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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스마트폰은 너무 선명해"…'디카' 다시 꺼낸 이유

입력 2023-07-08 09:01 수정 2023-07-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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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너무 선명하게 나오잖아요. 누구나 다 찍을 수 있는 거고요. 옛날 디카(디지털카메라)는 흐릿하고 뿌옇게 나오는 게 감성이죠." (우 모 씨·21)

2000년대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디지털카메라'(이하 디카). 고화질의 스마트폰 카메라가 나오면서 서랍 속으로 자취를 감췄던 디카가 빛을 보고 있습니다.

Y2K(1990년대 말~2000년대 초) 감성이 유행하면서 그 시절 디카를 다시 찾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2005년 출시된 700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 니콘 제품.〈사진=이지현 기자〉

2005년 출시된 700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 니콘 제품.〈사진=이지현 기자〉

2억 화소 스마트폰 대신 500만 화소 '디카' 찾는다


지난 7일 옛날 디카를 판매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를 찾았습니다.

흔히들 옛날 디카를 '빈티지 디카'라고 부릅니다. 낡고 오래된 물건을 뜻하는 빈티지(vintage)와 디카를 합친 말입니다.

통상적으로 빈티지 디카는 2000년대 초~중반에 출시된 디지털카메라로, 보통 1000만 화소 이하의 카메라를 일컫습니다.

참고로 최신 휴대폰 카메라 화소가 아이폰 14시리즈는 최대 4800만 화소, 갤럭시 S23시리즈는 최대 2억 화소입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매장 안에 진열된 빈티지 디카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매장 안에 진열된 빈티지 디카들. 〈사진=이지현 기자〉


빈티지 디카를 파는 매장 안에는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옛날 카메라와 캠코더 등이 수십 대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매장을 운영 중인 이규태(66) 씨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라며 "옛날 물건들이다 보니 구하기가 어렵다. 특히 인기 있는 모델들은 바로바로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올해 초에 손님들이 한창 디카를 많이 찾았는데, 그땐 가게 앞에 줄을 서서 사 갈 정도였다"면서 "여기서 오래 가게를 했는데 그런 일은 처음이어서 의아했다"고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 빈티지 디지털 카메라를 사러 온 사람들. 올해 초 촬영된 사진. 〈사진=이규태 씨 제공〉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 빈티지 디지털 카메라를 사러 온 사람들. 올해 초 촬영된 사진. 〈사진=이규태 씨 제공〉


지금은 올해 초보다는 손님들 발길이 줄었지만 그래도 하루에 10명 이상은 꾸준히 가게를 찾는다고 합니다.

이날 빈티지 디카를 구경하러 온 대학생 우 모(21) 씨는 "어릴 때 집에서 쓰던 디카가 있는데, 너무 선명해서 옛날 느낌이 안 나더라"면서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카메라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굳이 화질이 좋지 않은 옛날 디카를 찾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우 씨는 "스마트폰은 너무 선명하게 나오고, 누구나 다 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며 "흐릿하고 뿌옇게 나오는 옛날 카메라만의 감성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2005년 출시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서울 종로구 한 골목. 〈사진=이지현 기자〉

2005년 출시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서울 종로구 한 골목. 〈사진=이지현 기자〉


최근에는 오프라인 매장 외에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도 거래가 활발합니다. '디카'를 검색하면 수십 건의 매물이 올라와 있죠.

모델마다 다르지만 가격은 대부분 10만 원 초~중반 정도입니다. 디카 유행 초기에만 해도 5만~6만 원 선이었던 가격이 최근에는 10만 원 안팎으로 뛴 겁니다.
 

Y2K 트렌드에 '옛날 감성' 찾는 Z세대


사실 1년 전만 해도 빈티지 디카가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습니다.

세운상가에서 빈티지 디카를 팔고 있는 또 다른 가게 주인 김모 씨(65)는 "디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게 1년도 채 안 됐다"면서 "개인적으로 10년 전부터 디카를 꾸준히 모았었는데, 주변에서는 '아무도 안 쓰는 걸 왜 사 모으냐'고 핀잔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디카를 찾기 시작한 건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였습니다.

Z세대 사이에서 Y2K 감성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겁니다. 패션에 이어 Y2K 시대 감성을 담은 소품들까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아이돌 그룹 뉴진스가 지난해 말 발표한 노래 '디토(Ditto)'의 뮤직비디오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옛날 캠코더로 촬영한 듯한 90년대 감성을 담아내면서 큰 주목을 받은 거죠. 그때부터 Z세대 사이에선 옛날 느낌 나는 사진과 영상 촬영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판매 중인 옛날 캠코더.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판매 중인 옛날 캠코더. 〈사진=이지현 기자〉


필름카메라 영향도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필름카메라지만, 최근 필름 값이 너무 비싸졌습니다. 필름 공급이 점점 줄면서 가격이 꾸준히 오른 겁니다.

최근에는 사진 36장을 찍을 수 있는 필름 한 롤이 1만 80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카메라 매장을 운영 중인 김모씨는 "요즘은 필름 값에 인화하는 비용까지 다 하면 사진 36장에 4만~5만 원이 드는 셈"이라며 "손님들이 한동안 필름카메라를 많이 찾다가 요즘은 너무 비싸서 잘 찾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필름 카메라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성비 좋은 옛날 디카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디카 매장을 운영하는 이규태 씨는 "요즘 20대들은 디카를 직접 만져보지 못한 세대지만, 어릴적 부모님이 찍어준 사진을 접하긴 했을 것"이라며 "아주 어릴 때의 그 감성이 그리워서 옛날 디카를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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