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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하게 살아낸 삶…나는 '자이니치'입니다

입력 2023-05-22 21:58 수정 2023-05-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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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2세입니다."

"재일교포. 재일동포. 3세."

"자이니치 4세이고요."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43만명.

관동대지진과 학살,
전쟁과 원폭

[최명란/자이니치 1세 : (조선인들은) 고물상 아니면 식당 그런 것밖에 안 돼.]

일상이 된 차별
여러 세대를 거쳐 이어진 차별

[후카자와우시오/자이니치 2세 : (일본은) 태평양 전쟁과 그 이후 역사는 그다지 자세히 가르치지 않습니다.]

꿋꿋하게 살아낸 삶

[김초월/자이니치 3세 : 열심히 살면 됩니다. 열심히 삽시다.]

나는 자이니치입니다

[앵커]

자이니치, 한자어로 '재일' 일본에 있다는 일본말입니다. 일본에는 재일 동포들이 주로 모여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온갖 차별과 혐오를 견디며 꿋꿋하게 버텨왔고, 결국 혐오 발언 처벌이라는 조례를 만들어 공존의 길을 만든 곳입니다.

이예원 기자가 그곳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예원 기자]

조용하고 평화로운 한 주택가에 나왔습니다.

이곳은 일본의 사쿠라모토라는 마을입니다.

예전부터 많은 재일동포가 모여 살았던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인데, 지금까지 '일본 속 한국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디 가세요?} 예배당! 예배당!]

[{몇 살이에요?]} 5살! 4살!]

[사이토 하루 : 안녕하세요! 엄마가 한국 (TV) 볼 때 있어요.]

한국말로 대화도 합니다.

[이혜자/마을주민 : 돈소쿠 사다가 만들어서 냉동에 넣어놨어. {돈소쿠가 뭐예요?} 족발.]

[언니도 이뻐졌네. {간다 간다 나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미용실.

1943년 일본에서 태어난 미용사는 부모님 고향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야나기 기쿠코 : 엄마는 경상북도 안동, 아버지는 경상남도.]

벽에 걸어둔 미용 면허증에 써 있는 국적은 '조선'.

30년이 지나 가업을 잇게된 딸의 면허증 속 국적은 '한국'이 됐습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이들의 기억 속엔 차별과 혐오를 버텨낸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김성웅/영화감독·자이니치 2세 : 정말 예외 없이 고생한 1세들이 살아온 증거를 마치 무덤에 이름을 새기듯 (기록합니다)]

한일관계가 악화하고, 마을은 자주 혐오의 대상이 됐습니다.

혐한 세력의 증오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김초월/식당운영·자이니치 3세 : 사베쓰는 조금 옛날에 있었어요. {사베쓰가 뭐예요?} 차별. 인권 차별. (하지만) 재일동포들이 다 강합니다.]

3년 전엔 전직 공무원이 익명으로 '조선인을 말살하자'는 엽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여기 '스톱 (그만)' 밑에 무슨 뜻이에요?} 차별적인 낙서는 인권침해입니다.]

마을은 힘으로 맞서지 않고, 제도를 바꿔 일본 사회와 공존을 택했습니다.

마을이 속한 가와사키시는 조례를 만들어 지난 2020년부터 혐오 발언을 하면 처벌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앵커]

일제강점기때부터 시작된 자이니치 1세대의 역사는 100여년에 이릅니다.

100년 가까이 일본에서 자이니치로 살면서, 그 긴 시간을 고국을 그리워한 사람들, 조해언 기자가 직접 만났습니다.

[조해언 기자]

경남 합천이 고향인 소녀 서유순은 14살이던 1940년 일본행 배를 탔습니다.

[서유순/98세 자이니치 1세 : 너무 흔들려서, 배에서는 잠을 못 잤고… 화투를 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 뒷마당 감나무가 기억의 전부였습니다.

해방 후 돌아간 고향.

기억 속 감나무는 한국전쟁 속에 이미 불타 없어진 뒤였습니다.

[서유순/98세 자이니치 1세 : 전쟁 중에, 딸이 네 살이라 뛰어 갈 수도 없었고, 둘이서 숨으면서 도망갔어요.]

어린 딸과 함께 살기 위해 다시 일본행을 택했습니다.

[서유순/98세 자이니치 1세 : (그때는) 한국에서 살 수 있을지 불안했습니다. 일본에서 차별도 당했지만, 그때마다 좋은 얼굴, 좋은 말로 대하면서 맞추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84년이 지나 이제 아흔 여덟살 노인이 됐습니다.

[서유순/98세 자이니치 1세 : {한국음식 중에는 어떤 거 제일 좋아하세요?} 잡채. {한국이 그리울 때는 없으셨어요?} 있었습니다. 제 나라고, 제 고향이니까. {그럴 땐 어떻게 하셨어요?}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그냥 울었습니다. 외로워서…]

열일곱의 소녀는 올해 아흔여섯 할머니가 됐습니다.

[최명란/96세 자이니치 1세 : 서울에서 왔나, 부산에서 왔나… {서울에서 왔습니다.}]

깊은 주름이 지난 세월을 말해 줍니다.

[최명란/96세 자이니치 1세 : 그때는 우리 사람들이 일본 사람하고 달라서 아무것도 못 해. 고물상 아니면 식당 그런 것밖에 안 돼.]

많은 기억이 흐려졌고, 조국을 떠나던 때의 기억만 남았습니다.

[최명란/96세 자이니치 1세 : 밀선…비행기도 안다니고 연락선도 없고 해방되고 금방이다 보니까 여자 혼자는 안 태워줘. 들키면 데리고 가버리는데 몰래 내려야 되지.]

(화면제공 :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김성웅 감독)
(공동취재 : 김현예|도쿄 특파원 / 영상취재 : 신성훈·이경 / 영상디자인 : 조승우·강아람·신하림 / 영상그래픽 : 김영진·김지혜·이송의·장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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