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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숨진 나이지리아 4남매…코리안 드림은 없었다

입력 2023-03-2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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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7일) 새벽, 경기도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불이 나 어린이 네 명이 숨졌습니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4남매였는데, 안방에서 모여 자다가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헌옷과 물건을 주워 본국에 팔며 가족들이 함께 그려온 코리안 드림도 타버렸습니다.

먼저, 이승환 기자입니다.

[이승환 기자]

사이렌이 울리고 골목 사이로 불길이 치솟습니다.

3층 높이 다세대주택 2층에서 불이 시작된 겁니다.

순식간에 불길이 위층으로 번지고 아래로 불똥이 떨어집니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도 바로 다가가기 힘들 만큼 거셉니다.

[목격자 : 불이 그냥 확 천장으로 올라가더라고요. 뭐가 '팍' 쏟아지면서 '쾅' 소리가 나면서.]

이 집 안에 나이지리아 국적 어린이 4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두 숨졌습니다.

위층에 살던 외국인 등 11명이 다쳤습니다.

거센 불길은 바로 옆 건물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보시다시피 창문이 모두 깨져버렸고, 안에 있는 물건도 불에 타버렸습니다.

숨진 아이들은 2층 집 안방에서 모여 자다 숨졌습니다.

11살과 4살 여자아이, 7살과 6살 남자아이.

네 남매였습니다.

부모는 2살 막내 딸을 안고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불길이 너무 빨리 번지면서 다른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거로 보입니다.

[이금자/이웃 주민 : 애들 전혀 안 보이고 불길만 보이더라고. 그래서 다 나온 줄 알았어, 사람이.]

불이 난 건물은 1994년 사용 승인됐습니다.

외국인이 주로 사는 오래 되고 낡은 건물엔 화재 경보기나 소방 시설은 없었습니다.

[여운철/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 : (발화 지점은) 출입문과 인접한 거실 바닥 정도로 지금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기 콘센트에서 불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산시는 피해 가족에게 임시거주시설과 구호 물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도울 수가 없습니다.

[앵커]

어렵게 지내온 나이지리아 아이들은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놓이곤 했습니다. 2년 전에도 집에 불이 났었는데, 그땐 큰 화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아이는 이번엔 불길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해선 기자입니다.

[이해선 기자]

엄마 품에 안긴 5살 아이는 자주 웃었습니다.

5남매 중 둘째였던 갓슨.

살던 집에 불이 나 목과 등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아픔에도 웃는 아이였습니다.

[다문화이주민센터 관계자 : 아이가 흰색 옷 입은 간호사만 보면요 자지러지게 울어요. 무섭잖아요. 근데 (울다가도) 웃는 거는 천진난만하게 웃더라고요.]

형편이 어려운 가족은 병원비 댈 여유도 없었습니다.

조금만 필요한 치료가 늦어져도 생사가 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지역 사회에 사연이 알려지면서 치료비를 모았고 도움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들 학교 관계자 : 저희가 이제 보증금을 대준 거예요. 월세를 이제 계속 대줬죠.]

나이지리아인 부모는 10년 전, 무역 비자로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주로 못 쓰는 전자 기기와 헌 옷을 주워 나이지리아로 보내 팔았습니다.

[아이들 학교 관계자 : 종류 가리지 않고 무조건 실어서 보내더라고요. 텔레비전 다 고장나고 이런 것까지도…]

사는 게 힘들지만 아이들은 밝았습니다.

[웨나린 나마닷/이웃 주민 : 오남매가 우리 집을 슝 하고 달려가기도 하고. 꿈인 건가…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아이를 잃은 부모는 말을 잃었습니다.

[박천응/안산 다문화교회 목사 : (막내를 살리려고 엄마가) 아이를 먼저 내놓고 자기도 뛰어내린 거죠. 그 안에 있던 네 명의 아이는…]

숨진 네 아이 빈소는 가족들 치료가 끝난 뒤 내일 오후 차릴 예정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왔던 한국 땅에서, 가족은 삶을 찾지 못했습니다.

(VJ : 박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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