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국인 학원 강사의 국내 활동 요건 완화를 추진합니다.
학원법상 외국인의 경우 국내 학원에서 활동하려면 대학교 졸업장이 꼭 있어야 했습니다. 외국인 중 재학생은 국내 학원강사로 합법적 활동이 불가합니다.
국무조정실은 31일 교육부에 외국인 원어민 강사의 학력 요건을 온라인 강의에 한해 내국인 강사와 같도록 완화할 것을 권고했다. 〈자료=국무조정실〉
국무총리실 규제심판부는 오늘 외국인 강사 요건도 내국인 강사와 똑같은 '대학교 3학년 이상 혹은 전문대 졸업생'으로 완화할 것을 교육부에 권고했습니다.
JTBC는 해당 규제가 현 실정에 맞지 않음을 보도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스타트업 규제 개혁에 앞장섰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19787)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내 스타트업 업체들과 만나 규제 개혁에 힘을 쏟겠다 약속한 바 있다. 〈자료=JTBC〉
지금껏 학원법이 내국인과 외국인 강사의 자격 요건을 달리 한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 외국인 강사의 국내 범죄 행각이 사회 문제로 대두했습니다. 당시 일부 강사는 성, 마약 등 강력 범죄에 연루돼 충격을 줬습니다. 정부는 이런 외국인이 아이들을 상대하는 학원 강사로 활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여론을 수렴해 관련 규정을 강화했습니다. (1996년 학원법 개정)
이후 학원법은 수차례 개정을 거쳤습니다. 국내서 강사로 활동하는 외국인은 과거 범죄기록부터 건강검진서(마약 검사 포함) 등을 제출해야 합니다. 이것은 합당한 규제입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외국인 강사의 학력 요건도 강화됐습니다. 대학 졸업장 정도는 있어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작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20년 넘게 유지된 현행 학원법 시행령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교사 A씨는 전체 학생 수가 50명이 안 되는 전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입니다. A씨는 JTBC와 통화에서 "도저히 원어민 강사를 구할 수 없다"며 "대도시 학생은 원어민 강사를 학년별로 바꿔가며 만나지만 농촌 학생은 초중고 12년 교육과정에서 한 번도 못 만나기 쉽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 소도시 학교는 원어민 강사 채용이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예전보다 국내 활동 중인 외국인 강사 수는 많아졌지만 수도권과 광역시 등 대도시에만 집중된 탓입니다.
온라인 화상 영어회화 업체의 대학생 강사들. 현행 학원법은 이들이 국내에서 강사 활동을 못하게 하고 있다.〈자료=JTBC 뉴스룸〉
A씨는 코로나19 유행 시기 활성화된 화상 수업 활용을 시도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현지 원어민을 화상으로 학생들과 연결해 수업하려는 겁니다.
그런데 걸림돌이 생겼습니다. 해당 업체 강사들은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프린스턴 등 미국 명문대 대학생들이었고 국내 학원법상 이들은 강사로 활동 할 수 없던 겁니다. A씨와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원어민 화상 수업을 포기했습니다.
1996년에 생긴 외국인 강사 학력 규제가 2023년 농촌 지역 영어 원어민 수업을 막은 겁니다. 이런 외국인 강사의 대졸 학력 요건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는 없는 제도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아스펜 씨는 JTBC와 인터뷰에서 한국 학원법을 이해할 수 없다 말했다. 〈자료=JTBC〉
실제 온라인 사교육 시장에는 이런 규제를 우회하는 업체가 수두룩합니다. 국내 학원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 외국에 법인을 둔 업체들이 많은 것입니다. 실제 영업은 국내에서 하는 '사실상의 국내 학원'인데도 말입니다. 경기동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똑같이 한국 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데 국내에서 정당하게 세금을 내려는 업체는 법으로 막고 외국 정부에 세금 내는 업체는 사업을 가능하게 한 꼴"이라며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면 현행 학원법에 맞게 업체들이 한 발 물러서면 안될까요? 화상 영어회화 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왜 대학 졸업생을 강사로 채용하지 않냐'는 질문에 "명문대를 졸업한 이른바 최고의 강사는 졸업 후 미국 금융가나 법조계로 진출해 강사로 만날 수 없다"며 "이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1~2년 전에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게 한 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규제심판부는 △지방 학생 교육기회 확대 △관련 해외사례 △온라인 교육시장 환경변화 등 제반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시행령 개정 권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런 규제 완화는 온라인 강의로 한정했습니다. 규제심판부는 "온라인 강의는 학생과 직접 접촉이 없고 강의 모니터링도 가능해 학생 보호가 용이하지만 대면 강의는 강사가 학생에게 미치는 직·간접 영향이 커 규제 완화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