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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입력 2023-06-05 08:01 수정 2023-06-05 09:3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6)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에너지전환의 열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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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6)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에너지전환의 열쇠 (중)

지난주에 이어 영농형 태양광에 대해 살펴봅니다. 한여름 내리쬐는 햇빛의 밝기는 100~120klux에 달합니다. 작물들은 이 햇볕을 통해 광합성을 하고, 무럭무럭 자라나죠. 더위를 잊게 해주는 여름 과일인 수박의 경우, 광포화점은 70~80klux 가량. 이를 넘어서는 강한 햇빛을 마주할 때, 엽록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위치를 옮깁니다. 엽록체의 광정위운동으로 인해 70~80klux를 넘어서는 햇빛은 수박의 생장에 도움을 주지 못 하는 것이죠. 우리의 주식인 쌀을 만들어내는 벼의 경우, 광포화점은 이보다 훨씬 낮은 50~60klux 수준입니다. 배(40~60klux)와 사과(20~40klux)는 이보다도 더 낮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이처럼 작물마다 소화할 수 있는 빛의 양을 넘어서는 햇빛을 아낌없이 활용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영농형 태양광입니다. 농업(Agriculture)과 태양광발전(Photovoltaique)을 합친 표현인 아그리볼타이크(Agrivoltaique)라는 표현이 처음 만들어진 프랑스에선 영농형 태양광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연재에선 프랑스가 입법 과정을 통해 영농형 태양광의 우선순위가 발전이 아닌 농업에 두고 있음을 상세히 설명해 드렸죠. 현장에서 직접 만나본 농업인들 역시, 영농형 태양광을 하게 된 계기로 폭염과 우박, 서리 등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피해를 꼽았습니다. 때문에 발전사업자는 발전 수익을, 농업인은 농지의 보호를 각각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둘러본 영농형 태양광 농장에선 단순히 농업과 발전의 융합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영농형 태양광과 농업은 공생 관계에 있습니다. 당장 우리는 태양광 패널 없이는 작물들을 보호할 수 없기도 하죠. 1헥타르의 땅에서 농업 생산과 전력 생산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집니다. 농업을 위한 1헥타르, 발전을 위한 1헥타르가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둘을 1헥타르의 같은 땅에서 하니까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고선, 거의 모든 작물이 영농형 태양광을 할 수 있습니다. 설비를 본다면, 농업인이라면 본능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체리, 살구, 복숭아, 키위, 사과, 배 등 거의 모든 과일에 패널 작동 알고리즘을 적용해 가동할 수 있죠. 쌀과 같은 곡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햇빛, 온도 등 알고리즘을 짜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죠.”
아드리앙 클레르 체리 농장 농민

농업과 전력 생산의 융합을 넘어선 '그 무언가'는 바로 알고리즘이었습니다. 프랑스 에뚜왈-쉬르-론과 드롬에서 직접 둘러본 영농형 태양광 농장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태양광 패널뿐 아니라 온도계와 습도계, 적외선 카메라 등 각종 센서와 측정 장비가 농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위해선 크게 4개 종류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해당 작물의 광포화점과 같은 '작물 기본 정보'입니다. 어느 정도의 빛과 그늘이 필요한지, 어느 정도의 빛과 그늘에 얼마만큼의 질적·양적 차이를 보이는지 모델링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는 '생산 목표 데이터'입니다. 농장주가 어떤 품종을, 어떤 시점에, 어느 정도의 품질(색이나 생장 정도 등)로 수확하려 하는지 목표값을 담은 정보이죠. 세 번째 데이터가 바로, 현장에서 본 각종 센서를 통해 얻는 '각종 현장 데이터'입니다. 기온과 습도는 물론, 토양의 깊이별 수분 함량, 나뭇잎의 수분함량과 표면 온도 등 시시각각 변하는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데이터는 '일기예보 데이터'입니다. GIS(지리정보시스템)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기온과 습도 등 기상 정보를 활용해 앞으로의 날씨가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한 값입니다. 이렇게 영농형 태양광은 야외의 기존 재배 환경에서도 '스마트팜'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영농형 태양광은 그야말로 '농업 도구'이며, 이곳의 체리나무와 같은 각종 농작물을 보호하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기후변화 적응 도구'입니다. 녹색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고요. 이곳의 태양광 패널은 네 가지의 입력된 데이터를 활용해 원격 및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매 순간 작물의 이상적인 재배환경을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최적화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농업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를 위한 농경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 이곳의 클레르 가족은 기후변화로 인해 해마다 점점 더 심각한 문제를 직면하게 되자, 해결책으로서 영농형 태양광을 선택했습니다. 가뭄과 폭염, 서리 등의 피해가 더 빈번해지고, 더 심각해졌던 겁니다.”
알렉산드르 카르티에 프랑스 선아그리(Sun'Agri) 국내사업담당

발전사업자와 농업인이 서로 '윈윈'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영농형 태양광을 통해 점차 심각해지는 극한 기상 현상으로부터 작물을 지키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기에 클레르 가족은 발전수익의 배분 없이도 영농형 태양광을 자신들의 농장에 유치했던 겁니다. 태양광 패널이 만든 그늘은 농업인의 노동 환경 개선에도, 물 사용량의 절감에도 기여했습니다. 토양의 수분 증발뿐 아니라 강렬한 햇빛에 식물에서 일어나는 수분 증발 또한 줄어들면서 농장의 물 사용량이 30% 가량 감소한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영농형 태양광과 농업이 서로 '윈윈'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전남 보성군의 한 녹차밭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영농형 태양광과 녹차 재배가 함께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실증사업인 만큼 농장 일부 면적에서만 진행중이었죠. 그런데, 20년 넘게 녹차 재배를 한 베테랑 농업인 안병태 씨에게 영농형 태양광은 농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 녹차로 돈을 만진다거나 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군에서 보조도 해주지만, 그럼에도 녹차 농가들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다 논에다 먼저 영농형 태양광을 해본 농협 조합장님의 권유로 영농형 태양광을 하게 됐습니다. 녹차는, 국내에선 아직 시험장에서 연구가 진행중입니다만, 일본에선 도리어 수확량이 3~5배 더 나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하게 됐습니다.”
안병태 전남 보성군 녹차 농업인
 
[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해외 연구로만 접했던 생산량의 증대를 직접 경험하고, 여기에 발전 수익까지 기대되면서 안씨의 농업은 말 그대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태양광 패널에) 햇볕이 차단되니까 녹차 상등품 생산량이 좀 많아진 것 같습니다. (대조군과) 비교를 해보셨겠지만, 태양광 패널 밑에 있는 차의 새순이 올라오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첫물차는 바로 수확을 하지 않고, 원래도 차광을 해 가루 녹차 재료로 쓰이거든요. 그런데, 패널을 설치하니 잎이 더 커지고 부드러워서 가루 녹차를 만들기 위한 녹차 잎 생산량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여기에, 영농형 태양광으로 전력도 생산하게 되니까 소득은 더 높아질 걸로 예상됩니다. 소득이 2배만 더 높아져도 좋은데, 3~5배 정도 한다고 하니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안병태 전남 보성군 녹차 농업인

배로 유명한 전남 나주시도 찾아가봤습니다. 나주시의 한 '신화배' 과수원에서도 영농형 태양광의 실증 사업이 진행중이었습니다. 이 과수원의 김준 씨가 영농형 태양광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앞선 연재에서 소개해드린 프랑스의 사례와 비슷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2018년에 거의 한 달 반 동안 폭염이 지속됐습니다. 배나무 잎이 광합성을 해야 하는데, 폭염에 햇볕이 너무 강하면(100~120klux) 배의 광포화점(40~60klux)을 넘어서거든요. 기온도 30도 이상 고온으로 치솟아버리니까 배도 안 크고 정체(생장 최적온도 20℃)되더라고요. 봉지를 씌워놨는데도 햇빛이 워낙 강하다보니까, 열과가 굉장히 많이 나와버렸어요. 사람 얼굴이 시커멓게 타버리는 것처럼, 배가 그냥 빨갛게 익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햇빛을 차광을 시켜주는 게 있으면 좋겠다 했는데, 마침 영농형 태양광 시범사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신청을 하게 됐고, 채택이 되어서 이렇게 하게 됐죠.”
김준 전남 나주시 배 농업인

햇빛을 가리게 되면서 도리어 배 수확량이 줄면 어떡하나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배가 안 크면 어쩌지, 배나무가 안 좋아지면 어떨까, 이런 고민들을 사실은 안 한 건 아니에요. 해봤죠. 배연구소에 자문도 구해봤고요. 근데 저는 '그늘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절실한 부분이 있었어요. 당연히 일조량 자체가 많은 해와 적은 해와는 차이가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작년하고 재작년에는 제가 정상적으로 여기 신화배 밭에서 수확을 했거든요. 그렇다면,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 싶어요.”
김준 전남 나주시 배 농업인
 
[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김씨는 “수확의 경우, 수확 시기만 조금 늦을 뿐이지 수확량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며 “크기나 맛 또한 동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폭염 피해를 줄여보고자 시작한 영농형 태양광이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습니다.

“2020년에 기온이 영하 7~8도로 갑자기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서리가 내려앉으면서 배꽃이 다 암술이 죽어버렸는데, 태양광 패널 밑에만 꽃이 자빠지지 않고 빳빳이 서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태양광 패널 덕에 직접적으로 떨어지는 서리를 안 맞은 거예요. 그래서 그 꽃들에 수정을 했는데, 배가 거기에만 엄청 달렸어요. 이런 좋은 부분이 또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랐죠.

그리고, 태풍이 불었을 때도 대조군보다 여기가 배가 훨씬 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어요. 그걸 그 때 동영상으로 찍어서 연구원에 자료도 보냈어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두꺼운 파이프가 설치되어있는데, 이게 지주 역할도 하면서 배나무의 버팀목 역할도 하기 때문에 태풍이나 강풍에도 배가 쉽게 떨어지지 않아요.”
김준 전남 나주시 배 농업인

영농형 태양광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은 또 있습니다. 해마다 줄어드는 농지와 농업인구,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농촌 고령화… 기후변화 못지않게 농업을, 농지를 위협하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해결사'의 역할입니다.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나라는 어디인지, 우리나라에선 영농형 태양광이 왜 아직도 실증 사업, 시범 사업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지난달 31일 방송된 국내외 영농형 태양광 사례를 생생히 담은 JTBC 다큐멘터리 〈농촌과 태양광: 상생의 이야기〉는 JTBC 홈페이지와 티빙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농업을 지키는 도구, 스마트팜 전환의 마중물 '영농형 태양광'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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