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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모처럼 보인 희망…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에너지전환' (하)

입력 2023-05-01 08:00 수정 2023-05-01 08:39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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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1)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 서울은 사람이 많은 만큼, 에너지의 사용도 많습니다. 2020년 기준, 서울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4만 5,788GWh에 달합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경기(12만 4,689GWh), 충남(5만 423GWh)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했죠. 하지만 서울에서 사용되는 전기 중 서울에서 직접 만든 전기는 11.2%에 불과합니다. 88.8%의 전기는 다른 지역에서 끌어다 쓰는 겁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인 '정의로운 전환'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러한 현실은 '정의롭지 못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현재까지 우리의 주력 발전원이 모두 오염물질을 만들어내다 보니 쓰는 곳 따로, 만드는 곳 따로 있는 지금 우리의 상황은 불평등을 부르게 되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이러한 '정의로운 전환'에 있어서도 하나의 해결책으로 꼽힙니다.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나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 각종 대기오염물질을 만들어내지 않기에 발전시설 주변 주민들의 피해도 작을뿐더러, 소규모로 각지에 흩어져 있을 수 있는 만큼, 전기를 '쓰는 곳에서 직접 만드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모처럼 보인 희망…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에너지전환' (하)
광역시도별 차이를 살펴보는 김에, 서울시의 자치구별 전력 사용량도 살펴봤습니다. 24개 자치구 가운데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곳과 적은 곳의 차이는 매우 컸습니다. 1위 강남구의 연간 사용량은 462만 5,790MWh로, 25위 도봉구의 5배를 넘습니다. 자치구의 수는 한강 이남이 더 적지만, 전력 사용량은 더 많았죠. 국가 단위의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 만들어진 만큼, 이젠 지자체 단위의 계획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광역시도별로, 기초단체별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계획과 실천이 필요할 텐데,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이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의 국사봉중학교. 학교 옥상에 태양광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있다.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의 국사봉중학교. 학교 옥상에 태양광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한복판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이 만든 전력을 쓰는 곳'의 대명사인 서울에서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고자 지역사회 주민들이 직접 나선 겁니다. 바로, 동작구 상도동의 '성대골'입니다.


재학생 351명의 국사봉중학교는 성대골 에너지 자립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사봉중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지역주민은 함께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2018년 12월, 학교 옥상에 33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했습니다.

 
이미란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이 협동조합 설립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이미란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이 협동조합 설립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2015년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절전을 먼저 시작했어요.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좀 아낄 수 있을까. 여러 집이 모여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전기를 덜 쓰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국사봉중학교 학생들은 생태전환 수업을 꾸준히 듣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아이들도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게 됐습니다. 기후위기와 그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게 되다 보니,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보다, 우리가 직접 재생에너지와 같은 것을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직접 움직이게 됐죠.”
이미란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33kW 규모지만, 발전소를 짓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협동조합은 매점의 형태로 출범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발전소를 짓기 위한 자금도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매점만으로는 큰 수익을 얻기 어려웠던 만큼, 학부모와 교사,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일일 찾집도 열고, 주변으로부터 출자금도 받아 협동조합은 5,610만원이라는 귀한 씨드머니를 모았습니다. 남녀노소 십시일반 해 모은 이 귀한 출자금으로 국사봉중학교 옥상엔 지금의 태양광 발전설비가 들어서게 됐죠.

 
[박상욱의 기후 1.5] 모처럼 보인 희망…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에너지전환' (하)
취재진이 학교를 방문한 4월 14일 낮 기준, 이 발전설비의 누적 전력 판매금액은 4,705만원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 12월 이후 4년 5개월만의 일로, 올해 안에 5,610만원을 돌파해 무난히 손익분기점을 넘길 걸로 예상됩니다.

“저희는 처음에 초기 투자비용 회수까지 7~8년을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이 태양광 발전에 조건이 좋지 않다고들 하다보니, 하루 평균 발전시간을 3.2~3.3시간으로 보수적으로 계산해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그런데, 올해 4월까지 하루 평균 발전시간이 4.2시간이잖아요.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서울에서도 태양광 발전을 하기에 그렇게 나쁜 조건은 아닌 것이죠.”
최소옥 국사봉중학교 교사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조합원으로서 모두가 함께 모여 만든 청정에너지는 뜻깊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장기 고정가격 계약을 맺은 겁니다. 조합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사무실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이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과의 장기 고정가격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이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과의 장기 고정가격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전환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기업들도 RE100에 참여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해야겠지만, 이렇게 학교나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 우리 개개인의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확대도 뒤따라야 합니다.

이에 그동안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해온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과 장기 고정가격 계약을 맺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실천에 나섰습니다. 이를 통해 저희가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퍼져서, 기업도 변해야 하지만 지역사회나 학교, 개인들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해 다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

학교엔 여전히 〈국사봉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의 조합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있습니다. 학교의 에너지전환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은 소형 태양광 패널이 장착된 작은 건물을 직접 짓고, 전기를 만들어 미니 ESS(에너지저장시스템)에 저장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꽂으면 나오는' 것으로 여겨졌던 전기를 직접 생산하고, 저장해본 학생들에게 전기는 더는 '당연한 것'이 아닌 '귀중한 것'으로 남게 됐습니다.

 
국사봉중학교 1층엔 학생들이 만든 모형 집이 전시되어 있다. 풍력과 태양광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의 모습이 눈에 띈다.국사봉중학교 1층엔 학생들이 만든 모형 집이 전시되어 있다. 풍력과 태양광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의 모습이 눈에 띈다.
“초등학생 때에만 해도, 기후위기에 대해선 관심이 하나도 없었어요. 중학교에 들어오고서 1년에 6번은 족히 넘을 정도로 많은 기후환경 교육을 받게 됐고,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태양광 발전의 원리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고 나니 흥미가 더욱 커졌어요. 그래서 따로 영상도 찾아보고, 더 공부하게 됐어요.


이렇게 직접 전기를 만들게 되니까, 주변의 친환경 전기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동네를 지나다 보면, 옥상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는데, 저기서 만든 전기는 어떻게 사용될까,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생각도 하고, 주변에 전기차가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호감이 생기더라고요.”
김시우 학생(국사봉중학교 3학년)

 
국사봉중학교 학생들이 교내 태양광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국사봉중학교 학생들이 교내 태양광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직접 발전에 참여하고부터는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확실히 변화가 생겼던 거 같아요. 이동 수업을 하면서 불을 일일이 다 끄고 간다거나, 에어컨이나 히터를 쓸 때도 더 조심스러워졌어요.


이번에 저희가 만드는 전기를 그린피스가 쓰게 됐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저희 학교를 시작으로, 앞으로 다른 친구들이나 사회에 모범이 돼서, 기업들이 에너지와 관련해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저부터 앞장서고 싶습니다.”
황영은 학생(국사봉중학교 3학년)

“직접 전기를 만들어내고 나니 전기 사용에 확실히 더 경각심을 갖고 바라보는 태도가 생기더라고요. 전기와 관련한 지식도 늘어나다 보니까,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해줄 수 있고, 저부터 전기 불 끄는 것부터 실천하는, 그런 생활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협동조합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환경에 더 관심을 갖고, 환경 보호라는 큰 목표를 갖고 발전을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관련 활동도 해보고 싶어요.”
송가연 학생(국사봉중학교 2학년)

 
[박상욱의 기후 1.5] 모처럼 보인 희망…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에너지전환' (하)
국사봉중학교가 위치한 성대골엔 이 외에도 나름의 규모를 자랑하는 태양광 발전 설비가 더 있습니다. 당장, 학교 옥상엔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함께 33kW 규모의 발전 설비를 설치하기 전부터 50k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한 학교의 옥상에만 83kW 규모의 발전기가 가동 중인 것이죠. 이 발전 설비는 지난 2010년, 학교 자체 소비 전력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설치했습니다. 학교 강당을 지역사회에 야간 시간 개방하면서도 연간 전력 사용량의 25% 가량을 이 발전설비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모처럼 보인 희망…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에너지전환' (하)
성대골마을 곳곳에도 도합 45.4k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가 설치되어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이 함께 만든 〈성대골 에너지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설치된 것들입니다. 이렇게 3개의 축으로 이뤄진 성대골의 태양광 발전량은 연간 15만kWh에 달합니다. 42가구의 연간 전력 사용량에 맞먹는 수준의 전기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모처럼 보인 희망…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에너지전환' (하)
아직 성대골엔 태양광 발전 설비가 없는 옥상이 더 많습니다. 성대골이 말 그대로 '에너지 자립마을'로 거듭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이유입니다. 김소영 성대골 에너지 협동조합 대표는 “조합에서 파악하고 있는 옥상 부지만도 300여곳이 있다”며 “앞으로 건물들에 태양광 발전 설비의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대표는 주민들의 참여 못지않게 동작구청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국가 단위의 2030년, 2050년까지의 계획을 내놓은 지 어느덧 4주가 지났습니다. 여기엔 어떤 발전원을 언제, 얼마나 늘려나갈지, 세부적인 숫자들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실현되는 것은 전국 17곳의 광역자치단체가, 전국 226곳의 기초자치단체가, 그 기초단체의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중앙 정부 차원의 에너지전환 노력도 중요하지만, '진짜' 에너지전환의 시발점은 마을, 지역사회에 있는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모처럼 보인 희망…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에너지전환' (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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