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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의 숨트뷰]달달꾸덕 약과연구소

입력 2023-07-22 11:23 수정 2023-07-22 11:36

올 상반기 최대 751% 폭풍 성장한 약과 시장
한여름에 이례적으로 '약과 신상' 쏟아져
편의점ㆍ프랜차이즈, 호텔에도 등장
GS25, 먹거리 MD 총출동 '약과연구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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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최대 751% 폭풍 성장한 약과 시장
한여름에 이례적으로 '약과 신상' 쏟아져
편의점ㆍ프랜차이즈, 호텔에도 등장
GS25, 먹거리 MD 총출동 '약과연구소'까지

꾸덕꾸덕하고 쫄깃하고 달콤한 약과가 올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기름에 튀기고 조청에 버무린 약과는 산뜻한 맛을 찾는 한여름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여름 들어서 신제품이 더 쏟아지고 있네요. 커피 전문점에서도 약과 디저트를 내놓고, 호텔 빙수에도 약과가 올라갔습니다. 아예 약과 아이스크림이나 스무디도 나왔죠. 차갑게 먹는 타르트나 컵케이크, 약과 라떼 같은 제품도 많습니다.

약과는 지난해에도 인기였잖아?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경기도 포천ㆍ의정부 등에 있는 유명한 약과 가게에 아침부터 줄을 서는 '약과 오픈런', 온라인 판매 시간에 맞춰 인기 콘서트 예매를 할 때처럼 초 단위로 구매 경쟁을 하는 '약켓팅(약과+티켓팅)'이 화제였으니까요. 디저트 가게에서도 약과를 올린 쿠키나 푸딩으로 손님을 모았고요.

하지만 올해는 편의점과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앞다퉈서 수십종의 약과 제품을 내놓으면서 '약과 열풍'의 규모가 확 달라졌습니다. 편의점 CU의 약과 매출 증가율을 볼까요. 2020년엔 불과 4%, 약과가 인기를 끈 지난해도 72.2%였는데, 올 상반기는 무려 751.3%입니다(전년도 대비). 약과 쿠키만 3개월 만에 220만 개 넘게 팔렸습니다. 이마트24는 이달 약과 매출이 238%, 세븐일레븐도 올 상반기에 약과 매출이 200% 올랐습니다. (전년도 대비)

윗세대가 '약과의 귀환'을 환영할 것 같지만 약과에 열광하는 건 20~30대입니다. CU 약과쿠키 구매 고객 중 50대 이상은 5%도 안 됩니다. 20~30대 매출이 70~80%대를 오가고요. 예스러운 것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동경, 사진 찍기 좋은 예쁜 모양, 엄청나게 달고 쫀득한 맛, 쿠키ㆍ케이크ㆍ마카롱 등 해외 디저트와 어우러진 신선한 조합 등이 이유로 꼽힙니다.

약과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도 약과 스무디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약과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도 약과 스무디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약과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편의점 GS25에서는 지난 5월부터 '약과연구소'를 운영 중이라고 최근 밝혔습니다. 약과를 누가, 어떻게 연구한다는 걸까요. 서울 역삼동 GS리테일 본사로 찾아갔습니다.

약과연구소엔 실험실이 없습니다


'약과연구소'에 들어갔더니 평범한 회의실입니다. 약과 트렌드를 분석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띄워놓은 화면 정도가 전부입니다. 가운을 입고 실험용 장갑을 낀 연구원들도, 실험 도구와 데이터 분석 장치도 없습니다.

GS25의 상품기획자(MD) 네 사람이 약과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제품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빵ㆍ유제품ㆍ냉장 디저트 등 담당 분야는 다 다르지만 모두 약과 상품을 개발 중입니다.

"약과연구소는 연구소 건물이 막 있고 그런 곳이 아니고요, 먹거리를 담당하는 10여명의 MD가 정기적으로 만나서 약과 제품을 어떻게 만들지 연구하고 있어요. 약과 상품 진행 상황에 따라서 두세명이 만날 때도 있고, 열 명 넘게 모일 때도 있어요." (신민기 차별화 상품 담당 MD)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약과를 이용해서 어떤 제품을 내놓을지 아이디어를 내고 조언을 듣습니다. 시제품을 가져와서 서로 맛 평가를 하고, 매달 전국 영업팀 직원들이 시식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럼 일종의 약과 태스크포스(TF)팀인 셈인데요, 약과연구소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은 이유는 뭘까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이렇게 모든 분야 MD들이 다 모여서 계속 같이 연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새롭게 유행하는 게 있으면 보통은 다른 업체와 제휴를 하는데, 약과는 아예 '행운약과'라고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거든요. 앞으로 계속 약과 상품을 연구해서 만들어야 하니까요."

GS25 '약과연구소'에서는 먹거리 담당 상품기획자(MD)이 함께 자체 브랜드 약과 상품을 연구합니다. 왼쪽부터 신민기ㆍ전용성ㆍ조가현ㆍ김동욱 MD.

GS25 '약과연구소'에서는 먹거리 담당 상품기획자(MD)이 함께 자체 브랜드 약과 상품을 연구합니다. 왼쪽부터 신민기ㆍ전용성ㆍ조가현ㆍ김동욱 MD.

어렵다 어려워, 약과 맛 잡기


유독 약과에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강렬한 단맛과 바삭하고 꾸덕꾸덕한 식감, 튀겨서 조청을 묻혀 만든 약과는 개성이 확실해서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과 라떼'는 하마터면 세상에 못 나올 뻔했다고 해요.

"상품을 개발하면서 시제품을 몇번이나 만들었는데도 90%가 맛이 없다고 한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탈지분유를 넣었더니 비린 맛이 나고, 연유를 넣으니까 약과 맛이 사라졌어요. 커피를 넣으면 약과 향이 묻히고요. 아, 약과로 라떼는 못 만들겠구나 싶었죠. "(김동욱 유제품 담당 MD)

시제품을 다섯번이나 바꿔가면서 찾은 답은 약과를 갈아 넣어서 '딸기라떼'처럼 커피를 넣지 않고 우유에 섞는 것이었습니다. 약과를 즙처럼 짜내서 약과 알갱이는 씹히지 않게 하고요.

갈고 부수고 쪼개고... 세모난 약과까지


약과를 시럽 형태로 만들어버린 건데, 이렇게 '형태'를 바꾸는 작업이 약과연구소에서 개발한 많은 상품에 적용됐습니다.

"처음엔 약과 모양을 그대로 살리는 방법만 생각했었거든요. 이 제품에 올리기엔 약과가 너무 큰데, 더 작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럼 부수자!' 이렇게 된 거예요. 사실 부순다는 건 정말 단순한 생각이잖아요. 하지만 '꽃 모양 통약과'가 워낙 강한 이미지니까 그걸 못 깼던 건데, 다 같이 고민하면서 답이 나온 거죠." (전용성 빵 담당 MD)

일단 형태를 부수고 나니까 많은 것들이 쉬워졌습니다. 잘게 쪼갠 약과는 버터바 위에 뿌려 올리고, 반죽에 섞어서 도넛도 만들 수 있었죠. 아예 약과를 세모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고요.

약과 상품은 통약과의 예쁜 모양을 그대로 살려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보니, 처음에는 '부순다'는 단순한 변형도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가게에서도 만들다 부서진 약과를 '파지 한과'로 판다는데서 착안했죠.

약과 상품은 통약과의 예쁜 모양을 그대로 살려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보니, 처음에는 '부순다'는 단순한 변형도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가게에서도 만들다 부서진 약과를 '파지 한과'로 판다는데서 착안했죠.

다 같은 약과가 아닙니다


약과 상품을 만들 땐 '어떤 약과'를 고르느냐도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재료로 쓰는 약과는 완제품을 구매하는데요, 맛과 식감ㆍ크기가 생산하는 곳마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약과를 만드는 곳은 많지만, 대량 생산하는 곳은 많지 않고요.

약과처럼 꾸덕꾸덕한 식감에 가늘고 긴 모양의 버터바에는 잘게 쪼갠 약과를 올리기 때문에 밀도가 높고 쫀쫀한 약과를 씁니다. 식감을 우선으로 고른 거죠.

통약과가 올라가는 쿠키는 약과 자체의 맛이 좋아야 하고, 쿠키 맛과 균형도 맞아야 합니다.

도넛에 들어가는 약과는 원래 썼던 약과보다 단맛이 덜한 약과로 바꾸기도 했다고 합니다. 약과와 도넛 맛이 따로 노는 걸 막으려고 약과를 넣어 반죽한 도넛 자체를 조청에 담그는 과정을 추가하면서 더 달아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약과, 네모난 약과 등 다양한 제품이 나옵니다. 원재료로 어떤 약과를 이용하느냐도 약과 디저트를 만드는데 중요한 문제입니다.

작은 약과, 네모난 약과 등 다양한 제품이 나옵니다. 원재료로 어떤 약과를 이용하느냐도 약과 디저트를 만드는데 중요한 문제입니다.

끈끈한 조청을 극복하라


어렵게 제품을 개발한 뒤에도 대량 생산하는 과정이 고비입니다. 약과에는 끈적한 조청을 발라놓았잖아요. 그런데 일반적인 쿠키ㆍ도넛을 생산할 때는 끈적한 재료를 쓴 적이 없고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없던 문제들이 약과 상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겁니다. 끈끈한 조청이 기계에 묻어서 멈추거나 하는 일이요.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고르게 약과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버터바나 쿠키를 만들 때 사람이 약과를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올려요. 기계에 들러붙으니까 조청도 손으로 하나하나 바르고요. ('수제 약과'네요.) 맞아요. 하하. 사람 손이 필요하니까 생산비는 더 들어가고요." (조가현 냉장 디저트 담당 MD)

도넛은 기계로 조청에 담그면 됐지만 포장 단계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조청을 완전히 말리려면 꼬박 하루가 넘게 걸렸고, 몇시간 정도만 말리고 포장 봉지 안에 넣으면 안에서 들러붙고 굳어버렸죠. 이 문제로 고심하느라 제품을 다 만들어놓고도 2주를 그냥 보냈습니다.

"약과연구소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다른 MD가 '그냥 트레이(받침)를 껴!' 그러는 거예요. 미처 생각 못했는데 단순한 해결법이 있었던 거죠. 바로 다음 주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어요." (전용성 MD)

제품 보호용으로 많이 쓰는 투명한 플라스틱 받침대를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서 그 위에 조청을 적당히 말린 약과 도넛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다음 포장 봉지에 넣어서 유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르게 두니 봉지에 들러붙는 문제도, 기계에 조청이 묻는 문제도 한꺼번에 해결됐습니다.

내겐 너무 달콤한 약과


"약과가 정말 어렵습니다"라고 하는 전 MD에게 "아니, 이렇게 어려운 걸 누가 하자고 했나요!"라고 농담을 했더니, "세상이..."라면서 어깨를 움츠립니다. '약과연구소' 연구원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그렇죠. 세상이, 소비자가 약과를 찾는다면 어려워도 할 수밖에 없겠지요. 업(業)을 가진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일을 하듯이요.

편의점 영업을 담당하는 젊은 매니저들이 한 달에 한 번, 전국에서 모여서 약과 디저트 등을 시식합니다.

편의점 영업을 담당하는 젊은 매니저들이 한 달에 한 번, 전국에서 모여서 약과 디저트 등을 시식합니다.

눈에 띄는 대로 약과 제품을 다 먹어보는 것도 일입니다. 김동욱 MD는 몇초 단위로 승부가 갈리는 '약켓팅'으로, 신민기 MD는 경기도 포천까지 달려가 '오픈런'으로 유명한 가게의 약과를 맛봤다고 해요. 원래 약과를 좋아하던 조가현 MD도, 약과의 존재조차 잠시 잊고 살았던 전용성 MD도 신제품은 다 먹어봅니다.

기름에 튀기고 진한 단맛의 약과를 먹다 보면 좀 물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제품이든 참고가 되니까 다 먹어본다'고 합니다.

사실 통약과를 올린 커다란 쿠키 하나의 칼로리는 라면과 엇비슷합니다. 강한 단맛이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이런 점이 약과 상품을 만드는 데 걸림돌은 아닐까요. MD들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칼로리를 생각하는 사람은 약과를 아예 안 먹겠죠."
"내가 지금 단 걸 엄청 먹고 싶을 때 한입만 먹어도 당이 확 올라오는 것 같은 그 느낌을 원하는 것 같아요."
"단맛과 꾸덕꾸덕한 식감을 빼면 약과의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대신 약과 디저트를 먹을 땐 단맛을 잡아주는 아메리카노를 함께 곁들이고, 약과라떼나 아이스크림은 '당이 부족할 때' 단독으로 먹길 추천했습니다.

쿠키ㆍ케이크? 그 정도는 약과지~

커피 전문점에서도 약과를 이용한 디저트를 앞다투어 내놓고 있습니다. 단맛이 강한 약과는 씁쓸한 커피와 잘 어울립니다.

커피 전문점에서도 약과를 이용한 디저트를 앞다투어 내놓고 있습니다. 단맛이 강한 약과는 씁쓸한 커피와 잘 어울립니다.


이제 약과 상품은 나올 만큼 나온 게 아닐까요. 약과연구소가 앞으로도 유지되냐고 물었더니, 한 달 안에 새로운 제품을 잇달아 내놓을 거라고 귀띔합니다. 어떤 제품인지는 비밀이지만요. 세븐일레븐에서 다음 달 약과 맛 팝콘과 구운 도넛 등이 나오고, CUㆍ이마트24 등도 하반기에 더많은 약과 상품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GS25 약과연구소가 겪은 과정들은 약과 메뉴를 개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극복해야 했던 고충 아니었을까요. 옛것에서 새것을 만들어내는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일 지도요. 당 떨어지는 오후, 다디단 약과 디저트와 아메리카노 한 잔 어떠신가요. 저는 더위가 가시도록 약과 조각이 쫀득쫀득 씹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봐요.


[구기자의 숨트뷰]는 살아 숨 쉬는 트렌드를 봅니다. 그 속에 숨은 사람의 탁 트인 이야기를 시원하게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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