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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입력 2023-07-24 08:01 수정 2023-07-24 08:1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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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93)

어느덧 장마가 시작된 지 4주가 지났습니다. 비는 곳곳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장마는 이제 각종 기록을 깨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25일 이후, 도대체 하늘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간의 장마는 어땠던 걸까요.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장마 시작을 한참 앞둔 시점,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이슈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상 기후로 7월 내내 비가 이어질 것'이라는 뉴스였습니다. 몇 달 뒤의 강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비단 우리나라 기상청뿐 아니라 그 어느 나라도 아직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후변화로 각종 불확실성이 증가한 요즘 같은 시기엔 더더군다나 더 어려워진 일이죠. 하지만, 그간의 장마를 되돌아보면, '한 달 내내 비'는 그리 예외적인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최근 30년을 돌아봤을 때, 전국의 장마 기간은 평균 32일 안팎입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죠. 중부지방의 경우, 6월 25일부터 7월 26일까지 평균 31.5일, 남부지방에선 6월 23일부터 7월 24일까지 평균 31.4일, 제주에선 6월 19일부터 7월 20일까지 평균 32.4일 동안 장마가 이어졌습니다. 올해 장마의 시작 시점은 이러한 평년값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중부지방은 올해 6월 26일부터 장맛비가 시작됐고, 남부와 제주에선 6월 25일부터 비가 내렸으니까요. 도리어 제주의 경우, 평년보다 조금 늦게 장마가 시작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그렇다면, 소위 '역대급 장마'의 타이틀은 어느 해가 거머쥐고 있을까요. 강수량 측면에서 보면, 전국 단위로는 2006년이 역대 가장 많은 비를 뿌린 해로 기록됐습니다. 전국적으로 무려 704mm의 비가 장마 기간 쏟아졌습니다. 지역별로 나눠서 따져보면, 중부지방의 경우 2020년 856.1mm의 강수량이 '역대 1위'인 상태입니다. 남부지방의 경우 2006년의 646.9mm가 가장 많은 강수량이고요. 제주엔 1985년, 무려 1,167.4mm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장마기간을 기준으로 보면, 2020년이 '역대 최장'으로 손꼽힙니다. 그해 중부지방엔 장장 54일 동안 장마가 이어졌고, 제주에서도 무려 49일이나 장마가 계속됐으니까요. 남부지방의 역대 최장 장마기간 기록은 1969년의 48일입니다. 그런데, 장마라고 해서 매일 비가 쏟아지는 것은 아니죠. 강수일수를 기준으로 보면, 전국 단위로는 1969년의 28.6일이 최장 기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부지방의 경우, 2020년의 34.9일간 비가 내렸고, 같은 해에 제주엔 29.5일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남부지방의 역대 최장 강수일수는 1969년의 28.1일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최근과 가까운 시기이자 역대 최장 장마가 기록된 2020년의 기록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 해, 장마 기간 강수일수는 평년의 배 수준이었습니다. 전국 단위로는 28.5일로 평년(17.3일)의 배를 넘었습니다. 강수량의 경우, 남부와 제주엔 평년의 1.7배 수준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중부지방엔 무려 856.1mm의 비가 34.9일 동안 내리면서 평년(378.3mm)의 2.3배 가까운 많은 양이 쏟아졌습니다.

그럼, 보다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어떨까요. 국내 주요 지점별 여름철 강수 관련 통계를 살펴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최근 30년간의 여름철(6~8월), 중부지방엔 39.9일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남부지방엔 37.6일, 제주엔 38일 동안 비가 내렸고요. 전국 주요 광역시도별 16개 지점 중 최근 30년 새 가장 긴 강수일수가 기록된 곳은 강릉이었습니다. 석 달의 여름 기간 사이, 무려 43.2일 비가 내린 겁니다. 얼핏, 남쪽의 섬인 제주에 비가 가장 빈번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강릉에 이어 가장 많은 강수일수가 기록된 곳은 속초(42.4일), 대전(41.1일), 서울(40.9일), 광주(40.4일)였습니다. 제주(36.7일)보다 강수일수가 적은 곳은 울산(36.2일), 부산(35.9일), 목포(35.5일)뿐이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그렇다면, 이번 장마는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을까요. 6월 25일부터 시작된 1차 장마는 남부지방에 많은 비를 뿌렸습니다.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6일의 1차 장마 기간, 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렸던 것은 6월 26일과 29일 이틀뿐이었습니다. 그러곤 장맛비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고, 수도권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선 '장마가 시작된 것이 맞나' 의문을 갖는 이들도 일부 나올 정도였죠.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7월 1~2일, 이따금 남쪽에 빗방울을 뿌리는 정도로 소강 상태에 들어갔던 장맛비는 3일 제주와 남해안을 시작으로 다시 시작됐습니다. 2차 장마입니다. 남쪽에서 시작된 비는 이번엔 곧장 중부지방을 강타했습니다. 5일까지 며칠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청과 경북 북부엔 100mm 넘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곤 7월 6일, 마치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전국엔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비구름대가 한반도를 향할 때마다 기상 당국의 경고가 이어졌지만, 짧게 며칠 오다 그치는 비에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장마에 대한 우려와 경계는 조금씩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7월 7일, 다시 장맛비가 찾아왔습니다. 3차 장마입니다. 3차 장마는 예측 불허의 연속이었습니다. 비구름대는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곳곳에 비를 뿌렸습니다. 하루하루의 일 강수량을 색으로 나타낸 위의 지도를 보면, 연속성이라는 것은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비의 양도, 비가 내리는 위치도 들쑥날쑥했습니다.

3차 장마 첫날인 7일엔 수도권과 강원도, 제주를 제외한 전역에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간 제주를 시작으로 점차 강수가 북쪽으로 확대됐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연 8일엔 제주와 일부 남해안에만 비가 내리고, 서울과 경기 북부, 강원에선 비 구경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죠. 그런데, 다음 날인 9일엔 수도권과 강원에 비가 집중됐습니다. 호남과 영남 대부분 지역엔 이날 비가 아예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10일엔 충청권에 비가 쏟아졌고, 전북 북부와 경북 남부의 강수량은 '0'이었습니다. 그러다 11일엔 많은 양의 비가 전국 각지에 내렸습니다. 이런 도깨비 같은 장맛비는 그 어떤 예측 모델로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올해 장마 시작 이래 처음으로 내륙 거의 대부분 지역에 많은 비가 쏟아진 11일, 우리나라의 예측 모델인 KIM도, 영국의 예측모델인 UM도, 유럽의 예측모델인 ECMWF도 강수 집중 구역을 제대로 예측하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티베트 고기압과 남쪽에 위치한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로 강력한 서풍 계열의 바람이 불어왔고, 한반도 3면의 바다는 평년보다 2~3℃나 높은 해수온을 보이며 수증기를 마구 뿜어댔습니다. 내륙에선 기온과 대기 흐름에 따라 그 수증기가 구름으로 남기도, 호우로 변하기도 하며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였죠.

결국, 예측의 몫은 '사람'에게 되돌아왔습니다. 예보관들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압계와 수증기의 양을 따져보며 실황을 분석하고, 최대한 정확한 예측을 위해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모델의 한계를 뛰어넘는 정확도의 예보가 나왔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서 나타났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혹은 쏟아지다 그치다 반복하는 비를 보면서, 예보관이 발표한 예보 기간의 강수량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내리는 비'를 보고 자의적인 판단을 하는 일들이 벌어진 겁니다. “돌풍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80mm 넘는 매우 강한 비가 쏟아질 것”이라는 한결같은 경고에도 '지금 빗방울이 가는데?' 눈앞의 일시적인 강수 약화에 긴장을 풀기도,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는데?' 깜짝 놀라기도. 일희일비 속 체계적인 대응의 준비를 하지 못한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그런 사이, 전국 각지에선 역대 최고 일 강수량 기록이 깨졌습니다. 7월 14일, 충북 보은(211.4mm, 역대 4위), 충남 서산(208.1mm, 역대 4위), 충남 부여(272.5mm, 역대 2위), 대전(221.8mm, 역대 5위), 충남 금산(195.1mm, 역대 2위), 전북 전주(251.5mm, 역대 2위), 전북 부안(194.5mm, 역대 4위)에서 역대 손꼽히게 많은 양의 비가 하루새 쏟아졌고, 전북 군산(372.8mm)과 경북 문경(189.8mm)에선 역대 1위 기록이 깨졌습니다. 15일엔 충북 청주에 하루새 256.8mm의 비가 내리며 역대 3번째로 많은 일 강수량이 기록됐고, 16일 부산엔 하루 259.2mm의 비가 쏟아지며 역대 5번째로 많은 일 강수량이 기록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그렇게 4주 넘는 장마 기간, 전국적으로 적게는 200mm 안팎, 많게는 800mm 안팎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강수 집중 시간도, 지역도 들쑥날쑥하며 '도대체 어디에 비가 많이 내린 거야?' 모두가 헷갈리는 사이, 실제 누적 강수량이 매우 높았던 곳에선 되돌릴 수 없는 큰 피해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피해가 발생한 뒤에 이런 누적 강수량을 보면 무슨 소용이냐'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누적 강수량'입니다. 매분, 매시간, 매일 새롭게 업데이트되며, 확인 가능한 자료인 것이죠. 각 지자체에서 자기 지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살펴보며 미리 우려할 수도, 경고할 수도, 참사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앞선 지역별 강수량 지도에서도 알 수 있듯, 3차 장마 기간 강수량은 1, 2차의 강수량을 압도합니다. 충청권의 경우, 3차 장마 기간 강수량이 1, 2차의 강수량의 2.3배에 달할 정도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수도권과 강원의 강수량이 적은 덕에 중부지방의 역대 장마 기간 강수량 기록을 깨긴 어려운 상태지만, 남부지방은 2006년의 역대 최고 기록인 646.9mm를 경신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입니다. 올해 장마 기간, 남부지방의 강수량과 역대 기록의 차이는 10.6mm에 불과합니다.

전국 곳곳을 할퀸 3차 장마는 지난 19일부터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말 사이 4차 장마가 시작됐죠. 지금까지의 강수량만 살펴보더라도, 올해 장마는 '역대급 장마'로 기록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는 곧, 남은 장마 기간 정부와 지자체, 언론과 시민사회 모두 단단히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부디 남은 장마 기간,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더는 없기를 바라보며 이번 주 연재를 마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4주째 이어진 장마…'역대급 장마' 기록 깨질까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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