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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8000원의 한 끼' 쪽방촌 동행식당…"추석에도 열어요"

입력 2023-09-28 09:10 수정 2023-09-2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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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주민들에게 배달되는 도시락. 반찬과 밥, 국 등이 함께 배달된다. 〈사진=이지현 기자〉

쪽방촌 주민들에게 배달되는 도시락. 반찬과 밥, 국 등이 함께 배달된다. 〈사진=이지현 기자〉


“추석 때 어디 안 가요. 갈 데가 없어. 집에 있어야지…”(80대 정 모 씨·쪽방촌 주민)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방. 이곳에 사는 정 씨는 긴 추석 연휴 내내 쪽방에 머물 예정입니다. 거동이 불편해 외출하기도 어렵고, 나간다고 해도 마땅히 만나러 갈 가족이 없습니다.
 
80대 정 모 씨가 살고 있는 서울 창신동 쪽방촌. 정 씨는 이번 추석에도 집에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사진=이지현 기자〉

80대 정 모 씨가 살고 있는 서울 창신동 쪽방촌. 정 씨는 이번 추석에도 집에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사진=이지현 기자〉

쪽방촌 주민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가족과 연이 닿지 않거나, 닿는다고 해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 명절을 혼자 보내는 경우가 많죠.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풍성한 한가위를 보낼 때 쪽방촌 주민들은 외롭게 끼니 걱정을 해야 합니다.

이런 주민들을 위해 추석 연휴 내내 문을 열기로 한 식당들이 있습니다.
 

쪽방촌 주민들 끼니 챙기는 '동행식당'…“명절에도 문 못 닫아”

서울 창신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병윤(65) 씨. 김 씨의 식당은 '동행식당'이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창신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병윤(65) 씨. 김 씨의 식당은 '동행식당'이다. 〈사진=이지현 기자〉


“저희가 문을 닫으면 식사 거르고 굶는 분들도 계세요. 그러니까 명절에도 쉴 수가 있나요. 어르신들 식사 한 끼는 차려 드려야죠.”(김병윤 씨·서울 창신동 A식당 사장)

김병윤 씨(65)가 운영하는 고깃집은 서울시 동행식당입니다. 동행식당은 쪽방촌 주민들이 하루 한 끼 무료로 식사할 수 있는 식당입니다.

서울시에서 매일 8000원짜리 식권을 지원해주면 주민들은 동행식당에서 식권 가격에 맞는 메뉴를 자유롭게 골라 먹을 수 있습니다.

김 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생선구이, 제육볶음, 순두부찌개, 청국장 등 다양한 '동행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습니다.

김 씨는 “9000원짜리 메뉴도 달라고 하면 만들어 드린다”면서 “같은 메뉴를 매일 먹으면 질릴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다양하게 드리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배달되는 도시락. 반찬과 밥, 국 등이 함께 배달된다. 〈사진=이지현 기자〉

쪽방촌 주민들에게 배달되는 도시락. 반찬과 밥, 국 등이 함께 배달된다. 〈사진=이지현 기자〉

김 씨 가게에 찾아오는 쪽방촌 주민은 하루 30~40명 정도. 하루 한 끼 제대로 된 식사를 하러 오는 주민들이 대부분입니다. 주말에도, 명절에도 식당 문을 닫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김 씨는 “지난해 8월부터 동행식당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가게 문을 닫은 날이 없다”면서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끼니 챙겨 드시고 얼굴이 좋아지는 주민들 보면 뿌듯하니까 계속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식당을 찾은 70대 주민 김 모 씨는 “이번 추석에도 집에 있을 거라 여기 와서 밥을 먹으려 한다”면서 “입맛에 맞게 음식을 잘 해주고, 쉬는 날도 거의 없으니까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서울시 5개 쪽방촌에 있는 동행식당은 총 43곳. 그 중 절반가량이 추석 연휴에 정상영업을 할 예정입니다. 창신동에 있는 7개 동행식당 중에서도 5곳이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삼촌, 이모”…사랑방 역할 하는 동행식당


“OO삼촌 왔어요? 오늘은 뭐 드실래요? 오늘 코다리찜 하는데 그거 드릴까요?”(박성순 씨·서울 창신동 B식당 사장)

창신동의 또 다른 동행식당. 오늘의 메뉴는 코다리찜입니다. 메뉴판에도 없는 메뉴죠.

박 씨는 “코다리찜 같은 건 쪽방촌 주민분들이 밖에 나가서 사 먹기 어렵지 않냐”며 “맛 한 번 보시라고 가격에 맞춰서 만들어 드리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메뉴판에 없더라도 주민들이 찾는 메뉴는 웬만하면 만들어줍니다. 산에 간다는 주민에게는 김밥을 싸 주고,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 주민에게는 죽을 쒀주는 식입니다.
 
서울 창신동에서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성순(57) 씨. 박 씨의 식당 역시 서울시 동행식당이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창신동에서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성순(57) 씨. 박 씨의 식당 역시 서울시 동행식당이다. 〈사진=이지현 기자〉

박 씨는 쪽방촌 주민들을 '식구'라고 불렀습니다. 주민들을 부를 땐 이름 뒤에 '삼촌'과 '이모'를 붙이죠.

그는 “동행식당 초반에 종이 식권을 받았는데, 거기에 주민들이 사인을 해야한다. 그래서 이름을 알게 됐다”면서 “그때부터 나이와 관계없이 이름 뒤에 삼촌, 이모를 붙여서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분은 '삼촌'하고 불렀더니, 그런 호칭은 평생 처음 들어본다면서 감동 받으시더라”고 덧붙였습니다.

대부분 혼자 지내는 쪽방촌 주민들. 그들에게 박 씨의 식당은 누군가와의 유대관계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된 겁니다. 덕분에 데면데면하던 동네 주민들끼리도 친분이 쌓였습니다.

박 씨는 “저도 이곳에서 10년 장사를 했는데 동행식당을 하기 전에는 주민분들을 거의 몰랐다”면서 “쪽방촌 주민분들끼리도 서로 모르다가 식당에 와서 이름을 알게 되고, 인사 나누면서 같이 밥 먹고 하니까 유대관계가 많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박 씨의 식당도 이번 추석 연휴 내내 정상 영업을 합니다. 그는 “차례를 지내야 해서 추석 당일 오전에만 쉬고 오후에는 정상 영업을 하려고 한다”며 “이전에는 신정이나 명절 당일에는 쉬었었는데, 동행식당 한 뒤부터는 하루도 못 쉬고 있다”고 했습니다.
 

거동 불편한 주민에게는 '배달'도…“매일 건강 체크해요”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에게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도시락을 배달해준다. 〈사진=이지현 기자〉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에게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도시락을 배달해준다. 〈사진=이지현 기자〉


김병윤 씨와 박성순 씨가 운영하는 식당은 모두 거동이 불편한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도시락을 배달하기도 합니다.

김 씨는 “몸이 불편한 손님들은 식당에 나와서 식사를 할 수 없으니 매일 정해진 시간에 도시락을 가져다 드린다”면서 “입맛에 맞는 반찬이 뭔지, 무얼 좋아하는지 기억해뒀다가 맞춰서 갖다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는 “원래 식당에서 배달을 거의 안 하는데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배달을 해 드린다”면서 “어르신들 잘 계신지 보고 인사도 드리고 건강도 체크할 겸 직접 배달을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일같이 도시락을 하다 보니, 식당이 주민들의 안녕을 들여다보는 보호막 역할까지 같이 하고 있는 겁니다.

박 씨는 “한번은 한 할머니가 복지관에 가서 음식을 잘못 먹고 심하게 체했던 적이 있었다”며 “저희가 그날 마침 배달을 가게 돼서 할머니 상태를 보고 약을 사다 드렸다. 증세가 심각해 병원에도 가셨었는데, 미리 발견해서 다행이었다”고 했습니다.
 

물가 오르고 다른 손님 받기도 어렵지만 “동행식당, 계속할 것”

서울시 동행식당. 이곳은 쪽방촌 주민들이 하루 한 끼 무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다. 주민들에게는 하루 8000원의 식권이 제공된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시 동행식당. 이곳은 쪽방촌 주민들이 하루 한 끼 무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다. 주민들에게는 하루 8000원의 식권이 제공된다. 〈사진=이지현 기자〉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지만 동행식당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쪽방촌 주민들이 식당을 많이 찾는 날에는 앉을 자리가 부족해 다른 손님을 받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쪽방촌 주민들을 보고 손님들이 불편함을 드러내는 일도 있죠.

치솟는 물가도 부담입니다. 재룟값은 계속 올라가는데, 지원되는 식비는 8000원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격을 올리거나 나가는 음식량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김병윤 씨는 “동행식당을 한 덕에 주민분들이 많이 찾아와주니 저희 가게도 더 잘 되고 도움을 받았다”면서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어도 지원되는 식비를 올려달라고 할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박성순 씨도 “저녁에 도시락 배달 나가면 주민분들이 '남겨뒀다가 내일 아침도 이 도시락을 먹겠다'고 한다”면서 “그 얘기를 듣고 어떻게 많이 안 드릴 수가 있겠냐”고 했습니다. 그는 “저희도 장사하는 입장이어서 남는 게 있어야 할 텐데고민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양을 줄일 수는 없겠더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으로도 동행식당을 계속할 건지 물었습니다. 김 씨와 박 씨 모두 입을 모아 “그렇다”고 했습니다.

박 씨는 “이제는 그냥 식구라고 생각한다”면서 “밥 차려 드리면서 식구들 잘 지내나 얼굴도 보고 하는 거니 앞으로도 쭉 할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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