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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보기] "청년 열 명 중 네 명, 아이 안 갖기로"...이유는?

입력 2023-05-04 17:44 수정 2023-05-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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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으면 모두가 괴로워질 것 같아요. 육아를 해야 하는 저희 부부는 물론이고, 아이에게도 이 고통스러운 삶을 겪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적으로 저희가 돈이 많아서 아이를 아주 좋은 환경에서 크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직장인 김모 씨·35세)

지난해 결혼한 김 씨는 남편과 상의 끝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경제적인 요인과 김 씨와 남편의 커리어, 양육 환경 등을 모두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청년 10명 중 4명 정도(36.7%)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만 19~34세 청년 1만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입니다. 결혼한 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거나, 고민 중인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사진=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 “경제적 불안정·양육비 부담”…경제적 이유가 가장 커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최모 씨(33·여)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출산은 고민 중입니다.

“지금 소득은 둘이 벌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정도예요. 그런데 여기서 아이를 낳으면 상황이 달라지겠죠. 지금 사는 집도 둘이 살기엔 괜찮은데 아이를 기르기엔 작아서 집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요.”

대기업 과장인 정모 씨(40·남)는 이미 딩크(Double Income No Kids) 족으로 살기로 한 경우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다 보니 그냥 둘이 잘 살기로 했었죠. 주변을 보면 아이를 낳은 뒤 부부가 싸우고 육아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워낙 많이 보기도 했고요.”

두 사람 모두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고민하거나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겁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기혼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2020년),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불안정'(37.4%)이었습니다. '아이 양육비 및 교육비 부담'(25.3%)이 뒤를 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양육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한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자녀를 18세까지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로 전 세계에서 국내총생산 대비로 가장 높다는 베이징 '위와인구연구소'의 연구도 있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 “아이 돌봐 줄 사람이 없어요”…맞벌이 부부의 고민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모 씨(32·여)는 올해 연말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예비신랑과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예비신랑이 공기업을 다니고 있어서 지방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아이를 낳게 되면 혼자 독박육아를 견뎌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나는 거죠. 양가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줄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지난해 결혼한 김 모 씨(36·남)도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출산을 고민 중입니다.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그런데 낳고 나면 돌봐 줄 사람이 없어요. 부모님은 다 지방에 계시고, 여전히 일을 하고 계셔서 손주를 돌봐 줄 여건이 안 되고요. 그렇다고 어린 아이를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자니 그것도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지금은 엄두를 못 내고 있죠.”

맞벌이를 하는 부부에게는 양육도 큰 산입니다. 안정적으로 아이를 돌봐 줄 환경이 갖춰져야 출산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 등 아이를 낳은 뒤 돌볼 수 있는 제도는 있지만 마음껏 쓰기는 힘들 때가 많습니다.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직장에서 자유롭게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응답자는 39.6%,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응답은 45.2%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 “제 삶을 어디까지 희생해야 할지 두려워요”

앞서 출산을 고민 중이라던 최 씨는 아이를 낳을 경우 혹여나 직장 생활에 타격이 있을까 우려했습니다.

“지금 한창 회사를 다니면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아이를 낳게 되면 당장 그 삶에 제약이 생길 것 같아요. 막연한 두려움이긴 해도 제 삶을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더 고민되더라고요.”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박모 씨(30·여)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아이를 키우게 되면 커리어가 단절될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제 생활이 없어지는 거니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여성으로서는 출산을 하게 되면 몸도 많이 약해지고 건강 문제도 생기잖아요. 희생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니 더 합리적으로 이게 맞는지 고민하게 되는 거죠.”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만0~6세 아이가 있는 전국 2500가구를 조사해보니, 응답 가구의 50.3%가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자녀 출산과 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장(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육아 휴직 등의 제도가 있지만 모두가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책 수혜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제적인 문제도 양육비 현금 지원과 같은 근시안적 대책 대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양육비가 왜 많이 드는지 원인을 파악해 해소하고, 주택시장 수급 안정을 통해 청년들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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