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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내년 고립·은둔 청년 지원 800명으로 확대

입력 2023-11-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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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은둔 청년'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폭행을 당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평소 작은 체구에 콤플렉스가 있던 A씨는 사건 이후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졌습니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었죠.

사회적 관계는 물론 가족과도 연락이 끊겼던 A씨가 밖으로 나온 건 또래 청년들이 생활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주한 뒤부터였습니다. 서울시 지원으로 시작한 활동이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던 고립 청년들과 함께 요리, 운동, 취미생활을 하면서 관계 맺기를 다시 시작했고,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A씨처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고립·은둔 청년들이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고립·은둔 청년 800명 규모 지원…전담 센터도 설립”

오늘(21일) 서울시가 '서울 청년 마음건강 및 고립·은둔 청년 지원 강화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이지현 기자〉

오늘(21일) 서울시가 '서울 청년 마음건강 및 고립·은둔 청년 지원 강화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시는 오늘(21일) '서울 청년 마음건강 및 고립·은둔 청년 지원 강화 정책토론회'를 열고 고립·은둔 청년 지원 개선책을 밝혔습니다.

내년부터는 고립·은둔 청년 전담 센터를 만들어 고립 청년 발굴부터 사후 지원까지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지원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방침입니다.

이자영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청년사업반장은 토론회에서 “내년 4월 고립·은둔 청년 전담 센터를 발족해 고립 청년 발굴부터 지원, 사후관리까지 모든 기능을 통합해 관리할 예정”이라며 “케어와 지원이 장기간 지속되면 청년들이 재고립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올해 500여명 규모였던 고립·은둔 청년 지원 규모를 내년에는 800명 정도로 늘릴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한 기관과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고립 청년들이 모여 관계망을 쌓을 수 있는 전용 공간도 확보할 예정입니다.

늘어나는 고립·은둔 청년…”사회적 비용 연간 7조 원”


고립 청년은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가 부족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기 어려운 청년을 말합니다.

은둔 청년은 고립 청년 중에서도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고 방이나 집에서만 생활하는 청년을 말합니다.

고립·은둔 청년은 늘고 있습니다. 만 19~34세 청년 중 고립 청년 비율은 2019년 13.4%에서 2021년 15.1%로 늘었습니다. 은둔 청년 비율도 같은 기간 3.1%에서 5.0%로 증가했죠.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고립과 은둔을 선택하는 청년 중 약 40%는 만 25~29세에 고립을 시작합니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로 나서는 시기입니다.

실제 청년들이 고립·은둔을 시작한 계기는 실직과 취업의 어려움(45.5%)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심리적·정신적인 어려움(40.0%), 인간관계 맺기 어려움(39.9%)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고립 기간은 1~3년 미만이 26.5%로 가장 많았고 3~5년 미만이 20.7%로 뒤를 이었습니다. 점점 고립 기간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문제는 고립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서적 괴로움과 좌절, 절망감이 커진다는 겁니다. 심한 경우 자살시도로도 이어집니다.

청년 개인적인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인 비용도 발생합니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청년 고립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연간 약 7조 원에 달합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각종 급여와 수당 등 정책비용, 고립 때문에 생기는 질병비용을 더한 겁니다.

만약 정부가 일찍이 고립 청년을 발굴해 사회로 복귀시킨다면 사회적 비용은 줄어듭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고립 청년 비율은 (2019년 기준) 3.1%에서 2.5%로 낮출 경우 연간 비용이 7조원에서 5조 8000억원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고립 청년 1인당 300만원을 지원하는 서울시의 경우 7만 명에게 지원을 해주면 사회적 비용 1조 2000억 원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입니다. 그는 “고립 청년에 대한 지원사업은 비용이 아닌 투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광주·서울·인천 등 지자체 5곳만 지원사업 진행 중

'두더집'에서는 고립·은둔 청년들이 함께 요리하고 밥을 나눠먹는 점심밥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이지현 기자〉

'두더집'에서는 고립·은둔 청년들이 함께 요리하고 밥을 나눠먹는 점심밥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이지현 기자〉


하지만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부 지자체 차원의 지원만 자체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 정부 차원의 지원은 아직 없죠.

지난 2019년 광주광역시가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사업을 시작한 이후 서울시와 인천광역시 등 지자체 5곳에서 고립·은둔 청년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 지원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올해 538명을 지원한 서울시가 가장 큰 규모죠. 참고로 서울시 전체 고립·은둔 청년 규모는 약 13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또 고립 청년 특성상 청년들에게 접근하고 발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발굴한다고 해도 본인 의지가 없으면 지원을 이어가긴 어렵습니다.

한때 은둔 청년이었고, 지금은 고립 청년 지원 기관을 운영 중인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고립 청년 지원 정책 모색 토론회에서 “고립·은둔 청년 규모가 작지 않아 더욱 접근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는 “서울시에만 고립 청년이 13만 명인데 공적 지원은 500여명이 대상”이라며 “당사자가 고립되는 속도보다 느리다”라고 말했습니다.

보건복지부, 내년 960명 규모 고립·은둔 청년 지원


그래서 청년 고립 문제를 지자체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청년복지 5대 과제'를 발표하면서 고립·은둔 청년 지원 시범사업안을 발표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4개 광역시·도에서 총 960명의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13억원의 정부 예산안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아예 고립·은둔 청년과 같은 '청년 취약계층'을 법에 새롭게 정의하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난 5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청년자립 지원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취약 상황에 놓인 청년에 대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지원 근거와 내용, 방법을 규정해 체계적인 자립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법안은 아직 상임위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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