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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보기] "오래된 종이인형이 10만원?"…'고전문구' 인기 왜?

입력 2023-04-19 17:33 수정 2023-04-1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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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보기]는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JTBC 모바일제작부 기자들의 취재 결과를 알기 쉽게 풀어 드립니다.


“색종이, 공책, 필통 등 최근 한 달 동안 10개 이상 산 것 같아요.”(문구수집가 전 모 씨)

전 모 씨(31·인천 서구 당하동)는 올해 들어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바로 '고전문구'를 사 모으는 일입니다.

대체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생산된 문구·완구 제품이 '고전문구'로 불립니다.

전 씨처럼 고전문구를 모으는 사람들이 몇 년 사이 크게 늘었습니다. 경기도 고양의 한 문구점주는 “재고가 쌓여 처치 곤란이던 20년 된 스티커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판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고전문구를 다시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처=김영주 기자〉〈출처=김영주 기자〉

■ “어린 시절 생각나서 사게 돼”

전 씨는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고전문구를 모으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릴 때 '마시마로', '햄토리', '딸기' 캐릭터를 좋아했어요. 그때는 갖고 싶은 것을 맘대로 살 수 없잖아요. 근데 지금은 문구류 정도는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으니까, 좋아했던 캐릭터 제품들을 사면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취재진이 이야기를 나눈 다른 수집가들도 비슷한 이유로 고전문구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문구점 가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초등학교 때 다녔던 문구점에 가서 오래된 문구류를 사 옵니다. 그럴 땐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고, 걱정 없이 행복해지는 기분입니다.” - 정 모 씨(33·인천 남동구 만수동)

“지난해부터 고전문구에 관심이 생겼어요. 어릴 때 봤던 잡지, 만화책, 문구류 등을 모으고 있죠. 그때 좋아했던 캐릭터는 지금 봐도 귀엽고 예쁘더라고요. 고전문구를 보면 어릴 적 좋은 추억들이 생각나요.” - 김 모 씨(31·경남 김해시 부원동)

■ 일부 제품은 100배 가격에 거래

고전문구는 중고 거래가 활발한 편입니다. 단종된 경우가 많아 판매처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고전문구'를 검색해보니 1만4000개 이상의 매물이 나왔습니다(19일 기준). 다이어리, 스티커, 각종 필기구 등 그 품목도 다양했습니다.

일부 인기 제품은 기존 판매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과거 1000원에 팔렸던 종이 인형이 10만원에, 4000원에 팔렸던 다이어리가 15만원에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화면출처=번개장터〉〈화면출처=번개장터〉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특성, 즉 희소성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봤습니다.

이 교수는 “한정 판매나 단종 제품은 희소성이 높습니다. 거기에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 과거에 대한 그리움 등이 더해지면 소장 가치는 더욱 올라가죠. 자연스럽게 가격도 높아지는 겁니다. 고가의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 고전문구 찾으러 다른 지역 원정 가기도

수집가들은 오래된 문구점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구하기도 합니다. 중고 거래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운이 좋으면 소위 '레어템(희귀한 물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취재진도 경기도 고양의 한 문구점을 찾았습니다. 고전문구가 많은 곳으로 수집가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익숙히 봤던 제품들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웬만한 인기 제품은 이미 다 팔린 겁니다.

해당 문구점주는 “손님이 많을 때는 하루에 100여 명이 왔어요. 부산이나 강원도에서 온 손님들도 있었죠. 인기 캐릭터 제품은 그때 거의 다 팔려서 이제 저도 보기 어려워요”라고 했습니다.

〈사진제공=전 모 씨〉〈사진제공=전 모 씨〉

그래서 최근에 문구점을 다니는 수집가들은 유물 발굴과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인천, 김포, 상주 등 여러 지역의 문구점을 찾았던 전 씨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기 제품이 거의 다 팔렸어도 1~2개씩 남아있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 건 보통 구석에 박혀있기 때문에 대충 훑어보면 안 보여요. 구석구석 찾아서 원하는 물건을 발견하면 정말 뿌듯하죠”

먼지 쌓인 옛 문구를 찾는 사람들, 이들은 왜 이런 취미를 계속할까. 이영애 교수는 팍팍한 현실을 현상의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차라리 그 돈 주고 최신 제품 사겠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고전문구를 사는 사람들은 단순히 소비재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구매하는 거죠. 지금 한두 푼을 아낀다고 해서 미래에 더 행복해질 거라는 희망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물건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자기를 되돌아보는 측면이 있습니다. 현재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소비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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