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트렌드+] "긍정, 쾌활"…내 학창시절 '생활기록부' 뽑아보기 유행

입력 2023-09-17 09:01 수정 2023-09-17 09:18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출석부와 교무수첩. 기사와 관계없는 자료사진. 〈사진=연합뉴스〉

출석부와 교무수첩. 기사와 관계없는 자료사진. 〈사진=연합뉴스〉



'항상 밝게 웃고 긍정적이며 쾌활함. 마음이 여리고 곧은 성품으로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남과 달라 급우간에 인기가 높음.'(25살 이 모 씨의 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

25살 직장인 이 모 씨는 얼마 전 자신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조회해봤습니다. 어릴 적 자신은 어떤 성격이었는지, 선생님은 어떤 평가를 했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이 씨는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과 생활기록부에 적힌 모습이 같아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면서 "어릴 적 성격이 지금 성격과 거의 똑같고, MBTI 특징과도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최근 이 씨처럼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조회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2003년 이후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정부24 홈페이지 등을 통해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아볼 수 있죠. 정부24 홈페이지에 접속해 '생활기록부 발급'을 검색한 뒤 민원 신청을 하고, 공인인증 절차만 거치면 바로 온라인에서 조회와 출력이 가능합니다.


이달 초에는 생활기록부 발급이 큰 인기를 끌면서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도 지금 성격 그대로”…자신을 분석하는 용도

25살 직장인 이 모 씨의 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 〈사진=이 씨 제공〉

25살 직장인 이 모 씨의 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 〈사진=이 씨 제공〉


생활기록부에는 성적을 비롯해 다양한 대내외 활동, 출결 사항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생활기록부 발급이 유행인 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때문입니다.

학생의 성격 특징이나 행동 특성에 대한 의견을 담임선생님이 적어 놓은 부분이죠. 이 부분을 읽으면 어릴 적 본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생활기록부를 조회해본 뒤 SNS 등에 글을 올린 누리꾼들은 '생각보다 성실했었다', '어릴 때부터 완전 외향적이었다', '어릴 때 모습은 별로 안 좋게 생각했는데 좋은 말들이 많았다', '생기부에 적힌 단점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등의 후기를 공유했습니다.

얼마 전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은 30대 직장인 조 모 씨도 “자라면서 성격이나 특징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활기록부를 보니 지금 성격이 어릴 때도 그대로였다”면서 “지금 하는 일이 그 성격 특성과도 일치해 신기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탐구하는 셀프 분석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들에게 생활기록부는 성격유형검사(MBTI)처럼 자신의 특성을 이해하는 수단인 겁니다.
 

체형 컨설팅·유전자 검사까지…셀프 '캐해'에 빠진 Z세대

한 교육박람회에서 학생들이 MBTI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교육박람회에서 학생들이 MBTI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분석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지 예측하는 걸 요즘은 '캐해(캐릭터 해석의 줄임말)'라고 합니다. 최근 젊은 층에선 '캐해'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MBTI입니다. MBTI는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누는 건데요. 질문에 답을 하면 자신의 성격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계획적인지 즉흥적인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MBTI는 나와 상대방의 성향을 유추하고, 이를 취업이나 연애에도 활용할 정도로 '과몰입'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캐해'는 성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외적인 특징을 분석하고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스타일링을 찾아가기도 하죠.

피부톤에 맞는 색을 분석하는 '퍼스널 컬러' 진단이 유행한 지는 꽤 됐습니다. 10만 원이 넘는 가격을 주더라도 자신의 톤, 이미지와 어울리는 색을 진단받고 옷이나 화장품에 활용하는 겁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체형과 신체 비율을 분석해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부각할 수 있는 스타일링을 찾아가는 '체형 컨설팅'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얼굴형과 이목구비, 분위기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진단받는 '헤어 컨설팅'도 있죠.

더 나아가 유전자 분석까지도 합니다. 한 핀테크 회사는 유전자 검사 전문업체와 함께 고객들을 상대로 유전자 분석을 해주는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한 핀테크업체가 유전자 검사 업체와 함께 고객들을 대상으로 유전자·미생물 검사 서비스를 출시했다. 〈사진=핀테크업체 앱 캡처〉

한 핀테크업체가 유전자 검사 업체와 함께 고객들을 대상으로 유전자·미생물 검사 서비스를 출시했다. 〈사진=핀테크업체 앱 캡처〉

유전자 검사 키트를 받은 뒤 유전자를 채취해 보내면, 자신이 가진 뛰어난 유전자와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분석해주는 식입니다.

비슷하게는 미생물 검사가 있습니다. 내 몸속 미생물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완해야 할 건 뭔지 알려주죠.

유전자 검사도 일종의 '캐해'로 여겨지면서 Z세대의 주목을 받았고, 업체에 따르면 서비스를 출시한 2021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유전자 검사를 받은 사람은 25만 명이 넘습니다.
 

“나를 궁금해하는 세대특성…사회 구조적 영향도 있어”


대학내일의 뉴스레터 '캐릿'이 Z세대 150명에게 물어본 결과 셀프 분석과 관련한 무료 서비스를 이용해본 적 있다는 사람은 91.3%에 달했습니다. MBTI나 무료 사주 풀이 등이 이에 해당하죠.

퍼스널 컬러 진단이나 체형 컨설팅 등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셀프 분석을 해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4.7%에 달했습니다.

Z세대들에게는 '캐해'가 일종의 놀이처럼 자리 잡으면서 전문적인 진단을 받는 움직임도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11일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2023 잡앤커리어 페스티벌' 취업박람회에서 한 학생이 퍼스널 컬러를 진단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1일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2023 잡앤커리어 페스티벌' 취업박람회에서 한 학생이 퍼스널 컬러를 진단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려고 하는 세대 특성과 사회 구조적 요인이 합쳐지면서 이런 '캐해'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진단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Z세대는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자신을 더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깔려있다”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 표현할 때 또래들 사이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 교수는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Z세대 등)를 두고 '미립자 정체성'이라는 표현을 한다”며 “아주 고운 가루같이 미세한 정체성들을 찾아가면서 자신을 만들어가고 단련시키는 세대”라고 덧붙였습니다.

최샛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젊은 세대는 워낙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세대 특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자신에 대해 알 기회 자체는 윗세대보다 적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최 교수는 “사람은 사회에서 부여한 특정 역할을 맡을 때 비로소 자신을 알게 되는데,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등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던 윗세대에 비해 지금 젊은 세대는 그런 역할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거부하니 자신에 대해 알 기회가 적은 것”이라며 “그래서 스스로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몰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가 구조적으로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자신에게 몰입하는 경향도 있다”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다 보니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고 가꿔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