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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관광명소 '경복궁' 주변 난립한 외래어 간판들 논란

입력 2023-05-09 13:53 수정 2023-05-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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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일대 외국어 간판들.서울 종로구 일대 외국어 간판들.

노을 진 하늘을 뒤로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의 풍광을 즐기는 이곳. 경복궁입니다.

지난해 개방한 청와대부터 경복궁 앞까지 외국인 관광객들이 담소를 나누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전통의 미를 물씬 즐기는 여행객들 사이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보입니다. 바로 '외국어 간판'입니다.

한복 대여점과 사진관 등이 영어로만 표기된 곳부터, 중국어나 일본어로만 표기된 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 외국어 간판, 현행법상 위법이지만 실질적 제재는 어려워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그래픽=장영준 기자〉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그래픽=장영준 기자〉

옥외광고물 관련 규제 법률입니다. 그런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먼저 4층 이하 건물에 설치되는 크기 5㎡ 이하 간판은 허가나 신고 대상이 아닙니다. 5층 이상 건물에 크기 5㎡를 넘기는 간판을 외국어로만 표기할 경우입니다.

그런데 관련 법을 어긴다고 하더라도 처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우선 지자체에서 현실적으로 신고 배제 대상인 간판까지 일일이 조사하기 어렵고, 한글 병기를 강제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신고 대상은 한글 병기 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신고 대상이 아닌 간판은 확인하고 규제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법령상 한글 병기 기준이 모호하다"며 "외래어로 상표를 등록한 소상공인에게 한글 병기 이행을 강제하는 등의 조치는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 시민들 "한국의 아름다움 더 드러냈으면"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 설치된 외국어 간판들. 〈사진=장영준 기자〉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 설치된 외국어 간판들. 〈사진=장영준 기자〉

외국어 간판에 대한 일부 시민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관광지이니만큼 외국어 간판보단 한글 간판을 내세워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30대 직장인 지모 씨는 "경복궁은 우리나라 전통적 의미가 많이 함축된 곳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인근에 영어만 가득한 간판이 많이 있더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이미지를 많이 느낄 수 있게 한글 간판으로 거리를 꾸민다면, 장기적으로 한국을 기억하고 다시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60대 관광객 김모 씨는 "일본어 간판은 읽을 수가 없어 불편하다"며 "청와대와 경복궁이 있는 곳인 만큼 한글 간판을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 한글 간판 내걸자 관광객 늘어나기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외국인들이 관광을 즐기고 있다. 〈사진=장영준 기자〉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외국인들이 관광을 즐기고 있다. 〈사진=장영준 기자〉

이곳 상인들에게도 고충은 있습니다. 다수의 고객이 외국인인 만큼, 외국어 간판을 내걸어야 손님을 쉽게 모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한글과 한글 간판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긍정적인 지표도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이 대표적입니다. 한글 간판 사업을 시작하면서 인사동을 찾는 관광객 비율이 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한글 간판 사업 전인 2005년 인사동은 서울 전체 관광객의 26.4%를 유치했는데, 2019년 35.9%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의 대표 관광 명소가 되는 데 한글 간판이 기여한 셈입니다.

실제 종로구 인사동에서 한글 간판 앞에서 관광을 즐기는 외국인들 역시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지난해 '한국어 서예 교실'(Korean Calligraphy Class)을 열었는데요. 당시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참여해 연일 만석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여행객들에게 한국다운 독특한 멋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낯선 한글 등이 외국인들에겐 영어 간판보다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 서울 종로구청 "한글 간판 설치 장려"...전문가 "한국 느끼러 온 관광객 생각해야"

 
서울 종로구,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가 한국어 간판을 내걸고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사진=장영준 기자〉서울 종로구,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가 한국어 간판을 내걸고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사진=장영준 기자〉

종로구청은 올해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후화된 간판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사업인데, 한국어를 중심으로 합니다.

하지만 해당 사업으로 청와대와 경복궁 인근 상점의 간판이 눈에 띄는 속도로 교체되기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 예산이 지난해 4억원에서 올해 2억원으로 줄었기 때문입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옥외광고발전기금을 사업에 사용했는데 올해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자연스레 예산이 줄어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한 군데에서 신청이 들어왔다"고 알렸습니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장은 이와 관련 "독일의 경우 영어 간판이 없다고 한다. 여행객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지만, 국가 민족의 자긍심을 엿볼 수 있어 오히려 인상 깊게 남는 경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한국을 보고 느끼려고 온 관광객들이 서구와 다름없는 광경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의심스럽다"며 "한국적인 것이 부족하면 여행 온 보람을 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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