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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보기] 동물이 함부로 할 물건인가요? 법에선 '동물=물건'

입력 2023-11-29 19:18 수정 2023-11-2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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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문장만 보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틀렸습니다. 우리 법에선 동물을 물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물권 보호를 위해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민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동물권 보호를 위해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민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우리나라 민법 제98조에서는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에서는 동물을 유체물로 보고, 물건에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동물을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할 경우 형법 제366조의 재물손괴죄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약 552만 가구. 반려인은 1262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늘어나고, 단순히 동물이 아닌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민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021년에 민법 개정안 발의한 법무부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2021년 민법 제98조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법무부는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동물 학대나 유기 방지,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 개선 등 동물권 보호 강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은 확산되는 데 반해, 법은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의원 입법안도 잇따라 발의됐습니다. 21대 국회 들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3건 발의된 건데요.

최근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순히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내용을 넘어 '동물은 물건이 아닌 감각이 있는 생명체'라고 명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 의원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있어 생명 존중과 동물 보호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고,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여야는 민법 개정안 취지에 동의하고 21대 국회 임기 내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법안들은 여전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입니다. 법원행정처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인데요.

법원행정처는 동물이 사법상 어떤 권리와 지위를 지니는지 구체적으로 규율하지 않아 법적 혼란과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신중검토' 의견을 냈습니다.
 
동물권 보호를 위해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민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동물권 보호를 위해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민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민법 개정안은 선언적 규정…큰 혼란 없을 것”


논의에 진전이 없는 사이, 동물보호단체와 국회 등에서는 민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29일) 국회에서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 촉구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민법 개정안은 동물권 강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당장 법안을 통과시켜도 사회에 혼란을 일으킬 만한 법적인 지위 변동이 있진 않을 거란 겁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민법 개정안은 동물을 물건과 구분함으로써 독자적인 법적 지위를 갖도록 하는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면서 “별도의 후속 입법이 없으면 동물의 법적 지위가 곧바로 권리주체로 승격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현행 민법에서는 사람만이 권리와 의무의 주체이고 물건은 객체로 규정하는데, 민법을 개정한다고 해서 당장 동물이 주체가 되는 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민법 개정안 통과는 동물권, 동물복지의 완성이 아닌 시작이며 동물의 시효적 보호와 생명 존중, 동물과 사람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변화의 출발점"이라며 "이번 정기국회 내에 입법이 반드시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도 “동물을 비물건화하는 민법 개정안이 동물권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만능열쇠는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이 선언적 조항을 시작으로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를 눈감아주는 우리 사회의 여러 법과 제도를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정호 서울대학교 연구교수는 민법 개정안과 관련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에 대해 '특별한 규정 없이 상징적 규정만 도입했다'는 비판이 있다”며 “하지만 현재 국회에는 이혼 시 동물에 대한 보호책임과 반려동물 배상액 및 위자료와 관련한 법안들의 발의돼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최 교수는 “완전한 사회적 합의를 바라는 건 지나친 이상”이라며 “물론 설득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회적 합의만을 너무 강조하면 소수자에 대한 보호는 불가능하다”며 민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습니다.
 

'동물은 물건 아닌 감각 있는 생명체' 해외선 이미 법 개정

제주도가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주도가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미 해외에서는 동물을 물건으로 보지 않는 곳들이 많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어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 많은 국가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입법이 이뤄졌죠.

프랑스에서도 동물은 감각이 있는 생명체로 보고 있고, 스페인은 동물을 감응력(주변 환경을 느끼고 지각할 수 있으며 즐거움, 괴로움, 긍정적·부정적 상태를 경험하는 능력)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예 동물이나 생태계 등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 법인격을 부여한 사례도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환가누이강에, 스페인은 석호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 중요한 생태계를 보호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최근 제주도에서도 생태적 가치가 큰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장은 “그동안 인간중심주의 때문에 각종 위기에 봉착해 인류는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면서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재정립하는가가 시급한 문제다. 일단 민법 개정안이 시작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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