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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비싸서 안 돼? 안 해서 비싸!…미룰수록 멀어지는 수소경제

입력 2023-09-25 08:01 수정 2023-09-25 09:3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02)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에너지, 수소
글로벌 수소 이야기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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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02)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에너지, 수소
글로벌 수소 이야기 (4/4)

지구에서 가장 흔한 물질로 우주의 75%를 차지하는 수소. 하지만 물(H2O), 메탄(CH4)처럼 다른 원소들과 함께해 순수한 수소 원소 자체를 구하기엔 너무 어려운 물질입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18세기에 수증기(물)에서 수소를 떼어내는 데에 성공했고, 19세기엔 이 물에 전기를 가해 수소를 얻기도, 반대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름하여 '가스전지(Gas Battery)', 오늘날 우리가 연료전지라고 일컫는 이 물건은 세상에 나온 지수백년이나 된 겁니다. 그러다 미국의 기계 제작사 앨리스-찰머스는 1959년 이러한 연료전지를 상용화한 트랙터를 생산, 판매했고, 이어 1966년 GM은 6인승 밴을 뜯어고쳐 수소 연료전지전기차를 만들어 주행하는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세계 최초 AFC(알카라인 연료전지) 상용화 제품인 앨리스-찰머스의 트랙터. (사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세계 최초 AFC(알카라인 연료전지) 상용화 제품인 앨리스-찰머스의 트랙터. (사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순수한 수소를 얻고, 이를 활용하는 노력이 이어진 것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세계 각국이 본격적으로 수소경제 활성화에 나선 것은 금세기부터였죠. 한국은 그러한 움직임에서 결코 뒤처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2008년, 녹색성장과 함께 수소에 주목했고, 2019년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녹색 전환의 선도국가로 손꼽히는 독일(2020년 6월)보다 1년 반 가량 먼저 국가 차원의 로드맵을 발표한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비싸서 안 돼? 안 해서 비싸!…미룰수록 멀어지는 수소경제
하지만 탄소중립의 달성 수단으로써 수소의 중요성에 주목해 수소 그 자체의 생산 역량 또는 확보 방안부터 찾아나선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는 '기존에 잘 하던' 수소 FCEV(Fuel Cell Electric Vehicle, 연료전지전기차)와 연료전지에 집중했습니다. 청정 수소 생산의 원천기술인 수전해 기술조차 확보하지 못 한 상태였지만, 정부가 내세운 비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이었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비싸서 안 돼? 안 해서 비싸!…미룰수록 멀어지는 수소경제
우리의 계획, 예상 또는 기대와 달리 FCEV는 글로벌 무공해 승용차 전환 과정에서 '메인 스트림'이 되지 못 했습니다. 그 사이 해외의 수소 생산 역량은 무럭무럭 성장했고, 수소는 온실가스 감축이 너무도 어려운 제철과 석유화학 등 주요 다배출 업종의 '감축 해결사'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청정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그린수소를 통해 좀처럼 답이 없어 보였던 산업구조의 탈탄소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 것이죠.

탈탄소 또는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전환은 우리에게도 절실한 일입니다. 처음엔 2030년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국가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정부는 대대적인 감축을 요구했고, 산업계는 '시기 상조', '수출 경쟁력 약화' 등을 내세우며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EU의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 등 국내 기업의 수출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됐죠. 이젠 반대로 산업계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3년 전, 일본에서 기업들이 자국 정부에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 너무 어렵다”며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해주지 않는다면,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던 일이 떠오르는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세계 각국은 수소 전략을 통해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고, 온실가스도 줄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상황.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비관론이 우세합니다. '한국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섭니다. 제조업 비중이 높다, 그린수소는 비싸다, 재생에너지는 한국에서 안 된다… 그 이유도 여럿입니다. 과연, 정말 그럴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비싸서 안 돼? 안 해서 비싸!…미룰수록 멀어지는 수소경제
주요 선진국 가운데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해봤습니다. 두 나라 공히 수소경제 전략을 발표했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그 외의 내용은 너무도 다릅니다. 한국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배경과 목표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 도약 목표'를 내세웠지만 독일은 〈국가 수소전략〉에서 탈탄소 추진, 기후목표 달성을 목표로 꼽았습니다. 이러한 '지향점'의 차이는 전략 내용의 차이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존 강점인 수소차의 양산 체계 구축을 제1 과제로 삼았고, 그린-블루-그레이 논할 것 없이 수소의 대량 생산기술 확보를 그 다음 과제로 꼽았습니다. 반면 독일은 그린수소의 생산 기반을 마련하고, 제철 및 화학 등 산업계의 지원과 각종 신규 프로젝트의 시행을 주요 과제로 꼽았습니다.

독일이라고 제조업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의 제조업 비중은 20%에 육박합니다. 제조업 분야 기업의 자국 내 감축 부담은 어떨까요. 배출권 가격과 전기요금은 대표적인 대내 부담 요소 중 하나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을수록, 제조 과정에서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가격도, 전기요금도 모두 독일이 더 높습니다. 그럼, 다배출 업종의 정수로 꼽히는 제철업이 독일엔 없을까요. 이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조강 생산 현황을 살펴보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고로 방식의 생산 비중은 독일이 더 큽니다. 이는 독일의 기업의 출발선이 한국 기업보다 월등히 앞서있다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비싸서 안 돼? 안 해서 비싸!…미룰수록 멀어지는 수소경제
수소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은 수소차, 즉 수송부문에 있지 않습니다. 산업부문, 그중에서도 온실가스 집약도가 최고 수준인 제철업에 있습니다. 여전히 국내에서 '먼 미래의 일', '꿈의 기술'로 불리는 수소환원제철이 바로 그것입니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광석과 코크스(석탄)를 반응시켜 철을 얻는 기존의 공법에서 코크스를 수소로 대체하는 공법을 의미합니다. 철광석과 코크스가 만나면 그 부산물로 이산화탄소가 나오지만, 철광석과 수소가 만나면 수증기가 나오게 되죠. 환원 과정에 탄소가 투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EU를 중심으로 탄소중립 논의가 본격화한 2020년을 전후로, 해외 기업들을 발빠르게 수소환원 공법의 R&D에 착수했는데요, 어느 기업이 언제, 어떤 프로젝트에 착수했는지 10개 기업의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아래의 표는 2020년 조강 생산량 상위 9개 기업, 그리고 생산량은 적지만 수소환원제철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1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비싸서 안 돼? 안 해서 비싸!…미룰수록 멀어지는 수소경제
글로벌 조강 생산량 2위인 아셀로 미탈은 2030년까지 유럽 내 사업장에선 35%, 글로벌 평균 25%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곳곳의 사업장에서 수소환원제철 등 녹색 프로젝트를 추진중이죠. 아셀로 미탈이 본격적인 수소환원제철 공법의 시도에 나선 시점은 2019년입니다. 그리고, 탄소중립이 특정 국가의 선언을 넘어 글로벌 어젠다로 설정된 이후인 2021년엔 한 해에만 공식적으로 8개의 프로젝트를 출범시켰죠.

조강 생산량은 '글로벌 Top 10'과 견주기 어렵지만,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 상위권 기업으로 발돋움하고자 꾀하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204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스웨덴의 SSAB입니다. SSAB는자국 내 다른 기업인 LKAB(광산업), Vattenfall(발전업)과 함께 2016년 HYBRIT(Hydrogen Breakthrough IronmakingTechnoogy, 수소환원제철 돌파 기술) 프로젝트를 출범시켰습니다. 단순히 수소환원 공법의 확보를 넘어 철광석의 채굴과 수소 및 전력의 생산까지, 그린 스틸(Green Steel)의 밸류체인 전반을 구축하기 위함입니다.

그 결과, SSAB는 2021년 수소환원제철 파일럿 플랜트를 가동했고, 자국내 또 다른 기업인 볼보트럭과 협업해 세계 최초의 그린스틸 트럭을 시범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1월, SSAB의 그린 스틸로 만든 볼보트럭의 전기트럭이 양산돼 실제 소비자에게 인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내에서 '수소 트럭'이 출시되고, 그 트럭의 홍보 또한 활발히 이뤄진 사이에 해외에선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그 그린수소로 트럭을 만들고, 재생에너지로 그 트럭을 충전해 움직이는 말 그대로 '청정 트럭'이 출시된 것입니다. 과연, 어느 쪽의 수소경제가 더 깊이 있는 수소경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스웨덴 볼보트럭은 2022년 11월, 세계 최초로 그린스틸 전기트럭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이를 인도했다. (사진: 볼보트럭)

스웨덴 볼보트럭은 2022년 11월, 세계 최초로 그린스틸 전기트럭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이를 인도했다. (사진: 볼보트럭)

반면, 한국의 제철 기업은 느긋한 모습입니다. 물론, 발빠른 전환이 힘든 상황일 수도 있지만요. 포스코는 2021년에야 해외 기업과 R&D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는 그해 10월, 글로벌 철강업계를 한국으로 불러 모아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을 열었죠.

“세계 최초로 수소환원제철 국제 포럼을 개최한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개방형 개발 플랫폼을 제안해 그린철강 시대를 주도하겠다.”

당시 포스코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담긴 문장입니다. 위에 소개한 스웨덴의 SSAB 또한 이 포럼에 참석했었죠. 이미 파일럿 생산에 성공한 기업의 입장에서 “개방형 개발 플랫폼을 제안해 그린철강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수전해 원천기술도 없이, 오직 넥쏘라는 FCEV 하나만 갖고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을 외쳤던 정부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현대제철은 포스코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수소경제에 있어 '부생수소 생산'이라는 수소 공급원으로써의 역할에 중점을 뒀습니다. 현대제철의 수소환원제철과 관련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전해진 것은 불과 몇 달 전의 일입니다. 올해 안에 수소연구동을 완공하고, 수소환원제철 R&D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비싸서 안 돼? 안 해서 비싸!…미룰수록 멀어지는 수소경제
수소경제를 외쳤음에도 수소를 외면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가격입니다. 직접 만들어 쓰는 그린수소의 가격이 비싸니, 차라리 온실가스 배출 부담이 있더라도 국내 산업 공정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그레이 또는 블루수소를 쓰거나 해외에서 이를 수입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그런데 이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2020년 기준, 그린수소의 가격은 그레이수소의 2~7배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2년만에 그 격차는 크게 좁혀졌습니다. 나라마다 그린수소의 생산 단가가 상이합니다만, 전통의 에너지원 강호인 산유국을 중심으론 kg당 4달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천연가스 가격의 등락에 따라 그레이 또는 블루수소의 가격은 마치 '시가'처럼 요동쳤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자 가스 기반의 수소 가격이 그린수소를 넘어서는 경우까지 나타났죠. 가격의 불안정성에 휘둘리기보다 차라리 차근차근 그린수소 생산 기반을 갖추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선 더 저렴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수소 생산량은 203만톤에 그쳤습니다. 그마저도 모두 그레이수소였죠. 같은 기간, 벨기에와 캐나다, 네덜란드, 미국, 독일은 수백, 수천만달러어치의 수소를 해외에 수출했습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세계 수소 수출 1위의 벨기에는 2억 133.8만㎥(6,350만달러)의 수소를, 5위 독일은 1,326.4만㎥(714만달러)의 수소를 해외에 공급했죠. 이 통계에서 한국의 수출 규모는 3.6만달러에 그쳤습니다.


답은 이미 나왔습니다. 자동차를 넘어선 수소 사용처의 확대, 수소 수입원의 다변화를 넘어선 수입 수소 종류의 다각화, 그리고 그린수소의 국내 생산 상용화를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 등 대대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단편적인 개별 정책 발표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 발표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전면적인 수정과 범국가적인 지원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예산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행동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한국에서만 그린수소의 가격이 비싼 '기형적인 가격구조'는 굳어질 겁니다. 마치,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진 글로벌 LCOE(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균등화발전단가)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LCOE처럼 말이죠.

또한,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도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그린수소 생산을 늘리려면, 수전해 설비뿐 아니라 이 설비를 가동시킬 '녹색 전기'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실천하기 위해선 한국만의 기형적인 LCOE를 바로잡고, 에너지에 정상적인 요금을 부과해야 할 것입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주저했을 때, 우리나라가 잃은 것은 그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만이 아닙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RE100 달성 가능성이 낮아짐으로써 수출 경쟁력 또한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실이 '현재'의 상실이라면, '미래'의 상실도 있습니다. 이러한 주저함을 이어간다면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꿈꿨던 '신 성장동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 또한 '잃어버린 것들'에 포함될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비싸서 안 돼? 안 해서 비싸!…미룰수록 멀어지는 수소경제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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