때문에 그렇게 (편향된 의견이) 지도자를 물들게 하고 생각을 바꿔나갑니다.]
안 전 지사는 주위 사람들에게 '티 나지 않는 의전'을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예를 들면 리더를 모시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잡아놓는다든지 이런 것들은 굉장히 '저차원적 의전'이라고 불리고 엘리베이터를 잡아놓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전'이 최고의 의전이라 배웠습니다.]
안 전 지사는 농사를 짓는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농작물 경작하거나, 운동한 후 땀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기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의전이 만든 이미지를 바탕으로 팬덤도 형성됐습니다. 각자의 정치적 목적이 투영된 팬덤은 안 전 지사를 더 고립시켰다고 문 씨는 말합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정치인의 팬덤에 의지하는 것, 그리고 팬덤을 운영하는 분들이 선을 긋지 않고 정치에 참여하려고 하는 이 서로의 욕망이 결합되면서 팬덤 정치가 심화됐다고 생각하고 그건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 전 지사가 또 강조했던 것은 '안희정 가문' 구축이었습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서로를 직책으로 부르지 말고 무조건 형 누나로 부르라고 강요를 많이 받았습니다. '누구누구' 가문으로 불리는 그런 정치 환경 때문에 우리는 정치인의 잘못에 직언하지 못하고 그걸 우리의 가문의 문제를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해야 되는 그 사명감을 갖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희정 가문'의 사람이라는 발판으로 문 씨는 여의도 중진 의원의 보좌진이 됐지만 2018년 3월 김지은 씨의 성폭력 고발로 모든게 달라졌습니다.
그가 김 씨를 도와준 몇 안 되는 안 지사의 '측근'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안희정 지사의 참모로서 오랫동안 활동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일할 거여서 그 부분(성폭력)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분을 도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상식과 책무감,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김 씨를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미투를 기획했다는 음해와 협박도 이어졌습니다.
정치권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었지만 20여 군데에서 거절을 당했고, 일반 중소기업에 취직했습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5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제가 그분들께 묻고 싶은 건 그때 음모론을 말씀하시고 이 사건의 기획서를 이야기하셨던 분들은 5년 동안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가해자 편에 섰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인생의 서사만 비교해 보셔도 지금도 이걸 기획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 음모론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 본인이 아니면 말고 식의 이야기를 했던 분들이 지금은 사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를 그분들께 직접적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침묵을 지켰던 문 씨는 최근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안희정 성폭력) 검찰 수사 당시에는 '김상훈'이라는 코드 네임으로 불렸죠. 제가 겪은 경험은 사유재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재로 우리가 함께 기록하고 생각해 봐야 될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출간하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책 내용의 민감성,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 출판사들 몇 곳이 부담스러워해서 출간을 거절했습니다.]
문 씨는 이 사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안희정 지사는 사과를 하고 피해자는 일상 회복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후에 수많은 2차 가해자들이 등장하고 이 사건을 마치 개인 간의 문제로 삼아서 피해자는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김 씨를 도왔던 선택 이후 5년,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지 물었습니다.
[문상철/안 전 지사 수행비서 : 사관학교 지원했을 때도 신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육사 교정에 전두환 생도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를 지지하는 가두 행진을 이끌고 가는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의 부적절함에 대해 면접 중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키고 싶은 원칙 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내 선택을 한다면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JTBC 김지아입니다.
[화면출처 중앙일보·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