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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의 중국은, 왜] #110 ARM 팔 비튼다?...韓반도체 예고편

입력 2023-06-04 08:57 수정 2023-06-05 14:14

中당국, ARM 철수 승인 보류
"연구기관, 대학과 협력" 압박

中 과학부 차관 "정부 지원 계속할 것" 회유
ARM 철수, 中반도체 자급 구상 타격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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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당국, ARM 철수 승인 보류
"연구기관, 대학과 협력" 압박

中 과학부 차관 "정부 지원 계속할 것" 회유
ARM 철수, 中반도체 자급 구상 타격 불가피

르네 하스 ARM 홀딩스 대표이사가 5월 29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콤퓨텍스 행사에 참여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르네 하스 ARM 홀딩스 대표이사가 5월 29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콤퓨텍스 행사에 참여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나가긴 나가야 하는데…."

탈(脫)중국 화두를 받아 든 기업들의 고민이 들리는 듯 합니다. 삼성을 비롯해 일본 소니, 그리고 애플도 겉으론 태연한 표정이지만 시간의 문제이지 탈중국을 거스르기는 어렵습니다. 안보가 맞물린 정치의 장벽 앞에서 비즈니스 문제는 종속 변수에 불과합니다. 에너지나 첨단 부품 밀수 시장이 틈새를 만들긴 하지만 대세는 탈중국입니다.

중국 시장을 보고 시장 가까이에 공장을 포진시켰지만 인건비가 가파르게 올라 이 공장의 원가 경쟁력도 시험대에 오른 마당입니다.

그래도 초를 재는 긴박감까지 느껴지는 정도는 아닙니다. 원가 경쟁력이 마모돼 마이너스로 돌지 않는 한 테슬라처럼 중국 시장의 구매력을 한껏 활용하기 위해 공장을 증설하고 출혈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탈중국이 초읽기 프레임에 들어간 분야가 있습니다. 반도체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중요한 기술적 길목마다 빗장을 걸고 있습니다.

미국의 막후 조정으로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극좌외선)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은 차단됐습니다. 일본의 광학장비업체 니콘, 캐논 등에서 생산한 반도체 장비도 중국 수출길이 막혔습니다. 일본은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 5월 23일 23개 반도체 품목에 대한 대중 수출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네덜란드와 일본의 장비업체들의 첨단 장비가 중국에 수출되지 않도록 흐름을 끊었고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 변수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첨단 반도체 장비 도입이 어려워지면 단기간에 반도체 제조 역량 혁신은 먼 얘기가 됩니다. 중국이 자력으로 장비를 향상 시키고 공정 기술을 축적하려면 일단 시간이 가장 큰 변수입니다. 시간이란 변수에 매이면 선도 기업들과 초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뿐입니다.

믿을 건 중국에 진출한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최대한 기술과 노하우를 뽑아내야 하는데 기술 유출에 대한 단속과 감시 수위도 덩달아 높아지니 이마저도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에 진출한 반도체 기업에 주는 신호는 명료해 보입니다. '나오라'는 겁니다.

일단 미국 기업 마이크론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 마이크론이 상하이 D램 설계 센터를 철수하고 150명의 인력을 재배치했습니다. 중국 인터넷보안 당국의 마이크론 중국 내 판매금지 조치로 이제는 시안의 후공정공장 철수도 시간 문제로 보입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의 대표적인 기업 ARM도 이 대열에 탑승했습니다. ARM은 일본 소프트뱅크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ㆍ퀄컴 등 전 세계 스마트폰의 95%가 ARM이 설계한 프로세서를 탑재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중국 정부가 ARM의 현지 사업 철수 승인을 1년 이상 보류하고 있는 가운데 ARM 르네 하스 CEO가 중국을 방문했다고 전했습니다.


뉴욕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인 ARM은 기업공개(IPO) 전 중국 사업부 철수를 마무리 짓고 싶어합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승인을 미루면서 ARM의 상장 전략에 차질이 생기고 있는 거죠. 1년 이상 진척 없이 시간이 흐르니 CEO가 나서 물꼬를 틀어 보려고 중국을 찾은 겁니다.

중국 당국자를 만난 하스 CEO.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요. 하스 쪽 관심사는 '나가고 싶으니, 나가야 하니, 발목 잡지 말아달라'일 텐데요. 중국 당국 쪽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FT에 따르면 장광진 중국 과학기술부 부부장(차관)이 ARM에 '중국의 대학, 연구기관 및 기업과 협력을 강화해달라'고 했다는군요. 당국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정도의 립 서비스도 했던 모양입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이쯤되면 멀리 영국에서 출장 온 하스 대표 입장에선 벽에 대고 얘기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ARM은 미국과 영국의 대중 수출 통제로 중국의 고객사들에 반도체 설계 자산을 팔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잡아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형국입니다.

ARM의 사례는 중국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팔고 있는 우리 반도체 진영에 충격과 고민을 안겨줄 겁니다.

공장을 빼는 문제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자산 매각 과정에서의 손실 뿐이 아닙니다. 수많은 현지 고용 문제와 브랜드 이미지 타격으로 언제가 될 지 모르나 다시 시장에 돌아올 때 안아야 할 유·무형의 비용 등 일일이 계산이 알 설 겁니다.

탈중국의 거센 흐름 속에서 따로 엑셀을 밟지 못해도 먼저 브레이크는 밟을 상황은 아니라고 하지만 물밑에선 누가 먼저 발을 뺄지 눈치 싸움이 치열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입니다.

이렇게 도전적 상황에 우리 반도체 진영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가슴 졸이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팔목을 비틀고 발목을 잡아서라도 탈중국 속도를 늦춰보려는 중국 반도체의 자력갱생 현주소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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