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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집주인도 속인 100억대 부동산 사기…본인 확인 안 한 은행이 피해 키워

입력 2023-12-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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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월세를 사는 세입자가 집주인 몰래 집주인 행세를 하며 전세 계약을 맺은 뒤 보증금을 가로채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개 보조원이 주도해 이런 식으로 다른 세입자들을 속였는데, 지금까지 수십명이 1백억원 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정아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해 가을 집주인 조병연 씨는 정모 씨와 서울 송파 집 월세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고, 정 씨는 연락마저 끊겼습니다.

[조병연/집주인 : 날짜를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요. 우리 거래하는 부동산 사장님한테 얘기를 했죠. 한번 그 집에 저도 바쁘고 하니까 집에 한 번 찾아가서…]

그런데 조 씨는 믿기 어려운 얘길 들었습니다.

세를 준 집엔 정 씨가 아니라 A씨가 살고 있단 겁니다.

[조병연/집주인 : 부동산 분이 가셔서 보더니, 어! 다른 사람이 살더라는 거야. 이 사람도 깜짝 놀라는 거야.]

세들어 살던 A씨한테도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습니다.

[A씨/세입자 : 찾아와서 월세가 밀렸다, 그래서 무슨 소리냐. 우리는 전세 계약을 체결했는데…]

확인을 위해 집주인 조 씨를 대면한 A씨는 본인이 기억하던 집주인과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A씨/세입자 : 조병연 씨를 보면 확 차이가 났어요. 그리고 옷 입는 자태라든지 체형이라든지 이런 게 상이해서 이게 아니네, 딱 봤을 때 딱 그걸 느꼈죠.]

한 집에 월세와 전세, 두 계약서가 존재했던 겁니다.

알고 보니 A씨와 계약할 때 집주인이라고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정 씨였습니다.

세 들어 살겠다고 월세계약을 맺은 다음, 집주인인 척 A씨에게 전세계약을 내준 겁니다.

여기엔 A씨에게 매물을 구해준 중개보조원 임모 씨의 치밀한 밑 작업이 있었습니다.

임 씨가 신분증까지 조작해 정 씨가 완벽하게 가짜 집주인 행세를 할 수 있게 공모한 겁니다.

이들은 조 씨 명의로 된 가짜 통장까지 개설해 A씨의 전세보증금 5억원을 가로채기까지 했습니다.

[A씨/세입자 : 전 재산이 한꺼번에 다 없어졌는데 그런 것 때문에 저희 집사람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려는 것도 막았고 편안한 가정이 완전 풍비박산이 난 거죠.]

임씨 일당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수십명, 피해 금액은 백억원이 넘습니다.

[앵커]

이들 일당은 집주인 신분증을 빼돌려 은행 계좌를 만든 뒤 집주인인 척 하며 세입자들 보증금을 가로챘습니다. 은행이 집주인이 맞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계좌를 만들어 준 탓에 세입자들이 속아 피해를 입은 겁니다.

정아람 기자가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기자]

집주인으로 위장한 정모 씨와 전세계약을 맺은 피해자 A씨는 기업은행 계좌로 전세보증금 약 5억원을 보냈습니다.

계좌 주인은 진짜 집주인인 조병연 씨로 돼 있지만, 조 씨는 이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조병연/집주인 : 놀래는 정도가 아니라 어이가 없죠. 기업은행 통장은 생전 만들어 본 적이 없거든. 기업은행 통장이라는 게 없어요, 아예.]

허위 계좌 신청서는 A씨가 전세계약을 맺기 한 달 전쯤 작성됐습니다.

취재진은 가짜 신청서 글씨와 조씨의 실제 글씨를 대조해 봤습니다.

[서한서/필적감정사 : '조' 자를 굉장히 특이하게 기재하시는 습성들이 관찰되는데 이 지읒은 자획 구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고 계시고 동일인이 작성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인감 도장도 조 씨의 것과 다릅니다.

신청서엔 조씨의 주민등록증 사본이 첨부돼 있는데, 조씨는 주민등록증을 빌려주거나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조병연/집주인 : 잃어버렸으면 갖고 있지 말아야 되지. 그럼요, 지금도 집에 있어요.]

알고 보니 은행에서 계좌를 만든 사람은 가짜 집주인 행세를 했던 정 씨였습니다.

정 씨는 지난달 초 사문서위조와 사기 혐의로 붙잡혀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모를 주도한 중개보조원 임 씨는 아직 행방이 묘연해 경찰이 쫓고 있습니다.

[A씨/피해자 : 신분을 확인해서 통장 개설 같은 거 절차대로 진행이 됐으면 이런 사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계좌를 개설할 때 관련 법령과 규정을 준수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영상취재 조용희 / 영상디자인 최수진 / 취재지원 박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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