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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수원 전세사기' 은닉재산 추적기

입력 2023-11-06 16:04 수정 2023-11-06 16:48

'수원 왕 회장' 돈 없다더니…토지와 별장, 수상한 자금 흐름도 확인
차명 법인과 건물도 추적…"알려지지 않은 건물 많아 피해 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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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왕 회장' 돈 없다더니…토지와 별장, 수상한 자금 흐름도 확인
차명 법인과 건물도 추적…"알려지지 않은 건물 많아 피해 늘 것"

보증금 못 돌려주는 임대인은 큰소리치고 임차인은 사정합니다. 뭔가 상식과 다른 이 장면, 어쩌면 수원 전세 사기 사건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정 모 씨/'수원 전세 사기' 사건 피의자 (지난 4월 통화 녹음)]
"{저희는 어떻게 해요?} 그 집에 사는 거지. 뭘 어떡해, 어떡하기는. 세상에 죽으라는 법 있어요?"

전세 기간이 끝나자 보증금 1억 8000만 원을 돌려달라는 당연한 요구. 임대인 정 모 씨는 "부동산 시장이 나빠져서 줄 돈이 없다"고 말합니다. 통화 처음부터 끝까지 돈 못 주는 임대인은 여유로웠고 세입자는 절박했습니다.

줄 돈이 없는 사람이 왜 더 큰소리를 칠까. 정말 줄 돈이 없는 걸까 아니면 안 주는 걸까. 이 물음 때문에 임대인 정 씨 부부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양평 1만1000평 부동산 발견…임대인 일가 별장도 쏟아졌다


임대인 정 씨가 경기도 양평에 숨어 있다는 제보부터 확인했습니다. 찾아가 봤더니 유명 인사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정 씨를 '수원 왕 회장'으로 불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평당 수백만 원 하는 알짜배기 토지를 대거 사들였고 수목원과 카페, 햄버거 가게를 열었다는 겁니다. 별장도 여러 채 갖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등기부 등본을 일일이 확인했더니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정 씨는 지난 2021년부터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확인한 것만 1만 1000평에 달했습니다. 이곳에 카페 등을 내면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양평에만 별장 세 채를 갖고 있었습니다. 한 채는 지난 4월 팔았고 나머지는 세를 주고 있습니다. 이 물건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정 씨가 양평에 지역공동체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수원 전세사기' 임대인 일가 등기부 등본을 확인하는 취재진

'수원 전세사기' 임대인 일가 등기부 등본을 확인하는 취재진


정 씨 부동산은 양평뿐 아니라 평택, 용인, 강원도 양양에도 있습니다. 강릉과 춘천, 제주 등에도 토지와 건물이 있다는 제보가 잇따랐지만,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슨 돈으로 이런 부동산을 사들였을까요. 세입자들에게 돌려줄 보증금은 없다는데 이 돈을 빼돌린 건 아닐까요. 이 부동산을 팔아 보증금 돌려줄 생각은 안 했는지도 묻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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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 부동산 정황도 포착…"알려지지 않은 건물 많아 피해 1천억 넘을 것"


[정 씨 법인의 핵심 관계자]
"건물과 법인 명의는 다른 사람으로 해놓고 전세보증금은 정00이 받아 갔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차명 건물들이 많아 피해는 1천억이 넘을 겁니다."

정 씨 법인 핵심 관계자 증언입니다. 이른바 '바지사장' 명의로 건물을 사들여 세를 놓았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확인이 쉽지는 않습니다. 바지사장들이 "진짜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라고 취재진에게 실토해야 하는데, 차명 의혹을 받는 정 씨 친척들은 모두 부인하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다만, 실마리는 잡았습니다. 지난 4월까지 정 씨가 차명으로 운영했던 한 법인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정 씨 명의로 돌려놓은 상태. 이 법인은 건물 세입자들과 바지사장 명의로 계약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개사들은 실제 주인은 정 씨라고 말해왔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라 괜찮다"고도 했습니다. 왜 다시 명의를 자신으로 돌렸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 씨 법인 핵심 관계자는 정 씨가 처벌을 염두에 두고, 명의를 빌려준 친인척 등에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 아니냐고 추정했습니다.

[이 씨/세입자]
"(2년 전) 계약 당시엔 법인 대표가 차00이었고. 차00이 와서 계약했어요. 부동산은 정00이 사장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요."

이런 차명 법인과 건물은 얼마나 될까. 취재진이 확인한 건물만 지금까지 7곳, 152세대입니다. 규모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최근 수원시청은 "정 씨 친인척 명의로 된 건물을 추가로 확인했다"면서 "아직 피해가 접수되진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건물과 다른 곳입니다. 자신이 정 씨 건물에서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세입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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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흐름 따라가 보니 '유명 개그맨' 나왔다…무슨 돈으로 치킨 사업을?


차명 부동산과 별개로 정 씨가 만든 부동산 법인 18개 자금 흐름도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수상한 흐름이 잡혔습니다. 최근 6개월 동안 특정 법인으로 정 씨 돈 2억 9천만 원이 간 겁니다.

해당 법인을 추적해보니 정 씨는 부동산 말고 다른 업종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태양광뿐 아니라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도 추진했습니다. 치킨 사업을 위해 유명 개그맨과도 논의를 해왔습니다. 해당 개그맨 측은 "정 씨가 땅이 많다며 접근했다"고 했습니다. 돈 없다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던 기간 정 씨는 다른 사업을 벌일 돈은 있었던 겁니다.

정 씨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사는 데만 4700만 원을 썼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가 알려지기 시작한 9월, 이 한 달 동안 할인마트 상품권을 사는 데 4800만 원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돈 없어서 전세보증금 못 돌려준다"는 해명은 궁색해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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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땅 팔아 전세보증금 돌려주겠다" 약속, 과연 지킬까?


지난달 17일 경찰 압수 수색 때 정 씨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때 "양평 땅 팔아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과연 이 약속이 지켜질지는 의문입니다. 건설사 등에 진 빚을 먼저 갚기 위해 이미 일부 땅을 넘겼습니다.

지난달 17일 '수원 전세사기' 사건 피의자인 정 씨 모습.

지난달 17일 '수원 전세사기' 사건 피의자인 정 씨 모습.


'수원 전세 사기' 피해 규모는 매일 늘고 있습니다. 1200억 원을 넘을 것이란 추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 씨 차명 건물 등이 추가로 나오면 피해 규모는 사실 어디까지 커질지 알 수 없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피해자들은 대부분 2~30대 사회 초년생입니다. 이들은 "이전 사건처럼 언론도 잠깐 주목하고, 정부도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놓다가 끝날 것 같다"고 걱정했습니다.

저희는 이 사건 끝까지 추적해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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