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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저출생 대책인가?"…쏟아진 비판에 '서울팅' 재검토

입력 2023-06-1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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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저출생 대책으로 기획됐던 '서울팅' 방안을 결국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서울팅은 결혼적령기 미혼 남녀의 만남을 서울시가 주선해주는 정책입니다. 청년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주고 결혼 문화를 장려하는 한편,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됐습니다.

참여자들은 함께 요리하거나 고궁 탐방 등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가게 됩니다. 또 서울시가 재직증명서나 혼인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니 안전한 만남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조한 부분이죠. 서울시는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에 '청년만남, 서울팅' 예산 8000만 원을 포함시켰습니다.

이렇게 이미 추경안까지 마련한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한 건 비판 여론이 많아서였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팅은 저출생 대책 중에서도 매우 작은 일부분으로 출발했지만 부정적인 목소리가 컸다”면서 “이로 인해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많은 저출생 대책들이 희석되는 건 아닌지 우려돼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현장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사와 관계 없는 자료사진. 〈사진=장영준 기자〉

기사와 관계 없는 자료사진. 〈사진=장영준 기자〉

“만나지 못해 연애 안 하는 건 아냐” 비판 목소리


일단 정책 대상자인 결혼 적령기 미혼 청년들부터 부정적입니다.

대학원생 이모 씨(29)는 “청년들이 만남의 기회가 없어서 연애나 결혼을 안 하는 건 아니지 않냐”면서 “당장 나 혼자 먹고 자는 생활 문제도 해결하기 버거운데,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준다고 해서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직장인 김모 씨(31)는 “이미 민간 영역에 결혼정보회사나 소개팅 앱이 많이 있는데 그걸 왜 공공부문에서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어 “등본을 떼고 재직증명서를 확인한다고 해서 완전하게 검증되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하모 씨(33)는 “이걸 저출생 대책으로 기획한 게 이해가 잘 안 간다. 연애한다고 결혼을 꼭 하거나, 결혼한다고 꼭 아이를 낳는 건 아니지 않냐”며 “세금 낭비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추경안을 심사하는 서울시의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박강산(더불어민주당·교육위원회 부위원장) 시의원은 지난 13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오늘날 결혼과 출산, 육아의 고민을 안고 있는 서울의 청년들이 오 시장에게 기대한 정책이 서울팅의 방향은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만남 주선 나서는 다른 지자체들도 많아


이런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는 결혼적령기 청년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는 '솔로몬(SOLO MON)의 선택'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한 번에 100명이 모여 파티와 대화, 커플 게임 등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7월 초 두 번에 걸쳐 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성남시 관계자는 “어제까지 1차 모집을 마쳤는데 900여 명 정도의 신청자가 있었다”며 “남녀 성비는 7대 3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지방 도시는 더 적극적으로 미혼남녀 만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북 구미시가 지난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미혼남녀 커플 매칭 행사 '두근두근~ing'. 〈사진=구미시〉

경북 구미시가 지난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미혼남녀 커플 매칭 행사 '두근두근~ing'. 〈사진=구미시〉


경상북도 구미시는 지난 2016년부터 미혼남녀 커플 매칭 행사 '두근두근~ing'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가 확산한 2020~2021년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총 10차례 열렸습니다.

대구 달서구는 미혼남녀 만남 행사를 진행하면서,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자녀의 짝을 직접 찾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노하우 없어”…“기성세대 인식 바뀌어야” 의견도


지자체들은 이 정책을 '결혼문화 조성'과 '저출생 대책'의 하나로 기획했습니다.

물론 이 정책이 청년들의 비혼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정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민 세금을 들여 추진하는 정책인 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도 따져봐야겠죠.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라도 해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결혼정보회사 등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해야 하는 만큼, 공공부문에서 저렴한 가격에 좋은 기회를 만든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구 교수는 “다만 요즘은 이런 만남에도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젊은 사람들의 독특한 취향과 이성을 대하는 방식 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며 “그런 노하우가 부족한 공공기관이 저출생 문제에 대응한다는 의지만으로 나설 문제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만남의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기성세대의 굳은 시각 아니냐”며 “전통적인 결혼관과 가족관 안에 청년들을 끼워 넣으려는 기성세대의 정책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교수는 "청년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보다 결혼·가족관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 교육을 먼저 해야 한다”며 “청년들이 동거 등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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