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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아이디어 탈취 아냐, 먼저 시작한 서비스" 교보문고 해명이 석연치 않은 이유

입력 2023-06-05 17:10 수정 2023-06-05 18:23

투자 협의 2개월 전부터 방향 설정했다지만...아직까지 근거 제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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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협의 2개월 전부터 방향 설정했다지만...아직까지 근거 제시 못해

 
텍스처와 리드로그

텍스처와 리드로그


"책 속의 문장을 촬영해서 OCR(광학 문자 인식) 판독을 통해 텍스트 데이터로 저장을 하게 되거든요. 이런 데이터를 빅데이터 형태로 모아 사용자 취향,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하고 유통하는 서비스 비즈니스를 읽어가는, 그렇게 접근했던 팀은 사실 저희가 국내에서 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소셜 독서 플랫폼 '텍스처' 김치호 대표는 JTBC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달 중순 교보문고가 출시한 '리드로그' 어플을 유사 서비스라고 주장하면서 내놓은 근거입니다.

"저희가 유일한 서비스로 존재하고 있는데, 교보문고와 투자 협의가 결렬된 지 1년 정도 지나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는 앱이 출시됐다는 것만 해도 너무 따라했다, 카피했다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JTBC 뉴스룸이 지난 2일 보도한 '[단독] "피를 섞자"더니 아이디어만 빼먹고 투자 철회한 교보문고…스타트업 탈취에 당정도 칼 빼든다' 기사는 한 지인으로부터 받은 제보에서 출발했습니다. "보고만 있기에 너무 안타까운 일을 당한 사람이 있는데, 이런 것도 기사화가 가능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을 듣다 보니, 취재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판단이 들어 김 대표를 만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유사하다는 주장인지 묻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텍스처 김치호 대표 인터뷰

텍스처 김치호 대표 인터뷰


"문장을 사진 촬영해 OCR 판독해 데이터로 받아 문장 카드 형식으로 보여주는 UI(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저희 핵심 (기술)이에요. 문장 카드라는 형태가 포스트에 쌓이게 되는데, 교보문고의 리드로그도 본인이 기록한 문장 카드들이 쌓이게 되고 홈피드에도 노출이 됩니다. 이를 기반으로 교보문고는 자사 혹은 자사가 유통하는 서적 홍보들을 하고 있거든요. 이 구성도 저희가 원래 계획했던 구성이에요."

이번엔 교보문고의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JTBC 보도 전 교보문고는 "지난해 1월부터 이미 리드로그의 방향성은 정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텍스처만의 특별한 아이디어도 아닙니다. 저희만이 아니라 업계에 확인해 보시면 누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2015년 출시된 다른 어플(원센텐스 등)도 있고, 커머스 활용하는 유튜브, 배민, 요기요 등 많은 어플들이 이미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교보 자체적으론 2018년도에 웹에서 문장수집하는 아카이빙 서비스를 해왔고, 연속선 상에 있는 서비스가 리드로그입니다. 카피한 것이 아닙니다."

"원래 개발하고 있던 서비스에 '파트너십 개념'으로 함께 하려 했는데, 지분 조율 과정에서 제시한 지분을 텍스처 측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엎어진 것입니다."

양측의 주장을 따져 보기 위해 협의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은 이메일을 확인해 봤습니니다.
 
텍스처가 교보문고에 보낸 이메일 중

텍스처가 교보문고에 보낸 이메일 중



'텍스처와 교보문고 DT추진팀과의 협업 제안' 문서에는 "온 오프라인에서 문장 검색 기능을 활용", "교보문고 앱에서 사용자들이 직접 문장 기록을 할 수 있도록 텍스처 연동", "텍스처 앱 내 '책 상세페이지'에 교보문고 결제 모듈 탑재" 등이 담겼습니다. "인플루언서의 큐레이션(스크랩북)을 노출해 사용자 관심사에 맞는 도서목록을 제공하고, 교보문고 앱과 연결해 자연스럽게 구매가 일어나도록 유도"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당시 이메일에서 "제안 주신 내용 잘 확인했다""저희 쪽에서 개발 등 진행해야 할 부분도 분명 많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리드로그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교보문고의 반박과는 어긋나는 정황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보도에 앞서 교보문고에 텍스처로부터 주요 정보를 넘겨받기 전, 리드로그의 방향성이 현재의 형태였다는 걸 입증할 수 있는 계획안 등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교보문고는 "시간이 부족하니 준비해서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김 대표는 '원센텐스 등 이미 출시된 다른 어플이 있었다'는 교보문고 반박에 대해 "OCR 판독 기능 등 유사한 면이 있지만, 관심사 기반으로 내 피드에서 큐레이션 되는 기능은 없고 폴더 기능도 없다. 상거래로 연결시키려는 저희 로드맵과도 다르다"고 재반박했습니다.

"원래 개발하고 있던 서비스에 텍스처를 파트너로 참여시키려 했다"는 취지의 교보문고 주장에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자신들은 교보문고가 이미 개발하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리드로그 출시 사실조차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전해듣고 알았다는 겁니다.
 
보도화면

보도화면


텍스처 건에 도움을 주기로 한 공익재단법인 경청의 박희경 변호사는 비슷한 분쟁이 비일비재하다고 했습니다. 경청은 현재 텍스처가 갖고 있던 기존 특허증 등을 토대로 변리사와 함께 법률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박 변호사는 "스타트업이 법률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아이디어 침해 규정이 도입됐고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물 침해 규정이 있습니다만, 아이디어나 성과물 개념이 추상적이기도 하고 실제 소송에 갔을 경우 원고인 피해기업이 입증 책임을 지게 되는데, 간혹 어렵게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액도 굉장히 적어 이중고를 겪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스타트업 스스로도 협상 과정에서 대비를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IR문서나 투자제안서에 기술상 정보나 영업상 정보가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다"며 "초반부터 NDA(비밀유지계약서) 체결을 해서 증거를 마련해 두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구두계약을 맺을 경우 증거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중요 자료를 건넬 때는 무조건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기록을 남겨둬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여당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현재 국회 산자위에서 보고 있는 '탈취' 분쟁 사례는 텍스처 외 8건으로 파악됩니다. 한무경 국민의힘 중소기업위원장은 "거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탈취와 아이디어 도용 문제가 심각하다"며 "당 중소기업중앙회 차원에서도 공동 대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달 중 민당정 협의회를 열고 텍스처를 비롯한 스타트업 기업들의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기술·아이디어 탈취 피해 대책을 강구할 계획입니다. 당정 협의를 이끌고 있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JTBC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청년 벤처나 스타트업들은 기술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탈취하는 행위들로부터 보호하고 예방하는 것, 또 피해를 구제하고 회복하는 것을 관련 부처들이 시스템을 구축해서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정이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 중이고 조만간 대책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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