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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출발은 비슷했는데…국내외 수소 전략, 어디까지 왔나

입력 2023-09-18 08:00 수정 2023-09-18 09:17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01)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에너지, 수소
글로벌 수소 이야기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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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01)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에너지, 수소
글로벌 수소 이야기 (3/4)

수소라는 에너지원을 우리 인류가 언제부터 알게 됐는지, 이를 주요 선진국들이 어떻게 다뤄왔는지 지난 2주 동안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우리나라 차례입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수소경제를 향해 나아갔을까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008년 광복절 축사에서 수소경제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로 언급됐습니다. 수소라는 키워드가 현직 대통령의 대중 연설을 통해 전해진 겁니다.

“비록 탄소시대에는 뒤졌지만 다가올 수소시대에는 앞서 나가야 합니다. 그 길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단절의 고통과 불편도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를 앞당겼듯이 대담하고 신속하게 나아간다면, 반드시 녹색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전과 신뢰, 그리고 법치를 통해 선진국의 기초를 다질 것입니다. 녹색성장으로 수소시대의 중심에 설 것입니다. 생활공감정책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할 것입니다. 조금 전 여기에 섰던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자질에 맞는 교육을 받고, 지구촌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자랑스러운 지구시민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칩시다.”
 
현대자동차의 수소 연료전지전기차.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싼타페 FCEV 콘셉트, 투싼 FCEV 실증 차량, 투싼ix FCEV, 넥쏘.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의 수소 연료전지전기차.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싼타페 FCEV 콘셉트, 투싼 FCEV 실증 차량, 투싼ix FCEV, 넥쏘. (사진: 현대자동차)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현대자동차가 2000년 싼타페 FCEV(Fuel Cell Electric Vehicle, 연료전지전기차) 콘셉트 카의 첫선을 보이고, 2004년 투싼 FCEV 32대가 미국에서 시범 운행에 나선 상태였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FCEV에서 앞선 경쟁력을 선보이며 수소경제는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경제'로 보도됐고,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2009년 2월 16일, 녹색성장위원회가 공식 출범했고, 2010년 12월, 위원회 10차 회의에서 BEV(Battery Electric Vehicle, 배터리전기차)와 FCEV 등 그린카 미래전략을 수립했죠.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녹색성장위원회는 2013년 2월 4일 22번째 마지막 회의를 끝으로 대통령 소속 위원회에서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로 격하됐습니다.

한동안 사라졌던 수소 키워드가 다시 등장한 것은 2019년이 되어서였습니다. 그해 1월,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수면 아래로 잠겨있던 키워드가 뒤늦게 올라왔다고 볼 수 있겠지만, 수소경제를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독일보다도 1년 반 가량 앞선 일입니다. 그런 만큼,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내세웠습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수소차'와 '연료전지'를 양대 축으로 수소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죠.
 
[박상욱의 기후 1.5] 출발은 비슷했는데…국내외 수소 전략, 어디까지 왔나
이는 수소의 밸류 체인 가운데 '이용'에 초점을 맞춘 로드맵이었습니다. 지난주 〈[박상욱의 기후 1.5]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수소경제…해외는 어떻게 준비했나〉에서 상세히 살펴봤듯, 주요 선진국들이 수소의 생산과 확보 등 밸류 체인의 업스트림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정부의 이러한 방향성은 당시 로드맵의 발표 장소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성윤모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산업계와 학계 주요 인사들은 2019년 1월 17일, 울산에 모였습니다. 모빌리티의 중심에서 한국 정부의 첫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이 발표된 겁니다. 실제 당시 발표된 주요 추진계획 또한 ① 수소 승용차와 버스에 지급되던 보조금을 택시와 트럭으로 확대, ② 미세먼지 저감효과 큰 수소버스를 2022년까지 2,000대로 확대, ③ 2021년부터 경찰버스 820대를 수소버스로 교체, ④ 수소 충전소 규제 개선 및 설치 지원 강화를 통해 2022년까지 전국 310개 설치 등이었죠.
 
[박상욱의 기후 1.5] 출발은 비슷했는데…국내외 수소 전략, 어디까지 왔나
우리 정부의 로드맵은 시기를 수소경제 준비기(2018~2022년), 수소경제확산기(2022~2030년), 수소경제 선도기(2030~2040년) 총 3단계로 구분했습니다. 당시엔 수소차의 국내 보급량은 2022년 8.1만대(내수 6.7만대)로 내수 시장 기준 7배 확대를 목표로 했습니다. 연료전지는 내수 기준 2018년의 3배 이상을 목표했고요. 이러한 수소의 수요를 충당하는 공급의 대부분은 부생수소와개질수소의 몫이었습니다. 그린수소는 말 그대로 '플러스 알파' 정도일 뿐이었고요. POSRI(포스코경영연구원)은 이러한 로드맵 등 국내 전략에 대해 “한국의 수소 전략 및 기술은 다운스트림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며 “업스트림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른 선진국들과 전략의 차이를 보인 것은 업-다운스트림만이 아닙니다. 당시 로드맵 속 비전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이라는 표현은 담겼지만, 온실가스 저감, 기후위기 대응, 저탄소 경제 등의 표현은 전무했습니다. 수소의 경제적, 산업적 가치에 집중한 것이죠. 우리 정부라고 다른 나라들이 수소경제를 구축하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꾀했다는 것을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표현을 담기에 '시기상조'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었으니까요. 정부가 탄소중립 선언을 한 것은 이로부터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일이었고, 2019년의 대한민국에선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써의 수소면 모를까, 그 제조 과정까지 고민한 결과물인 그린수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많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의 기조가 탄소중립 선언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FCEV를 비롯해 '수소가 쓰이는 일'과 관련한 기술에 관심과 투자가 집중됐죠. 글로벌 모빌리티 전환의 흐름이 FCEV보다 BEV를 중심으로 흘러감에도 로드맵의 대대적인 수정은 없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출발은 비슷했는데…국내외 수소 전략, 어디까지 왔나
우리나라는 분명 'FCEV 글로벌 1위'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에서 FCEV가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미미하다 보니 그 순위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2년 말 기준, 한국의 FCEV 누적 보급대수는 2만 9,733대로 로드맵 상의 내수 목표인 6.7만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에 팔린 수소차 2만 2,786대 중 57%가 한국에서 팔렸죠. 한국을 제외하고 연간 수소차 판매대수가1천대를 넘긴 곳은 중국(4,882대)과 미국(2,707대) 단 두 곳 뿐이었습니다.

결국, 시장의 더딘 성장 속에 국내 유일의 FCEV 제조사이자 글로벌 최대 FCEV 생산 기업인 현대차는 새로운 FCEV를 개발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한국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전에도, 발표 후 4년여가 지난 지금도 국내에서 상용화된 승용 FCEV는 넥쏘1종뿐인 이유입니다. 넥쏘가 출시된 것은 2018년의 일입니다. 통상 2년 안팎의 주기로 개선 모델이 출시되고, 5년 안팎의 주기로 완전 신차가 출시되는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죠. 결국, 로드맵의 수정은 없었으나 2022년 정부의 무공해차 보급목표 중 FCEV의 몫은 1만 8천대로 대폭 감소했고, 보급 관련 예산 또한 당초 6,795억원에서 4,545억원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우리가 수소를 '쓰는' FCEV나 연료전지를 늘려온 사이, 해외에선 수소를 '만드는' 설비가 크게 늘었습니다. FCEV나 연료전지 통계에선 한국이 '글로벌 상위권'에 존재하지만,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설비 관련 통계에선 이름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수전해 설비에 있어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곳은 유럽과 중국, 캐나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15년, 50.52MW로 세계에서 수전해 설비가 가장 많이 설치된 지역으로 꼽혔던 유럽은 2020년 116.36MW로 1위 자리를 공고히 했습니다. 우리가 심심찮게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의 원흉'으로 꼽는 중국은 2020년 무려 23.47MW의 수전해 설비를 설치하며 5년 새 그 규모를 14.4배로 키웠습니다. 같은 기간, 캐나다 또한 설치 규모를 2.07MW에서 25.37MW로 12배 넘게 늘렸고요.

우리의 경우, 2015년에도 2020년에도 수소는 그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또 다른 에너지원'에 그쳤습니다. 그린수소 생산의 원천기술인 수전해 기술도 2020년 6월에야 확보했습니다.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1년 반 만의 일입니다. 그린수소를 생산할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한다”고 선포한 겁니다.

이러한 통계는 우리의 수소경제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글로벌 FCEV 시장 확대를 끌어내지 못 했고, 자체적인 수소의 생산 역량 또한 키우지 못한 결과를 숫자로 보여주는 통계니까요. 또한, 해외에서 이처럼 FCEV의 확대 없이도 수전해 설비를 늘려온 것을 보면, FCEV 외에도 수소의 수요처는 충분히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출발은 비슷했는데…국내외 수소 전략, 어디까지 왔나
탄소중립 선언 수년 전, 그리고 수소경제의 초기, 수소의 생산보다 '쓰임'에, 그 쓰임 중에서도 '수송'에만 집중한 결과, 우리 정부는 글로벌 탄소중립과 수소경제 흐름에 대응하는 데에 있어 유연성을 잃게 됐습니다. 글로벌 수소경제의 흐름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IEA(국제에너지기구)의 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수소 수요는 2030년까지 크기 급증합니다. 이러한 수요의 대부분은 앞으로 그린수소를 비롯해 각종 무탄소 혹은 저탄소 수소로 충당하게 되고요.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이 수요에 있어 수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매우 작을 걸로 예상됩니다.

글로벌 수소경제 트렌드에 있어 수소의 쓰임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다양하고, 이러한 전환의 관건은 수소의 '생산 방법'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2030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과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와 독일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그 영향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출발은 비슷했는데…국내외 수소 전략, 어디까지 왔나
우리보다 1년 반 가까이 늦게 국가 차원의 수소경제 전략을 발표한 독일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수소경제의 주요 목표로 삼았습니다. 전략 수립 당시, 그린수소의 기술 수준과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던 독일은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기반 마련과 제철 및 화학 등 산업계의 다배출 업종에 대한 탈탄소 지원을 주요 과제로 삼았죠.

독일이라고 해서 의견 충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략 수립 과정에서 독일의 환경부와 경제에너지부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고, 이는 블루수소와 그린수소의 명확한 역할 구분을 가능케 했습니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그린수소에 두되, 과도기적으로 블루수소를 이용하기로 뜻을 모은 겁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신성장 동력과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이 나왔고, 수소에 '온실가스 감축 역할'이라는 푯말이 제대로 달린 것은 탄소중립 선언 이후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출발은 비슷했는데…국내외 수소 전략, 어디까지 왔나
수소 로드맵 발표 전후로 우리나라의 사업장별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를 살펴보면, 아쉬움은 더욱 배가됩니다. 국내 배출량 '탑 티어'의 업종이 수소를 통한 감축의 여지가 매우 큰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제철, 화력발전, 석유화학은 국내 배출 통계에서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는 업종입니다. 그리고 이들 분야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앞다퉈 우선적으로 수소를 활용해 배출량을 줄이려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수소환원제철, 수소 혼소 또는 암모니아 연료화, 바이오 연료 등을 통해서 말이죠. 지난주, 국가별 수소 전략 사례로 설명해 드렸듯, 독일과 일본, EU 모두 이를 통해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고, 온실가스도 줄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마리 토끼'의 대표적 케이스인 제철 분야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요. 글로벌 수소 이야기의 마지막 내용은 다음 주 연재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출발은 비슷했는데…국내외 수소 전략, 어디까지 왔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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