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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처벌? 솜방망이? 뭐가 맞나…중대재해법 1호 판결 분석

입력 2023-04-08 06:00 수정 2023-04-08 10:58

'원청 안전 의무' 법대로 인정
자백·처벌 불원·관행이 영향
"안전 방치, 그 자체로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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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안전 의무' 법대로 인정
자백·처벌 불원·관행이 영향
"안전 방치, 그 자체로 유죄"

과한 처벌? 솜방망이? 뭐가 맞나…중대재해법 1호 판결 분석
중대재해처벌법 '1호 유죄' 판결에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몇몇 신문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썼고, “하청노동자 숨지게 한 원청대표 유죄”라고 1면 제목을 내건 곳도 있습니다.

선 곳에 따라 풍경은 다르다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죠. 한 방송사는 “집행유예에 노사 모두 불만”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이유는 각자 다릅니다. 이번 판결 의미를 짚어봅니다.

=어떤 사건이었나=
지난해 5월, 40대 하청 노동자 1명이 숨졌습니다. 경기 고양시 병원 공사장에서 도르래로 철근을 끌어 올리다가, 그게 떨어지면서 반동으로 함께 추락했습니다. 철근 무게는 100kg에 가까웠습니다. 이 사람은 건물 5층 높이에서 안전난간도, 안전대도 없이 작업했습니다.

법원은 '원청업체'인 건설사 사장이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서 사고가 났다고 봤습니다.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 “처벌이 너무 세다”

주로 사장님들 얘기죠. 특히 '원청 책임'을 물은 게 과하다는 주장입니다.

한 신문은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를 인용해서 “실무자(현장소장·안전관리자)에서 대표자(CEO) 처벌로 책임이 현실화됐다”고 전했습니다.

“(노동자 사망에 따른)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그래서 일각에선 “사업 접을까 고민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논리입니다. ①사장님이 법대로 안전조치를 안 해서 ②직원이 일하다 죽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③그러니 사업을 하지 말아야겠다.

사실 2년 전 국회에서 이 법 통과(2021년 1월 8일)될 때부터 이미 원청 사장님 의무는 명확하게 규정돼 있었습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에는 제3자의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안전 및 보건 확보' 조치를 하여야 한다.

법은 이런데, 판사님이 좀 오버해서 과한 판단을 한 걸까요? 판결문에는 이 조항이 거의 '복붙' 수준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판결문 내용=
제3자에게 도급 등을 행한 경우 그 제3자의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특히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진 취지도 적혔습니다.

=판결문 내용=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하여, 최근 사업주 및 도급인에 대하여 보다 무거운 사회적·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 관하여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법이 제정됐다.

'리스크'는 불확실성에 노출된 상태를 말하는데요. 이번 판결은 '리스크가 현실화' 됐다기보다는, 2년 전 제정되고, 1년 2개월 동안 시행된 법이 그대로 적용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한 처벌? 솜방망이? 뭐가 맞나…중대재해법 1호 판결 분석

■ “솜방망이 처벌이다”

이번에는 노동계 얘깁니다. 집행유예는 '응분의 대가'로서 부족하다는 주장입니다.

“사람 죽어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걸 보여줬다”(한국노총)라거나 “형량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민주노총)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당초 검찰 구형은 '징역 2년'이었습니다.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하긴 했는데, 감옥살이는 하지 않게 했다고 비판한 거죠.
 
과한 처벌? 솜방망이? 뭐가 맞나…중대재해법 1호 판결 분석

그런데 살펴볼 점이 있습니다. 우선 관계자들이 처음부터 잘못했다고 자백하면서, 바로 선고가 잡혔습니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고인데, 갑자기 1호 선고 사건이 된 건 이렇게 재판이 빨리 끝나버린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재계에서 “중대재해법 자체가 문제가 있다, 잘못 만든 법이다” 주장해온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주장의 핵심은 사장님이 지켜야 하는 의무가 모호하다, 그런데 마구 처벌하면 어쩌느냐는 겁니다. '1호 기소' 사건인 에어컨 부품업체 두성산업 측은 이 법이 위헌이라 주장합니다.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아보게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당사자들이 자백한 사건인 데다, 피해자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고 법원은 설명했습니다. 근재보험에서 1억 8000만 원이 지급됐고, 원·하청업체에서 모두 1억 5000만 원을 위로금으로 줬다는 겁니다.

반성하고, 돈 줬다고 끝날 이야기는 당연히 아닙니다.

여기에 더해 법원은 “건설근로자 사이에선 안전난간을 임의로 철거하고 작업하는 관행도 있었다”며 “온전히 회사 책임으로 돌리는 건 다소 가혹하다”라고도 했습니다.

이번에 재판받은 업체는 직원 40명 있는 작은 건설사였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까지 법 적용 유예가 돼 있습니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50억 이상' 공사를 이번에 처음 맡은 곳이란 점도 고려됐을 거로 보입니다.


■ 정말 중요한 점은

처벌이 과하다, 약하다 논쟁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중대재해법이 없던 때, 불과 1년여 전 판결들과는 전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고(故) 김용균 1심 판결(2022년 2월 10일)=
-김병숙 전 서부발전 사장(원청): 무죄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사장(하청):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
-나머지 원·하청 관계자 12명 집행유예벌금형

5년 전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졌습니다.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사건인데, 정작 원청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됐죠. 지난 2월 나온 2심에서는 그나마 유죄 받은 사람들 형량이 더 줄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동안 법으로는 원청이 “현장을 몰랐다고 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었습니다. 중대재해법 전에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해 왔지만, 실형 선고는 1%도 되지 않았습니다.

=산안법 위반 1심 선고(2019~2021, 대법원 사법연감)=
-1,852건 중 벌금형 1,507건(81.4%)
-징역 등 집행유예 325건(17.5%)
-실형 14건(0.9%)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첫 판결, 다시 말씀드리자면 '원청'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원청 대표가 평소 현장의 위험을 알아보고, 사고 예방계획 세우는 것 그 자체를 '의무'로 규정해둬서 가능했습니다.

이제 몰랐다고 피할 수는 없게 된 겁니다. 방치하면, 그 자체로 유죄가 됩니다.

 
과한 처벌? 솜방망이? 뭐가 맞나…중대재해법 1호 판결 분석
지금까지 기소된 14건 중 11건이 이렇게 '원청' 책임을 묻는 사건들입니다. 지난주에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그룹 오너로는 처음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번 달 26일에는 2호 사건(한국제강) 선고가 나옵니다. 역시 숨진 사람은 하청노동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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