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밀착카메라] 망가지고 물 새도 '문화유산' 보존?…"이러다 다 떠나"

입력 2023-05-24 20:36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오늘(24일) 밀착카메라는 지붕이 망가져서 물이 새도 쉽게 집을 고칠 수 없는 한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서 수리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건데요. 응급처치로 지붕 위에 폐타이어를 올린 모습에 외국인 관광객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습니다.

권민재 기자입니다.

[기자]

한국 최대 집성촌으로 알려진 경주의 양동마을입니다.

600년 된 고택들이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런데 위를 올려다보면 조금 다릅니다.

지붕 곳곳이 헌옷을 기운 듯 천막과 비닐로 덮여 있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새 낡은 지붕에 응급조치를 해둔 겁니다.

[정선숙/관광객 : 저렇게 왜 포장을 덮어놨어요?]

[모모/일본인 관광객 : 다른 방법으로 방수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비닐로 저렇게 해놓는 건 보기에도 좀…]

방 안을 살펴보니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고, 지붕 안쪽은 내려 앉았습니다.

그런데도 양동마을의 300명 가까운 주민들은 지붕을 마음대로 고칠 수 없습니다.

마을 전체가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선 집을 수리하려면 문화재청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옛모습을 지키기 위해 기와집은 기와지붕으로, 초가집은 초가지붕으로만 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가집은 매년 지붕을 새로 엮어야 하는 데다 여름이면 온갖 벌레가 들끓어서 수시로 살충제를 뿌려야 합니다.

[윤점선/양동마을 주민 : 이래가지고. 저기도 보소. 늙은 사람이 저걸 어떻게 해마다 덮노.]

[이석진/양동마을 주민 : 5년 전에 살충제를 한번 안 쳐봤더니 노린재하고 이 벌레들이 벽면이 그냥 안 보일 정도로 까맣게 나와서…]

1960년대 새마을 운동 때 지붕을 보수한 일부 기와집도 서류상 초가집으로 돼 있단 점도 문제입니다.

이 집은 기와집인데 자세히 보면 전통 양식인 골기와가 아닌 평평한 평기와입니다.

전통 양식이 아니기 때문에 수리를 하게 되면 문화재청 지침에 따라 초가 지붕으로 바꿔야 합니다.

[김갑순/양동마을 주민 : 내가 기와로 하려고 했는데 기와로는 안 된다고 해요. 뭐 민속 마을엔 초가집만 있어야한다고.]

유네스코는 사람들이 수백년 동안 이 마을에 살아온 점을 높게 평가했지만, 최근엔 마을을 떠나는 주민도 늘고 있습니다.

300년 된 초가집입니다.

문은 사람 하나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작고요.

이쪽은 화장실이라고 하는데 흙이 다 내려앉아서 쇠파이프로 고정시켜 뒀습니다.

수리가 힘들어지면서 집주인은 얼마 전부터 아파트로 나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동학/양동마을 주민 : 전부 다 나가요. 선생님은 '이런데 살아라'하면 살겠는교.]

문화재청은 "직접 생활하면서 마을을 보존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수년 뒤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이 될까 두렵습니다.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때 높은 점수를 받았던 건 지금도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가지붕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남아 있는 이들과의 공존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밀착카메라 권민재입니다.

(작가 : 강은혜 / VJ : 김대현 / 영상그래픽 : 김영진 / 인턴기자 : 정의서)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