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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화 살 돈으로 등산화 쇼핑…공무원 쌈짓돈 된 '시설부대비'

입력 2023-12-05 19:43 수정 2023-12-05 20:09

14개 기관에서 12억 2천만원 착복
도로공사는 600억 빼돌려 직원 월급 '나눠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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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기관에서 12억 2천만원 착복
도로공사는 600억 빼돌려 직원 월급 '나눠 먹기'

"XXX스포츠, ○○, △△…"

올해 초 국권익위원회 심사기획과 조사팀이 일부 지자체의 '시설 부대비' 사용 내역에서 발견한 유명 스포츠 브랜드들입니다. 연간 총 1100억원에 이르는 지자체 및 공공기관의 '시설 부대비' 예산이 공무원들의 쌈짓돈으로 전락한 실태가 권익위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안전화' 살 돈으로 '등산화' 샀다

먼저 시설 부대비는 설계비 같이 공사에 직접 필요한 경비 외에 드는 부대 경비를 말합니다. 공무원이 공사 현장에 안전 감독을 나갈 때 필요한 출장비나 안전화나 안전모 같은 안전용품을 살 때 쓰는 비용인 겁니다.

공무원들은 안전화를 살 수 있는 곳이 대부분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이라는 점에 착안한 걸로 보입니다. 권익위가 조사한 사례를 보면, A 시의 B 주무관은 지난해 10월 공사 감독 때 입을 옷을 사겠다며 유명 스포츠 의류 매장에서 80만 원어치 상품권을 샀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 상품권으로 산 건 골프복과 등산화 등이었습니다. B 주무관이 지난 3년 동안 빼돌린 예산으로 산 스포츠용품은 31개 품목, 496만 원어치였습니다.

시설부대비를 빼돌려 구매한 유명 스포츠브랜드 등산화. 〈사진=권익위〉

시설부대비를 빼돌려 구매한 유명 스포츠브랜드 등산화. 〈사진=권익위〉



다른 지자체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권익위가 지자체 9곳을 선별해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의 실태를 조사했는데, 9곳 모두에서 이런 관행이 발견됐습니다. 스포츠용품으로 빼돌린 예산만 6억 4천만원에 이릅니다.

그중 한 지자체는 스포츠용품 약 1억 7천만 원어치를 사기도 했습니다. 지자체의 한 해 평균 시설부대비가 7억원 언저리입니다. 단순 계산으로 한 해 예산의 10% 안팎을 착복한 셈입니다.

사무용품을 산 척 가짜 영수증을 첨부했지만, 실제론 30만 원짜리 유명 스마트워치 5개를 사 부서원들끼리 나누어 가진 지자체도 있었습니다.
가짜 영수증을 내고 구매한 스마트워치. 〈사진=권익위〉

가짜 영수증을 내고 구매한 스마트워치. 〈사진=권익위〉


출장비도 공무원들의 먹잇감이 됐습니다. 교육청 3곳을 포함해 모두 8개 기관에서 출장을 안 가 놓고 갔다고 허위로 등록하는 등의 수법으로 3년 8개월 동안 약 2억 8600만원을 부당하게 받아갔습니다.

이 예산으로 외유성 해외 출장을 간 공공기관도 있습니다. 한 정부 산하기관은 유럽 4개 나라를 도는 데 1억 1천만원을 썼습니다. 다른 곳은 유럽과 호주 등으로 10차례에 걸쳐 해외 출장을 가는 데 1억 7천만원 정도를 지출했습니다. 모두 지침 위반입니다.

◆기관이 직접 나서 수백억원 '나눠먹기'

개인의 일탈 수준을 넘어 기관 자체가 조직적으로 시설부대비 등 예산 '나눠 먹기'에 나선 곳도 있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시설부대비 450억원과 보상비 약 149억원 등 약 600억원을 전용해 직원 월급으로 나눠줬습니다. 권익위는 도로공사가 이런 '예산 불법 전용'에 나선 게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라고 판단했습니다. 주요 평가항목인 인건비 지출을 확 줄이면 경영 평가도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도로공사는 이 기간에 4년 내리 공공기관 경영평가 A등급을 받았습니다. 그 직전인 2018년엔 B등급이었습니다.

◆'쌈짓돈'된 시설부대비…왜?

권익위가 이번에 조사한 건 지자체 9곳, 교육청 3곳, 공직 유관단체 2곳 등 모두 14곳입니다. 이곳들이 빼돌린 금액만 모두 12억 2천만원에 이릅니다. 전체 공공기관으로 범위를 넓히면 규모가 얼마나 클지 알 수 없습니다.
권익위가 조사한 14개 공공기관 목록. 〈사진=권익위〉

권익위가 조사한 14개 공공기관 목록. 〈사진=권익위〉


'시설 부대비'가 공무원들의 '쌈짓돈'이 된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예산이 너무 많이 남는단 게 문제입니다. 권익위에 따르면 한 해 전체 공공기관의 시설부대비는 1100억원입니다. 이 중 못 쓰고 남는 돈, 즉 불용예산 비율이 27%에 이릅니다. 해마다 300억원 가까운 돈이 남는 겁니다.

결국 연말마다 남는 예산을 소진한단 명목으로 사실상 횡령이 이뤄지고 있단 게 권익위의 진단입니다. 실제 권익위 조사로 드러난 스포츠용품 구매 사례도 연이나 하반기에 집중됐습니다. 예산 낭비를 줄이려면 적정한 규모로 예산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건 지자체의 감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권익위에 따르면 억대 예산 착복이 적발된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부정 사용이 거의 없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지자체 감사관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예산 부정 사용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려면 권익위원회 같은 상급 기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권익위는 이번에 조사한 14개 기관 외에 더 많은 부정 사례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조사를 확대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공익신고와 심사 건도 권익위로 많이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익위가 아니더라도 국회나 감사원 같이 감사 역량을 갖춘 기관이 전수조사를 통해 실태부터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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