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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휴지 대신 손수건 드려요"…제로웨이스트 카페 가보니

입력 2023-09-23 09:10 수정 2023-09-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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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한 제로웨이스트카페에서는 휴지 대신 손수건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이지현기자〉

서울 은평구 한 제로웨이스트카페에서는 휴지 대신 손수건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이지현기자〉



'일회용 티슈 대신 손수건 냅킨'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 붙어있는 안내문입니다.

이곳에는 휴지만 없는 게 아닙니다. 일회용 컵도, 일회용 빨대도 없죠.

음료를 테이크아웃하고 싶다면 카페에 비치된 텀블러를 빌려 가면 됩니다. 손님이 빨대를 요청하면 스테인리스나 유리, 실리콘으로 만든 다회용 빨대를 제공합니다.

이곳은 '제로웨이스트 카페' 입니다. 쓰레기를 배출을 최소화한다는 목표로 운영하는 곳이죠.

 

“원두도 포장지 없는 거로 바꿔”…쓰레기 줄이는 이유

서울 은평구 한 제로웨이스트카페에서 손님들에게 대여해주고 있는 텀블러. 〈사진=이지현기자〉

서울 은평구 한 제로웨이스트카페에서 손님들에게 대여해주고 있는 텀블러. 〈사진=이지현기자〉


지난 22일 은평구의 한 제로웨이스트 카페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텀블러를 고르고 있는 손님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음료를 포장하려면 개인 텀블러를 가져오거나, 매장에 놓인 텀블러를 빌려 음료를 담아간 뒤 다시 반납하면 됩니다. 텀블러를 빌려 가는 데에는 별도의 보증금이 없습니다.


이날 처음 카페에 방문했다는 남수정(29) 씨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는 재미도 있고, 굳이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좋다”고 했습니다. 텀블러를 다시 반납하러 오는 게 불편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남 씨는 “사무실이 근처라 괜찮다”며 “텀블러를 반납하러 오면서 카페를 한 번 더 들르게 되니, 자주 오게 되고 그렇게 단골 가게가 생기는 것 같아 재미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을 연 지 2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손님들도 카페 정책을 잘 이해하지만, 초반에는 영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배민지(35) 카페 대표는 “초반에는 손님들이 왜 일회용 컵이 없냐고 많이 당황해하셨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지셔서 저희가 따로 설명해 드릴 필요가 없다”면서 “몇 번 이용하신 뒤에는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오시고, 쓰지 않는 텀블러는 기부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했습니다.

덕분에 매장에서는 텀블러를 따로 구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텀블러 반납도 잘 되고 있습니다. 배 대표는 “초반에는 저희도 텀블러 반납이 잘 안 될까 봐 걱정했는데 대부분 손님이 다시 가져다주시더라”며 “만약 반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텀블러를 다른 곳에서 일회용 컵 대신 사용하실 테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제로웨이스트 카페를 실천하려면 생각보다 신경 쓸 부분이 많습니다.

대부분 카페 매장에 놓여있는 휴지나 빨대를 없앴습니다. 휴지를 매장에 두면 손님들이 사용하는 양보다 많이 가져가고, 결국 그게 다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죠.
 
원두 봉투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지역 로스터리에서 다회용기에 원두를 받아오고 있다. 〈사진=이지현기자〉

원두 봉투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지역 로스터리에서 다회용기에 원두를 받아오고 있다. 〈사진=이지현기자〉

주방에서도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원두 봉투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지역 로스터리에서 다회용기에 원두를 받아오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로 만들어 카페 앞 텃밭에서 사용하고 있죠.

이렇게 엄격한 제로웨이스트 카페를 만든 이유를 물었습니다.

배 대표는 “지금 우리가 쓰레기를 줄이지 않으면 처리할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들은 포화상태인데 새로운 소각장이나 재활용센터를 짓는 건 쉽지 않다”면서 “ 그러니 일상에서 줄일 수 있는 쓰레기들은 조금이라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다회용기 사용 시 2000원 할인…“많은 사람이 경험하길”

서울 마포구 한 제로웨이스트카페에서는 다회용기와 텀블러를 사용하면 대부분 메뉴를 2000원 할인해주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마포구 한 제로웨이스트카페에서는 다회용기와 텀블러를 사용하면 대부분 메뉴를 2000원 할인해주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저희가 일회용 컵은 없어서 다회용컵에 음료 담아 드리는데, 2000원 할인해 드려요. 컵은 나중에 시간 되실 때 가져다주시면 돼요.”(제로웨이스트 카페 매니저)

서울 마포구의 한 제로웨이스트 카페.

제로웨이스트숍에서 운영하는 이 카페에서는 개인 텀블러나 다회용기를 가지고 오면 대부분 메뉴를 2000원 할인해주고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매장에 있는 다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가면 똑같이 할인받을 수 있습니다. 다회용컵은 음료를 다 마신 뒤 매장에 반납하면 됩니다.

박소연 매장 매니저는 “주요 고객들이 주변 회사원이나 주민분들이다 보니 컵 반납은 잘 되는 편”이라며 “반납률이80%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손님들이 일회용 컵과 다회용컵 중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대부분 손님이일회용 컵을 선택했죠.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일회용 컵이었지만 이마저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서울 마포구 한 제로웨이스트 카페에서 제공하고 있는 다회용 컵. 음료를 포장해가는 고객에게는 이 컵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마포구 한 제로웨이스트 카페에서 제공하고 있는 다회용 컵. 음료를 포장해가는 고객에게는 이 컵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그래서 올해부터는 다회용컵만 사용하기로 하고, 할인 폭도 늘렸습니다.

박 매니저는 "처음에는 아무리 할인해드린다고 해도 불편할 것 같다면서 그냥 나가시는 분들도 계셨다"면서 "그런데 한두 번 써보고 나니 불편한 게 없고, 오히려 할인이 되니 꾸준히 이용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할인 정책이 제로웨이스트를 경험해보는 유인책이 되는 겁니다.

박 매니저는 “소수의 사람이 엄격하게 환경보호를 하는 것 보다 많은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환경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환경이나 제로웨이스트에 관심 없던 분들도 한 번 경험해보고 조금씩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일회용 컵 사용 줄이려면 강한 규제책 있어야”

서울 은평구 한 제로웨이스트카페에 붙어 있는 안내문. 〈사진=이지현기자〉

서울 은평구 한 제로웨이스트카페에 붙어 있는 안내문. 〈사진=이지현기자〉


전국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은 연간 28억여 개로 추정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음료 배달이 늘어나면서 일회용 컵 사용은 점점 더 늘고 있죠.

일회용 컵 사용이 자꾸 늘어나자 정부와 지자체도 나섰습니다.

환경부는 최근 '환경표지 인증 대상'에 카페를 추가하는 고시 개정을 행정예고 했습니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고,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는 카페를 '친환경 카페'로 인증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정부 인증을 통해 소비자들이 친환경적 소비를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로써 친환경 카페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죠.


서울시는 텀블러 이용 시 음료를 할인해주는 카페를 한시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텀블러 이용 고객에게 300원을 추가 할인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지원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만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효과적으로 줄이기는 어렵습니다.


배민지 대표는 “정부에서 좀 더 엄격한 정책을 내놔야 한다”면서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처럼 강한 규제책이 있어야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회용 컵 사용에 대한 규제가 딱히 없는데 사장님이 자발적으로 사용을 줄이는 건 매출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에 자율적 참여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세종과 제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처럼 강제적인 규정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날 제로웨이스트카페에서 만난 양미자(57) 씨는 “처음에는 제로웨이스트 카페가 낯설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오히려 다른 곳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게 불편해졌다”면서 “지금은 우리가 낭만적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이야기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엄연한 현실인 만큼 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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