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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집시법 14년째 위헌 방치, 이번에도 '장외' 선전전만...집시법 30건은 한 차례도 논의 안 돼

입력 2023-05-25 11:33 수정 2023-05-25 11:40

단독처리ㆍ직회부-거부권 반복,
'공론화의 장' 기능 상실한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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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처리ㆍ직회부-거부권 반복,
'공론화의 장' 기능 상실한 국회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3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3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명백한 위헌적 발상...한가하게 집시법 개정을 논할 때인가”(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평온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행복추구권 헌법에 보장...불법 집회로 고통받는 국민들이 안 보이나”(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정부와 여당이 심야 옥외 집회 제한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위헌'과 '위헌' 주장이 맞붙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면 2009년 헌법재판소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주문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제10조 본문의 옥외집회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10.6.30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그러니까 입법자의 의무를 방기한 지가, 이미 헌재의 결정 후 14년째. 적어도 이재명 대표가 언급한 '한가하게'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민주노총 집회를 계기로, 혹은 지지율 탄력을 받기 위한 정부·여당의 의도가 있었을지라도. 그리고 '사전허가제'로 해석될 내용들이 포함돼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입법 불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국회 안으로 가져와 논의를 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당정이 추진키로 한 법안은 자정부터 아침 6시까지 집회 금지를 골자로 합니다. 2020년 6월, 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윤재옥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기초로 합니다. 당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해가 진 후부터 24시까지 시위에 적용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한 취지를 받아들인 것”으로 일단 판단했습니다. 헌재는 “24시까지의 시위는 이미 보편화된 야간의 일상적 생활 범주”라고 봤고, 이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봤습니다. 전문위원은 다만 개정안에 '야간에 조건부 옥외집회가 가능한 조항'을 없앤 것을 두고 “집회 성격상 부득이한 경우라도 야간 옥외집회가 원천적으로 불가하고, 예외적 허용 근거가 없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핵심은 '오전 6시'에 대한 부분이든, '야간 옥외집회의 위축'에 대한 부분이든 “입법 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법안이 발의된 지 한 달 뒤에는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 등 10명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합니다. 다만 제한 시간이 다릅니다. '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집회ㆍ시위를 제한하자고 했습니다. 민주당 법안이 내용상으론 제한 시간이 더 넓습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도 지난해 6월 '소음이나 진동, 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집회·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들 법안 모두,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된 논의는 없었습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발의된 집시법은 모두 30건. 어느 법 하나,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된 논의를 거친 기록이 없습니다. 물론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양곡관리법, 간호법, 의료법, 노란봉투법, 방송법…. 그동안 쟁점이 큰 민주당 추진 법안은 단독 처리나 본회의로 직회부 됐습니다. 본회의에서 처리된 이후에도 대통령이 초유의 거부권을 행사했고, 또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여당 추진 법안은 거대 야당(현재 민주당 167명, 국민의힘 114명)의 숫자에 밀려 상임위에서조차 제대로 된 논의를 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집시법 역시, 현재 민주당의 반발 수위에 비춰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크지는 않습니다. '위헌' 대 '위헌' 주장은 장외 선전전과 선동으로 비화됩니다. 사실상 '공론의 장'으로서의 국회의 기능은 상실된 지 오래. 내년 4월 총선에 임박해서는 더욱 정치 쟁점화된 현안만 가지고 다툴 것이 뻔합니다. 국회 무용론이 나올 만합니다.

모처럼 '집회ㆍ시위의 자유(표현의 자유)', '국민의 행복추구권(주거ㆍ사생활의 평온)'이라는 기본권과 기본권이 맞붙는 위헌 논쟁을, 국회라는 '공론의 장'에서 품위 있게 논의하기를 기대하기는 무리일까요. 의원들 스스로, '국회'라는 시스템, 국민의 대표, 입법자가 갖는 무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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