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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정수 축소' 민심 반영했다?…사실은 여론 역행 중?

입력 2023-06-2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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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의원 정수를 축소하자고 주장하고 있죠.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는데요. 김 대표는 "좀스러운 반응"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다만 국회 정개특위가 벌인 공론조사는 김 대표의 주장과는 정반대라 여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죠. 박준우 마커가 '줌 인'에서 관련 소식을 정리했습니다.

[기자]

[김기현/국민의힘 대표 (지난 20일) : 첫 번째,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에 나섭시다. 의원 300명인데요. 10% 줄여도 국회 잘 돌아갑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엉뚱한 정쟁 유발하는 것, 포퓰리즘에 골몰할 그 시간에 진짜 할 일 하면 됩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정치 개혁 아젠다로 의원 정수 축소를 띄우고 있죠. 국민들에게 여당이 정치 혁신에 앞장선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목적일 텐데요. 친윤계도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입니다. 김 대표가 말한 의원 수 감축은 다름 아닌 국민의 뜻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이철규/국민의힘 사무총장 (SBS '김태현의 정치쇼' / 지난 21일) : 김기현 대표 개인의 생각도, 우리 당만의 생각도 아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뜻입니다. 국민들의 바람이 바로 '국회의원 정수가 너무 많다, 줄여라…']

대의 민주주의에서 민의를 반영한다는 것만큼 좋은 명분은 없을 텐데요. 다만, 민주당은 '포퓰리즘'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국민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게 과연 옳은 정치냐는 겁니다.

[정성호/더불어민주당 의원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 지난 21일) : 저는 김기현 대표의 국회의원 감축은 굉장히 포퓰리즘적인 그런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회의원 1인당 우리 국민 수를 비교해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국회의원 수가 적은 나라거든요. {17만명이니까요.} 다만 국회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줄여야 된다는 여론도 크지만 국회가 제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한 거지, 수 줄이는 게 중요하지 않지 않습니까?]

김 대표는 "민망하고 좀스러운 반응이 아닐 수 없다"고 역공에 나섰죠.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 세금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일하자는 것이 포퓰리즘이라면 그런 포퓰리즘 맨날 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는데요. 이철규 사무총장도 여론은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철규/국민의힘 사무총장 (SBS '김태현의 정치쇼' / 지난 21일) : 결국은 바람직한 제도를, 또 바람직한 정치문화를 만들 수 있는 정치세력이 어느 당인지를 국민들께서 보실 겁니다. {그러면 정치개혁 이슈를 국민의힘 당 차원에서 추진하는데} {민주당의 반대로 그것이 되지 않으면?} 좌절된다면 관철할 수 있도록, 이걸 이룰 수 있도록 국민들께서 힘을 주시겠죠.]

김기현 지도부는 의원 정수 축소를 당론으로 채택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당내에 큰 이견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사실 김 대표가 이 얘기를 처음 꺼낸 건 지난 4월이죠. 이때만 해도 공개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의원들이 있었는데요.

[이용호/국민의힘 의원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 / 4월 7일) : 의원 정수 축소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요. 김기현 대표께서는 (국민의) 정치불신을 줄이는 것을 하나로 그런 것(의원 정수 감축) 던진 것이 아닌가 싶고요.]

친윤계인 김정재 의원도 지역구 의원들의 저항이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김정재/국민의힘 의원 (SBS '김태현의 정치쇼' / 4월 7일) : 막상 이렇게 지역구에 국회의원 수를 줄이려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굉장히 저항이 좀 있죠. 이런 중요한 문제는 의총에서 논의해야 되고 당론으로는 저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보는데…]

그럼 불과 2달 사이 어떤 일이 있었길래 반대 목소리가 잠잠해졌다는 걸까요? 지역구 의원이 아니라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30석을 줄이려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김병민/국민의힘 최고위원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 지난 21일) : (의원 정수 축소에) 여야가 합의를 진행하게 된다면 그다음은 비례대표 축소, 그리고 일부 지역구에 대한 조정, 이런 일들은 그다음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비례대표 축소에 대한 의견이 훨씬 더 크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인 조해진 의원도 비례대표를 없애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었죠.

[조해진/국민의힘 의원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 지난 21일) : '연동제는 더 이상 불필요하다'라고 결론 내려지면 비례 의석을 줄일 방안이 있는데 그거는 개인적으로는 그건 비례를 줄여야, 비례를 축소하거나 없애야, 없애는 식으로 전체 의석을 줄여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비례대표 중심으로 의원 수를 축소하는 방안이 국민 여론과 부합하는지 따져볼까요? 답은 '글쎄'입니다. 지난 5월 국회 정개특위가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선거제 개혁 공론조사를 실시했죠. 공론조사는 특정 사안에 대해 단순히 찬반이나 선호를 묻는 일반 여론조사와는 다른데요.

[이광용/사회자 (유튜브 'KBS News' / 지난 6일) : (시민참여단) 구성은 성별, 연령별, 지역별 구성비와 사전에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의견의 비율을 반영했습니다. 공론화를 위해 500인의 시민참여단이 사전에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생각하는 숙의 학습의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한 번 똑같은 질문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요.]

공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숙의 전 65%였던 '의원 정수 축소' 의견은 37%로 크게 줄었습니다. 오히려 '정수 유지' 의견과 '정수 확대' 의견이 확 늘어났는데요. 그 이유는 뭘까요?

[김보미/경남 시민참여단 (유튜브 'KBS News' / 지난달 13일) : '국회의원 수는 무조건 줄여야 된다'는 그런 생각으로 이 자리에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국가별 어떤 의석수를 한번 비교해 보니까 노르웨이나 아니면 스웨덴, 핀란드 같은 경우는 인구 3만명당 국회의원 숫자가 1명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17만명에 1명의 숫자를 볼 때 정말 턱없이 숫자가 부족하다는 걸 제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비례대표를 줄여야 한다는 것도 공론조사 결과와는 정반대입니다. 숙의 이후 공론조사에서는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70%를 차지했는데요. 비례대표 제도의 순기능, 다양한 직능을 대표할 만한 전문성 있는 의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건데요. 비례대표는 지역구가 아닌 국가적 의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국민들은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리자는 데 공감한 셈입니다.

[김영배/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20일) : 국민들이 토론 과정에서 그렇게 '비례대표도 적절한 비율로 확대되는 게 정치가 혁신되는 데 더 낫지 않겠느냐' 이런 의견을 가지신 것 같아요.]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20일) : '지역구 의석을 계속 늘리는 과정에서 전체 의석은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비례대표는) 줄어들었다' 이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그건 사실 되돌리는 게 맞다고 그렇게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공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의원 수 축소는 여론을 역행하는 꼴인데요.

김기현 대표의 의원 수 감축 주장이 타당성을 얻기 위해선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죠. '국회의원 수가 줄어들면 국회가 일을 잘할 것이다'란 명제가 성립돼야 하는데요. 국회의원 숫자와 정치의 질적 향상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현재로선 미지수입니다.

[김종인/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SBS '김태현의 정치쇼' / 어제) : 국회가 일을 제대로 안 하고서 국민들이 짜증을 내니까 '국회의원 그까짓 거 더 줄여야 되지 않냐'는 이런 불만의 소리가 나온 건데. {여론조사에 보면 줄여야 된다는 수치가 좀 높게 나오긴 하죠.} 그건 여론조사에 나온 그런 거 가지고서 정치를 판단하면 안 돼요. 어느 나라도 국회의원 숫자를 가지고서 줄인다, 늘린다 하는 그런 나라가 없어요. 이 사람들이 지금 정치개혁이라는 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정치개혁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정치인들의 자세부터 고쳐야 되는 거예요.]

김 대표는 의원 수를 줄이면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고 어필하고 있죠. 그런 생각이라면 의원 수는 그대로 두고 의원 1명이 받아가는 세비를 줄이면 될 일입니다.

[김보미/경남 시민참여단 (유튜브 'KBS News' / 지난달 13일) : 그래서 만약에 예를 들어서 국회의원 숫자를 늘린다면 당장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거는 그럼 '세비는?' 그걸 먼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 세비를 그러면 나라별로 비교를 해보니까 우리나라가 국민 1인당 소득 수준 대비해가지고 4배의 세비가 지급되더라고요.]

내심 1인당 세비를 줄이는 건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성호/더불어민주당 의원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 지난 21일) : 오히려 국회의원 수를 줄인다고 하면 국회의원의 권한과 책임만 더 커지게 됩니다. 오히려 특권은 내려놓고 의원 수는 유지하거나 좀 늘리는 게 낫겠죠.]

공론조사에 참여했던 전문가들도 의원 수 감축은 정치혐오에 기댄 생각이라고 염려를 드러냈는데요.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20일) : 예를 들자면 정치학자들 10명을 붙잡고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게 맞아, 줄이는 게 맞아?' 그러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10명 중에 9명 내지 10명 정도는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게 맞다'고 답변을 할 겁니다.]

그러자 국민의힘이 꺼낸 카드, '조사 신뢰도 깎아내리기'입니다. 공론조사 참여 전문가들 상당수가 친민주당 성향을 띠고 있다고 지적한 겁니다.

[김상훈/국민의힘 의원 (지난 20일) : 이번에 시민 참여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는 우리 당 의원 중에 워킹그룹의 구성에 의한 바이어스란 이의 제기도 있습니다. 특히 또 토론 발제 과정에서 주로 정치학자분들에 의해서 주도된 그런 의견의 경도된 여론조사가 나왔을 가능성이 또 있을 것 같아요.]

공론조사에 참여한 국민들이 편향적인 전문가 집단에 휘둘렸다는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요? 자칫 국민과 전문가 모두를 모욕하는 주장일 수도 있는데요.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20일) : 참여하신 정치학자들 다 굉장히 학계에서 존경받고 중요한 업적을 많이 남기신 분들이고 그분들 오셔서 최선을 다해서 하셨습니다. 그래서 메신저를 공격하시는 거는 지양을 하시고 그다음에 저희들이 생산한 데이터를 그냥 보시라고 지금 만들어 드린 겁니다.]

'국회가 일을 못하니 의원 수를 줄이자', 얼핏 듣기에는 속이 시원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당이라면 듣기 좋은 말부터 앞세우기 보다는 국회에 불신이 쌓인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는 게 먼저일 텐데요. 그에 맞는 쇄신안을 내놓는 게 진짜 책무일 듯합니다. 오늘 '줌 인' 한 마디는 한때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분의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김종인/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SBS '김태현의 정치쇼' / 어제) : 느닷없이 다른 할 말이 없으니까 의원 정수를 갖다가 10% 줄이겠다. 그게 대체 국민 생활이랑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예요. '국회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니까 국회의원들 세비도 주지 말자'는 이런 것이 이제 일반 국민들의 여론이니까 그걸 받아들여가지고 정치인이 그것이 대단한 얘기처럼 하는 건데 나는 그게 별로 정치에서 가장 유치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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