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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봐서 압니다"…마셜 제도가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이유

입력 2023-06-03 09:00 수정 2023-06-21 19:06

트레거 알본 이쇼다 주한 마셜 제도 대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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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거 알본 이쇼다 주한 마셜 제도 대사 인터뷰


마셜 제도 공화국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100%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 마셜 제도 대사관]

마셜 제도 공화국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100%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 마셜 제도 대사관]


바다가 곧 삶의 터전인 태평양 섬나라들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줄곧 우려를 표해왔습니다. 지난달 29일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한국·태평양 정상회의에서 마셜 제도 공화국 측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과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도 방류만큼은 조심스러운 데 대해 트레거 알본 이쇼다 주한 마셜 제도 대사는 “우리는 핵 실험을 직접 경험하고 여전히 그 피해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가장 싫어하는 적이라고 해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29일 JTBC 취재진은 이쇼다 대사를 만났습니다.

지난달 29일 JTBC는 트레거 알본 이쇼다 주한 마셜 제도 공화국 대사를 만났다. [JTBC]

지난달 29일 JTBC는 트레거 알본 이쇼다 주한 마셜 제도 공화국 대사를 만났다. [JTBC]


◇"남 일 아니다"…마셜이 겪은 '방사능 피해'


마셜 제도는 과거 핵 실험을 직접 겪은 국가입니다. 미국은 일본이 점령했던 마셜 제도를 지난 1944년 탈환한 이후,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비키니 섬과 에네웨탁 섬에서 수중·표면·공기 중 핵실험을 67차례 진행했습니다. 이후 사람이 사는 것을 허가했지만 심각한 방사능 피해가 보고돼 현재는 무인도가 됐습니다. 1970년대 후반 미군은 에네웨탁 섬의 핵폭발 분화구에 플루토늄 등 방사성 폐기물을 버리고 콘크리트로 메웠습니다.

이 곳은 기후 위기가 진행되면서 국제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메웠던 콘크리트 뚜껑에 균열이 생기고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쇼다 대사는 "현재까지도 마셜 제도는 인구당 암 발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임산부들이 기형아를 낳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국제 사회에서 방사능 피해의 위험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건 마셜 제도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14개 태평양 섬나라들이 만든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은 IAEA 조사단에 태평양 대표로 마셜 제도의 과학 전문 패널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후쿠시마 시찰 "못 본 곳 있다면 투명한 게 아냐"


이쇼다 대사에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마셜 제도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이쇼다 대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뿐 아니라 한국과 대만 같은 주변국들이 현지에 보낸 시찰단이 의혹을 떨칠 때까지 일본 측이 충분히 협조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이 다핵종제거설비(ALPS)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얻겠다면서도 “한국 시찰단이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설득 절차가) 투명하다고 볼 수 없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지난달 26일까지 5박 6일간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한 우리 시찰단은 "핵심 주요 설비를 집중 점검했다"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자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오염수 시료를 추가로 채취하지 못하는 등 일본이 내준 제한된 자료에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과학적 검증은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는 “투명성이 99, 98퍼센트여도 모자라다”며 “안전을 100% 확신할 수 없으면 방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변국들이 안전하다고 100% 믿을 수 있도록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후에야 발전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육지였던 곳이 바다 속으로 잠겼다. 핵 폐기물을 묻은 시멘트 건조물도 다시 핵 물질 유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이상동씨 제공]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육지였던 곳이 바다 속으로 잠겼다. 핵 폐기물을 묻은 시멘트 건조물도 다시 핵 물질 유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이상동씨 제공]

◇일본, 처리수 안전하다는데…“안전하면 왜 버리나"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왜 (바다에) 버립니까? 농업용수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이쇼다 대사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일본이 오염수를 안전하게 잘 '처리'했다면 바다로 내보내는 것 외에 다른 방식을 고민하는 편이 더 합당하다는 얘기입니다. 방류한다고 하더라도 주변국의 허락을 꼭 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다에 기대 살아온 마셜 제도의 대표로서 그는 "바다는 한 사람, 한 국가의 것이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암과 기형아 출산으로 괴로운 현실을 다른 나라 사람들은 겪지 않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미 핵 실험 피해를 겪은 마셜 제도 사람들은 오염수 문제에 대해 “도덕적 의무감을 갖고 있다”며 일본이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는 호소를 남겼습니다.



=마셜 제도 공화국은

마셜 제도는 총 1156개의 섬으로 구성된 태평양 섬나라다. 유엔, 미국·일본·대만 등에 이어 2015년 한국에 8번째 대사관을 열 정도로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후 변화 등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와 협력하고자 하며, 정부가 유치에 공을 들이는 2030 부산 엑스포에도 가장 먼저 지지 서한을 보낸 바 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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