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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의 중국은, 왜] #105. 카스피해까지...시진핑의 西進

입력 2023-05-21 08:57 수정 2023-05-22 23:20

시진핑+스탄 5개국 회의
G7 회의 노렸을까

G7 회의 맞춰 개최
러시아 자극 최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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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스탄 5개국 회의
G7 회의 노렸을까

G7 회의 맞춰 개최
러시아 자극 최소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오후 3시30분쯤 일본 히로시마공항에 착륙한 프랑스 정부 전용기 편에서 내리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G7 회의에서 우크라 지원을 위한 외교전을 폈다. 〈사진= A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오후 3시30분쯤 일본 히로시마공항에 착륙한 프랑스 정부 전용기 편에서 내리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G7 회의에서 우크라 지원을 위한 외교전을 폈다. 〈사진= AP, 연합뉴스〉

중국이 중앙아시아에 개입하는 제도적 도구는 상하이협력기구(SCO)입니다.

중앙아시아 한복판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정상이 스탄 국가들과 만나 안보와 경제 아젠다를 놓고 지역 협력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의 맹주는 러시아입니다. 적어도 영국과 그레이트게임을 벌였던 18~19세기부터 소련 시절을 거쳐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이 지역은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인정됐습니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가 정신 못 차리고 헤맬 때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커진 중국은 이 지역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은 에너지 수송로로서 중국의 국가 전략과 이익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차근차근 야심을 키워왔습니다.

19일 중국 시안에서 열린 중국+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정상들이 입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앙아시아의 맹주인 러시아를 의식해 정상들이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19일 중국 시안에서 열린 중국+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정상들이 입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앙아시아의 맹주인 러시아를 의식해 정상들이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이를 모를 리 없는 러시아였지만 중국이 천연가스의 큰 바이어라는 점에서, 그리고 2010년대 들어 흑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력 분쟁의 당사자로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는 와중에 중국 같은 대체 교역 상대가 없었다면 아찔한 지경을 오간다는 점에서 속으로 냉가슴을 앓을 뿐 발끈하기도 녹록지 않습니다.

급기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초래된 외교적 우위를 활용해 중국이 보다 공격적으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투사를 시작했습니다. 18~19일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중국ㆍ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렸는데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18일 산시성 시안에서 중국-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정상들과 환영 만찬을 시작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신화,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18일 산시성 시안에서 중국-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정상들과 환영 만찬을 시작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신화, 연합뉴스〉

예전 같으면 러시아를 끼지 않고 단독으로 이 지역 정상들을 안방으로 불러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밀착을 하고 싶어도 러시아의 견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죠. 따라서 비록 안방으로 5개국 정상들을 불러들였지만 정치 중심인 베이징이 아닌 시안으로 장소를 선정한 것은 러시아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됩니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고도 시안에서 열리는 모양새만 봐도 이번 행사가 세를 과시하는 정치적 성격이 아닌 경제에 방점을 둔 이벤트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또 '5+1 정상회담'을 정례화시키기로 못을 박고 상설 사무국을 중국에 두기로 했습니다. 2년마다 중앙아시아 국가와 중국에서 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2025년에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이런 모양새의 정상회의가 예정됐습니다. 러시아로의 유무형 압박에 대한 '맷집'이 비교우위에 있는 카자흐스탄이 2회 개최국으로 낙점됐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발목 잡힌 러시아로선 이래저래 속이 바짝 탈 만한 일입니다.

이렇게 정상회의 메커니즘까지 갖추게 되면 그간 양자 회의에서 교착됐던 경제 프로젝트들도 숨통이 트입니다. 이 정상회의가 굴러가는 원동력은 중국이라는 '물주'입니다. 중국이 화끈하게 돈을 풀 때 가능한 회의체입니다. 일단 이번엔 4.9조원의 유무상 경제 원조가 발표됐습니다.

중국은 국경간 운송 물량을 늘리고 카스피해 국제 운송 회랑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중국-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을 각각 연결하는 도로망 업그레이드와 항구 현대화 등 인프라 지원 의사도 피력했습니다.

이번엔 도로망 정비로 물꼬를 틀었습니다만, 앞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의 초점은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을 연결하는 CKU 철도 건설의 향방이 될 겁니다.

아래 지도를 함께 보실까요.

CKU 철도 노선 개념도. 〈그래픽= 더서드폴 캡처〉

CKU 철도 노선 개념도. 〈그래픽= 더서드폴 캡처〉

중국이 CKU철도를 통해 우즈베키스탄까지 직통 물류망을 갖추게 되면 지중해까지 연결되는 핵심 거점에 올라서게 됩니다. 우즈베키스탄을 징검다리로 카스피해와 이란ㆍ튀르키예를 거쳐 지중해까지 시야에 들어옵니다. 중국이 안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CKU철도는 이 구상이 제기된 지난 20년여간 중국이 가장 큰 이해를 갖고 있고 경로를 제공하는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중국의 서진이 달갑지 않았기에 그간 미적지근한 반응이었습니다.

키르기스탄과 중국 대표들이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키르기스탄과 중국 대표들이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고립주의를 폈던 우즈베키스탄의 외교 노선이 최근 중국까지 포함하는 다중 전략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CKU 철도 구상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키르기스스탄입니다. 건설 명목으로 중국인들이 대거 유입되고 일대일로의 그림자인 '부채의 덫'에 대한 우려, 주권 침해의 통로가 될 것이란 두려움 등으로 인해 부정 인식이 컸습니다.


이 때문에 CKU 철도는 중국~카자흐스탄~러시아 노선보다 최대 9일 가까이 단축되는 경제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제자리를 맴돌았던 겁니다.

변화의 불씨는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이었습니다. 러시아가 자초한 전쟁으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게 되자 유라시아 물류망이 요동쳤습니다.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로 연결되는 물류망의 경유지로서 혜택을 누렸는데 찬바람이 분 겁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를 우회하는 대체 노선의 경제성이 새롭게 평가 받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과 우즈벡이 철도 건설 비용 배분에 대해 활발한 논의에 들어갔고 비용 분담에 대한 예비적 합의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CKU 철도의 미래는 키르기스스탄의 우려를 어떻게 불식 또는 완화시키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5+1 정상회의에서 앞으로 지켜봐야 할 플레이어는 우즈베키스탄입니다.

고대로부터 동서양 인적ㆍ물적 교류의 역세권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실까요.

〈그래픽= 두산백과 캡처〉

〈그래픽= 두산백과 캡처〉

중앙아시아의 '스탄 5개국'은 천산산맥에서 발원해 아랄해로 유입되는 시르다리야강을 경계로 친러 성향의 국가(카자흐스탄ㆍ키르기스스탄ㆍ타지키스탄)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가(우즈베키스탄ㆍ투르크메니스탄)로 나뉩니다.


우즈벡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확연히 분리되는 시르다리야강 너머에 위치합니다. 종족ㆍ언어 특성상 튀르키예ㆍ이란과 더 친밀감을 표하곤 합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제한되는 지리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우즈베키스탄은 인접한 이란, 튀르키예 뿐 아니라 중국까지 끌어들여 러시아에 대한 세력 균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인 러시아 중시 외교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카자흐스탄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을 업고 '스탄 5개국'에 대한 영향력 제고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픽=중앙일보〉

〈그래픽=중앙일보〉

러시아의 앞마당 격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된 이상 다음 차례는 뒷마당으로 통하는 이 지역이 될 지 모른다는 안보 위험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이란과 튀르키예 뿐 아니라 중국까지 끌어들이는 중앙아시아의 합종연횡 움직임이 매우 역동적인 이유일 겁니다.


미국ㆍ러시아와 함께 유라시아 지정학 게임의 주요 플레이어인 중국의 이런 행보는 구조적으로 예측이 되는 행위입니다. 지금이야 미국의 집중 견제로 중ㆍ러간에 상호 협력 공간이 생겼지만 미국 변수가 약해지면 핵심 이익 선점을 놓고 전략 경쟁을 해야 하는 숙명적 관계입니다. 중국의 행보에서 미국만 볼 게 아니라 지정학적 대체재 관계인 러시아 변수를 염두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G7이 열리는 시점에 맞춰 열린 이번 5+1 정상회의는 표면상 G7 견제의 모양새를 띄고 있지만, 중앙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 포석을 감추기 위한 연막 효과를 노렸다는 풀이도 가능합니다.

중국의 중앙아시아 확장 전략은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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