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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기후 대응 남은 시간, 10년뿐"…'조삼모사', 'NIMT'로 빛바랜 많은 이들의 노력 (중)

입력 2023-04-03 08:00 수정 2023-04-03 11:3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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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77)

최근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마무리한 6차 평가보고서와 그 직후 공개된 새 정부의 첫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및 전략에 대해 지난주에 이어 살펴봅니다. IPCC가 이번 보고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는 “1.5℃ 목표를 사수해야 한다”는 두루뭉술한 정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껏 지구의 평균기온이 얼마나 짧은 시간(150년 안팎)에 얼마나 많이(1.1℃가량) 올랐으며, 어떠한 요소들이 이러한 온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는지(인간의 온실가스 배출로 1.5℃가량 상승, 그 외 대기오염물질 배출로 0.4℃가량 하락, 자연적 요인, ±0℃), 그리고 앞으로 지구의 기온이 어떻게 달라질지(2020년까지의 각국 정책을 고려하면, 2100년 3.2℃가량 상승)… 과학에 근거한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 방향까지가 고르게 담겼습니다.

'미래에 몇 ℃가 오르나'를 계산할 수 있다는 뜻은 곧,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온 상승의 방정식을 찾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방정식에 기반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50% 줄이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1.5℃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답이 나온 것이죠.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 오를 때까지 남아있는 탄소량, 즉 '탄소 예산(Carbon Budget)'이 정해져 있는 겁니다.

이회성 IPCC 의장이 6차 평가보고서 언론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이회성 IPCC 의장이 6차 평가보고서 언론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번 6차 평가보고서의 준비 때부터 IPCC를 이끈 이회성 IPCC 의장은 지난달 27일 브리핑에서 “지금의 배출 속도대로라면, 10년 정도면 그 예산을 다 쓰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의장은 이 탄소 예산과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지난 2009년, 탄소 예산이라는 단어가 기후 과학자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이나 경제 분야에서 쓰이던 '예산'의 개념을 탄소에 차용한 것이죠. 탄소에 '예산'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기후 문제를 '일상의 문제'로 인식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됐습니다. 단어의 선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실감하게 됐죠.

지난 5차 보고서에 이 탄소 예산의 예상량이 들어갔는데, 당시 '이게 195개국의 만장일치 승인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총량을 특정하는 일, 이 예산 내에서 일종의 '총량 규제'와도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야 입증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걸 과연 정치권에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죠.

놀랍게도 당시 5차 보고서를 승인할 때, 이 내용이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조된 것이 있었습니다. '탄소 예산이라는 개념은 맞지만, 그 총량이 얼마냐에 대해선 불확실성이 크다'는 겁니다. 불확실성의 범위를 ±40% 정도까지 벌어져 있었는데, 사실상 정책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된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 6차 보고서의 준비가 시작됐고,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로 억제하기 위한 이산화탄소 총량이 얼마일지 여러 예측과 분석을 했습니다. 그 결과, 불확실성을 크게 낮춰 500Gt(5천억톤)이라는 숫자가 나왔습니다.
이회성 IPCC 의장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 의장의 말대로 얼마 없습니다. 당장, 2019년 수준으로 우리가 계속 온실가스를 뿜어낸다고 했을 때, 2020~2030년간의 배출량만으로도 이미 남아있는 탄소 예산을 모두 써버리고 맙니다. 1.5℃라는 인류 생존의 마지노선이 깨진다는 뜻입니다.

석탄화력발전소나 가스화력발전소 등 현존하는 화석연료 관련 인프라가 본래 예정된 수명까지 그대로 운영된다고 했을 때, 그 인프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총량만도 700Gt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건설이 진행 중인 강원도 삼척의 석탄화력발전소, 정부의 그린뉴딜 선언 이후에도 한국전력공사가 투자를 강행한 베트남·인도네시아의 석탄화력발전소처럼 '계획 중인 인프라'까지 더하면, 그 총량은 900Gt에 달합니다. '2℃의 벽'마저 넘어설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 대응 남은 시간, 10년뿐"…'조삼모사', 'NIMT'로 빛바랜 많은 이들의 노력 (중)
그런데, 2030년에 탄소 배출의 절반을 줄이고,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1850년 이래 우리가 뿜어낸 이산화탄소의 총량이 3,000Gt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시기에 상관없이, 그 양이 3,000Gt을 넘어설 때,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를 넘어서기 때문이죠.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이 줄면 온도도 줄어듭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거의 1대 1의 관계에 있죠.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넷 제로'는 결국,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총량을 변화시키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러면 기온 또한 더는 오르지 않을 테니까요.”
이회성 IPCC 의장

가뭄이 늘고, 산불에 취약해지며, 호우와 홍수가 빈번해지고,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폭염이 잦아지는 등, 우리는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좀처럼 기후변화 정책은,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인 온실가스 감축은,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인 에너지전환은 정치권과 정부 부처의 의사결정에서 '뒷전'이 되고 있습니다.

IPCC가 이번 보고서에 담은 〈온실가스 시나리오에 따른 세대별 미래 기후 경험 전망〉을 보면, '왜 그런가'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 대응 남은 시간, 10년뿐"…'조삼모사', 'NIMT'로 빛바랜 많은 이들의 노력 (중)
1950년생에게 있어 '1.5℃ 더워진 미래'는 '남의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온난화의 속도가 인류 역사를 넘어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르다고 해도, 생애동안 이를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1980년생의 경우, 최고 2.4℃ 가량 상승한 미래를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 195개국 과학자와 정부 관계자가 만장일치로 인정한 내용입니다. 주요 정책 결정자들의 입장에서 '급한 일'이 되기 어려운 것이죠.

또한, 온실가스 감축은 '임기'와 '정년'이 정해진 이들에겐 '애써 외면하고픈 일'이 되기에 십상입니다. 정책으로 인한 편익은 오랜 기간, 대대손손 이어진다곤 하지만, 정작 정책 이행 당시엔 즉각적인 반발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제한, 효율 개선의 의무화, 이를 위한 각종 규제의 강화, 에너지 가격의 정상화, 화석연료 퇴출… 어느 것 하나 갈등을 피하기 쉬운 것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원도 삼척에선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지금 이 순간에도 강원도 삼척에선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당장, 앞서 언급했던 강원도 삼척의 석탄화력발전소가 그렇습니다. 세계 최초로 녹색성장을 국가의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 당시, 이 발전소의 건설이 결정됐습니다. 이후 창조경제를 거쳐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선언이 나왔지만, 그 어느 정부도 이 계획을 틀지 못했습니다.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 마찬가지였고요. 최소한, 발전원을 석탄에서 LNG로 전환하는 것조차 이뤄지지 않았죠.

말 그대로 'Not In My Term', 내 임기 동안의 일이 아니라는 안이함과 의도적인 외면에 따른 결과입니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중단하려면, '책임자'를 찾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어쨌거나 국가와 정부를 믿고 시작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죠. 정부가 먼저 건설을 중단하거나 계획을 변경할 때에도, 사업자가 먼저 건설을 중단하거나 계획을 변경할 때에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임기 동안, 혹은 정년 동안 눈과 귀를 닫는다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지나갈 수 있으니까요.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이라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이 유효한 지금 이 순간에도,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이 묵묵히 진행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 대응 남은 시간, 10년뿐"…'조삼모사', 'NIMT'로 빛바랜 많은 이들의 노력 (중)
얼마나 배출하면 몇 도가 오르는지, 우리는 그 방정식을 찾았기에 답은 명확합니다. 그런데, NIMT(내 임기만 아니면 돼)에 사로잡혀 행동을 주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답 역시 명확합니다. 공멸입니다.

“저희가 이번 6차 평가보고서를 수행하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2℃ 안정화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과 그에 따른 편익을 비교해봤어요. 편익이 비용을 넘어선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죠. 온난화를 2℃ 이내로 억제하는 과정에서 GDP에 미치는 영향은 많이 봐야 2%가량입니다. 1.5℃로 억제하는 경우엔 2.9% 정도고요. 그러니까, 2.9%의 비용을 부담하면, 충분히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거죠.

이처럼 글로벌 베네핏이 글로벌 코스트를 넘어선다는 것이 분명한데, 왜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행동에 옮기지 않느냐. 개인이나 국가가 그 편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전 세계적인 편익이 개인의 행동과 국가의 변화에 따른 편익과 서로 연계가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겁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각자가 움직이는 인센티브 시스템 속에서, 각자의 편익이 어떻게 연결되고, 그 결과가 기후 안정화에 연결되게 하느냐가 키 포인트일 겁니다. 현재까진 논의가 여기까지 진행되지 못했는데, 이러한 편익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아무리 기후변화총회를 해봤자 의미 있는 결과는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젠 그 '본질'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거죠.”
이회성 IPCC 의장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재난이 우리에게 끼친 피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평가하는 것 역시, 이 의장이 강조한 '본질'을 찾는 방법 중 하나일 겁니다.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선 중부지방의 집중호우, 남부지방의 극심한 가뭄, 전국적인 폭염, 7년 연속 '9월 태풍' 등으로 많은 사회경제적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지난달 30일, 기상청은 정부 합동으로 이러한 내용을 정리한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2022년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이젠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 상황이 다가왔음을 깨닫게 된 한 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 대응 남은 시간, 10년뿐"…'조삼모사', 'NIMT'로 빛바랜 많은 이들의 노력 (중)
8월,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19명의 인명피해(사망 17명, 실종 2명)가 발생했고, 재산피해 규모도 3,154억원에 달했습니다. 409.7ha의 농경지가 유실되거나 매몰됐고, 가축 33,910마리가 폐사했습니다. 반면, 남부지방에선 12월까지 가뭄이 이어지면서 1974년 이후 가장 긴 기상가뭄일수(227.3일)가 기록됐습니다. 6~7월에만 전남에서 1,442ha에 달하는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죠.

6~7월 사이, 폭염도 심각했습니다. 기온이 일찍 오르면서, 흔치 않은 '6월 열대야'가 곳곳에 찾아왔고, 7월 상순 경상 내륙을 중심으로 일 최고기온이 35~38℃에 달했습니다. 그 결과, 1,56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9명이 숨졌습니다. 이른 더위에 건물의 전력수요가 급증해 역대 최대(90,932GWh)를 기록했고요.

태풍은 7년 연속, 가을에도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거센 비바람에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11명이 숨지고, 2,439억원 규모의 재산 피해도 있었습니다.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35ha 면적에서 산사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2022년 우리나라 이상기후 발생 분포도 (자료: 기상청)2022년 우리나라 이상기후 발생 분포도 (자료: 기상청)
우리 모두가 영향을 받지만, 그 누구도 먼저 문제 해결을 위해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 기후변화. 그 이유로, 온실가스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기중에 불과 며칠 동안만 존재하는 미세먼지는 '하늘이 뿌옇게 변하는' 덕분에, 국가 차원에서도, 지자체 차원에서도, 시민 개개인의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곤 합니다. 이 밖의 다양한 환경 이슈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문제가 '눈에 보일 때', 더 많이 관심 갖고, 노력하곤 하죠. 하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한 번 뿜어져 나오면 200년을 머무는 '족쇄'임에도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모두가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멀게만 느끼곤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후변화처럼, 온실가스 감축처럼,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환경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탄소중립·녹색성장 전략은 이러한 '시급한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요. 그 안에서 또 다른 NIMT는 없었을까요. 다음 주 연재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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