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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는 맏손자 집에서'가 현행법령?…현실 못따라가는 가정의례준칙

입력 2023-09-28 10:21 수정 2023-09-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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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유교적 관습에 얽매여 있는 법령이 존재한다. 건전가정의례준칙은 여전히 차례를 맏손자 가정에서 지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유교적 관습에 얽매여 있는 법령이 존재한다. 건전가정의례준칙은 여전히 차례를 맏손자 가정에서 지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차례는 명절 아침에 맏손자 가정에서 지낸다”

조선시대 차례 규정 같지만 2023년 현재 아직도 존재하는 대통령령 일부입니다.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는 집까지 생길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지만 차례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률과 시행령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이라는 이름으로 여성가족부 소관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아래 남아있는 준칙이 그 주인공입니다. 1969년 처음 제정된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쳐 법적 규제는 폐지됐지만 의례 절차에 관한 규정은 권고적·훈시적 법령으로 바뀌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에는 이런 제사 장소 외에도 여러 가지 규정이 담겨있습니다. '기제사의 대상은 제주부터 2대조까지로 한다', '기제사는 매년 조상이 사망한 날에 제주의 가정에서 지낸다', '주상은 배우자나 장자가 된다', '사망자의 자손이 없는 경우에는 최근친자가 상례를 주관한다' 등 내용이 있습니다. 이밖에 결혼식의 식순은 물론 혼인서약의 내용까지도 존재합니다.

이런 건전가정의례준칙의 취지는 애초 “건전한 가정의례의 정착과 지원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허례허식을 없애는 등 건전한 사회 기풍을 진작하기 위함”이라고 규정돼 있었지만 집안 대소사를 주관하는 '장자'의 몫을 규정하고 남성을 중심으로 사회규범을 정한 과거 유교적 전통의 잔재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참여와 대우를 받고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한다'는 현재의 양성평등기본법 취지와는 어긋나는 겁니다.

이처럼 유교적 의례문화가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로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가 친조부모상과 외조부모상 유급휴가일을 다르게 정했다”, “부친상을 치를 때 모친을 '남편과 함께 죽어야 했지만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미망인'으로 지칭해 항의했다”는 항의가 꾸준히 나오기도 합니다.

유교 전통문화를 보존해온 성균관도 해당 준칙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최근 서울신문 등과의 인터뷰에서 "가정의례준칙이 처음 제정된 1969년과 달리 이제는 국가가 가정의례의 중심이 될 수 없다"며 "성균관은 유교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자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례상 역시 변화의 대상입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밝힌 '명절 인사법 및 차례 방안'에 따르면 송편 차례상의 기본은 송편, 나물, 구이(적), 김치, 과일 4종류와 술을 포함해 총 9가지입니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리면 육류, 생선을 놓을 수 있고 음식을 추가로 올리거나 빼는 것은 가족 간 합의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성균관은 또 유교에는 조상의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만 있을 뿐 명절 제사는 없고 '차례'는 제철 음식을 후손들만 먹는 것이 죄송스러워 조상께 음식을 올리는 행사라고 규정했습니다. 성대한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 행위를 조상에 대한 불효로 여기는 생각은 오해라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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