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지도부가 다투고 싸워도 민족 동질성은 변하지 않습니다"임종진 사진작가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월간지 말과 한겨레 사진기자로 근무하며 6차례 북한에 들어가 촬영을 했습니다. 이 가운데 5차례는 단독 촬영이었습니다.
남측 기자가 북측에서 촬영할 때는 대부분 제한된 장소에서 한정된 모습만을 담게 됩니다. 북측에서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임 작가는 자유롭게 북한 주민들 촬영했던 극소수 기자들 중 하나입니다.
그는 촬영하면서 주민들과 편하게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임 작가의 사진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남북 교류가 처음 시작될 때 북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촬영한 기자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남측 언론이 북에서 촬영한 사진이 부정적으로 보도되는 것을 보고 통제를 시작했습니다.
임 작가가 북에 단독 방문하고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었던 배경엔 북에 우호적인 매체의 기자인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월간지 말은 1989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에 대해 보도했고, 1991년 노동신문과 평양방송은 말의 보도 내용을 다루며 이인모 송환을 요구했습니다. 이인모는 1993년 송환됐고 2007년 사망해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습니다.
임 작가는 "당시 회사에서 북에 초대를 요청하자 북에서 흔쾌히 초청장을 보냈다"며 "이후에도 신뢰가 쌓여 북측에서 계속 초대 요청을 수용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북 당국이 사진 촬영을 제한하지 않도록 한 비결에 대해 "남측에선 북측이 불편하거나 억압적인 이미지로 많이 비추어지는데, 북에 오니 그렇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며 "내가 그런 모습을 촬영하려면 통제받거나 제어해서는 안 되는데 믿고 맡겨 달라고 부탁했더니 북의 안내원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김일성 주석 동상이나 김정일 위원장이 가려지거나 비뚤어지게 나오는 등의 사진은 안 된다고 말한 거로 기억했습니다.
김성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왼쪽)과 임종진 당시 월간지 '말' 기자(오른쪽)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당시 안내원 중 하나가 이후 남북 회담장에 자주 나왔던 김성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입니다. 임 작가는 김성혜에 대해 “누나, 동생으로 부르는 사이"라며, 당시 김성혜는 고위직은 아니었지만 당국이 촬영을 허가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는 당시 안내원들로부터 "임 기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아는 유일한 남측 사진기자"라는 말도 들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임 작가는 "북측이 남측에 보이는 이미지는 '강력한 인민군' '빈곤한 모습' '집단주의'로 압축된다"며 "하지만 북측 주민 정서는 남측과 차이가 없고 75년 분단에도 민족 동질성은 유지되는 걸 느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북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상황과 느꼈던 민족 동질성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임 작가로부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6차례 북한에 들어가 촬영한 사진들을 받아 하나 하나 설명을 들어 봤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1998년 11월 북에 처음 갔을 때 대동강 변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저는 많은 나라에서 촬영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오랫동안 편하게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 모습을 볼 때 '똑같네'라는 생각이 처음 스쳤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이 공원에 나온 사진입니다. 아이들이 연못의 수풀을 가리키고 있고 선생님이 웃고 있습니다. 제 조카들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봄에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입니다. 진달래꽃을 꺾어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클 때 느낌입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노래하는 아이인데 어른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아이가 어른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게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합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노랫소리가 들려서 다가갔는데,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하고 있었습니다. 운율이 우리랑 아주 비슷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남자아이 표정을 보세요. 매우 장난스럽죠? 남자아이가 고무줄을 끊는 장면입니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이 끊긴 걸 아직 모르는 상태입니다. 우리 남자들도 어렸을 때 짓궂은 장난 많이 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집단체조를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입니다. 전국에서 뽑힌 아이들이라고 하는데요. 관중들이 좋아하니까 학생들이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학창 시절에 그런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미디어에서 보이는 딱딱한 집단체조와 느낌이 다르죠? "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교 학생들입니다. 대동강 변에서 만났습니다. 아마 수업이 좀 일찍 끝나서 야외로 나온 것 같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까 반갑게 맞이해주고 다른 일정이 없어서 같이 어울렸습니다. 학생들은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르는 장기자랑을 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그날 같은 장소에서 만난 다른 학생입니다. 수줍게 웃기만 했는데 김일성 종합대학교 경제학부 장류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맑고 순박한 느낌이었습니다. 나중에 기자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다른 대학교 학생들인데요. 배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도 안치환의 '광야'를 불렀는데 학생들이 매우 좋아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북한의 연인입니다. 숲속에서 속삭이는 모습이고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연인의 모습입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신혼부부들입니다. 아래는 웨딩 촬영하는 커플인데요. 앞에 비디오 촬영기를 든 남성이 보이시죠? 제가 '서울에서 왔다'고 말을 건넸는데요. 비디오 기사한테 정해진 시간이 있었던지 신랑의 마음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신랑이 저를 쳐다보는 신부에게 오른팔을 들면서 '얼른 가자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놀이터에서 아빠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장면입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 술병 보이시죠? 공원에서 낮술하고 카드 놀이하는 아저씨들입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정방산에 단풍놀이하러 나온 시민들입니다. 아래 분은 산을 관리하는 분이신데, 처음 보는 저한테 야한 농담을 잘하시고 유쾌하게 잘 웃으셨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추석 명절 앞두고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담배도 피우고 꽃도 들고, 먹을 것도 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사진=임종진 사진작가 촬영(※사진의 저작권은 임종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추석 성묘하는 모습입니다. 연로한 할머니가 비석에 적힌 고인의 이름을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래 사진은 음식과 꽃을 싸 가지고, 온 가족이 성묘 가는 그림입니다. 할머니가 걸음이 불편하니까 아들들이 양쪽에서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 설명을 하는 동안 임 작가는 “남과 북이 다르지 않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그에게 최근 남북의 핵 대결 국면 속에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지난달 시민단체 바른언론시민행동 발표에 따르면, 20·30세대 응답자의 61%가 '통일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고, 88%는 '북한에 비호감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대해 임 작가는 "시민들이 북에 대해 알고 싶어도 알 수 있는 창구가 없고, 만나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며 "사진 촬영하며 '우리와 다르지 않다'라는 일체감, '우리에겐 이런 게 있구나'라는 감흥을 느꼈는데, 그건 직접 접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감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많은 시민이 그런 감정을 교류할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며 "민족 동질성은 변하지 않았다"고 기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