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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입력 2023-03-20 08:00 수정 2023-03-20 08:0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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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75)

지난여름, 수도권과 충청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진 엄청난 폭우로 많은 이들의 머릿속엔 지난 1년은 '비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던 시간으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려야 할 비는 오지 않고, 이따금 내리는 비는 하루 5mm 안팎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1년새(2022년 3월 17일~2023년 3월 16일), 전남 완도에 하루 10mm 넘는 비가 온 날은 20일에 불과합니다. 대구 21일, 목포 22일, 해남 23일, 광주 26일 등 남부지방에선 좀처럼 비구경이 쉽지 않았던 겁니다.

지난주 연재에서 기온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이번엔 강수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 현상과 가뭄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그저 '비가 적은 정도'라고 부르기엔 상황은 너무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2022년 기준, 지역별 가뭄일수를 살펴보면, 중부와 남부의 차이는 140여일에 달했습니다. 81.7일이었던 중부지방의 가뭄일수와 달리, 남부지방은 무려 227.3일에 달했죠.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남지역 일대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책임지는 곳들은 메말라갔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전남 순천의 상사호는 '호'라는 표현이 무색한 상태였습니다. '전남의 젖줄'로 순천과 광양, 여수 등지에 하루 생활용수 30.1만톤, 공업용수 23.9만톤을 책임져야 하는 곳은 개울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모습이었죠. 부표는 맨바닥을 뒹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어찌나 지속된 것인지, 물이 있어야 할 인공호수의 바닥엔 온갖 풀들이 자라났고, 그 식물들조차 부족한 수분에 제빛을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상사호 하류에 위치한 주암조절지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18일 기준, 주암조절지댐의 저수율은 28.6%로 계속 감소중입니다. 주암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18일 주암댐의 저수율은 17.9%에 그칩니다. 이대로라면 5월중 광주와 전남 일대에 제한급수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공급이 끊기면서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공장의 조업 역시 차질을 빚게 되는 겁니다.

인근의 상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예전이었다면, 물과 산,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 사람들로 붐벼야 했지만, 물도 말라붙고, 관광객의 발길도 줄었습니다. 상인은 “장마가 항상 남부지방에서 시작해서 중부지방으로 올라갔었는데, 작년엔 남부지방에서 시작을 안 하고, 바로 중부지방으로 올라가 버렸다”며 “이렇게 수위가 낮아지는 건 처음 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지역보다 상황이 더 나쁜 곳도 있습니다. 바로, 남쪽의 도서 지역입니다. 광주와 전남 내륙엔 상수도 공급망이라도 구축된 광주와 전남 내륙과 달리, 도서 지역은 그저 하늘만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륙엔 물을 미리 저장해두는 시설도 많고, 그 규모도 크다 보니 가뭄에도 오랜 기간 버텨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섬들은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곳인데, 정작 마실 물, 쓸 물이 없는 거죠.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전남 완도군의 여러 섬에선 제한급수가 '일상'이 됐습니다. 뭍에서 생수통을 싣고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주민들은 하나 둘 카트나 리어카를 끌고 나옵니다. 그리고 한가득 생수를 들고 돌아가죠. 곳에 따라, 길게는 1년째 이러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섬도 있습니다. 김장할 때에도 물이 부족해 바닷물로 소금물을 대체하는 사례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올해가 예외적으로 상황이 심각한 것'이라며 그저 그 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까요. 이번 가뭄이 '역대급'임은 맞습니다만,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보면 이러한 가뭄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한 100년 정도의 기록을 봤을 때, 우리나라의 강수량은 해마다 변동이 크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조금씩 증가해오고 있습니다. 반면 강수일수는 마찬가지로 과거 100년 정도의 기간을 봤을 때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에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즉, 미래의 강수량과 강수일수의 변화에서도 온난화에 따라 강수량의 증가폭은 점점 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에 대비해서 강수일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그런 경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이 미래 강수전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이 미래 강수전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해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은 늘어나는데, 그 비가 내리는 날은 줄어든다는 겁니다. 폭우와 가뭄이 동시에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강수량이 증가하지만 강수일수가 감소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만큼 호우의 가능성이 더 높다'라는 측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요, 두 번째로는 강수일수가 부족한 시기가 주로 봄철이라든가 겨울철에 몰리게 되면, 결국 그 계절 동안 가뭄으로 나타날 그런 징후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변 팀장이 강조한 겨울-봄 사이 강수변화는 실제 통계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1973년부터 50년 가까운 시간, 기온은 상승 경향을 뚜렷이 보였습니다. 반면, 강수량은 줄어들고 있었죠.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이 기간 강수량은 13.3mm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강수일수 또한 역대 최저였죠. 결국, 비뿐만 아니라 구름조차 구경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일조시간은 605.5시간으로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우리의 봄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기온은 계속 오르는데, 강수량은 줄어든 것이죠. 이러한 기상 요소의 변화는 우리에게 꽤나 큰 영향을 줍니다. 그 영향은 우리의 식탁을 통해서 느끼게 될 텐데요, 바로 식량안보의 위기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나주평야를 찾았습니다. 나주와 호남평야는 우리나라 쌀 생산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곳이죠. 지금은 보리 이모작이 한창인 이곳엔 이미 기후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얼핏 푸르게만 보였던 보리는 자세히 살펴보니 노랗게 타버린 상태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이맘때면 뿌리가 많이 뻗어야 하는데, 제대로 발육을 못 했어요…. 날이 가무니까 습기가 없고, 습기가 좀 있어야 생육이 되는데, 보리가 누렇게 죽잖아요. 앞으로 며칠 더 가문다고 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일부만 그런 게 아니라 전부 다 그런 상태예요.”

두렁에 있던 농민 윤영동 씨는 열악한 상황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보리는 끝이 누렇게 타버리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키도 제대로 자라지 못 했죠.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지금쯤 무릎 높이 가까이 자랐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앞으로 다가올 모내기도 걱정입니다. '나주평야의 젖줄', 나주호의 상황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물에 잠겨있어야 할 곳이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날 만큼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바닥 곳곳엔 민물조개 껍데기가 나뒹굴고 있었죠. 조개 껍데기는 이곳이 물에 잠겨있던 곳이라는 것을 알리는 유일한 힌트였습니다.

기후변화가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최근 수십년간, 부족함을 걱정해본 적 없는 우리의 주식인 '쌀'마저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기온은 치솟고, 쓸 물은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다 모내기를 하고 나면, 벼는 점차 자라나며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그 꽃이 피고 지며 쌀알이 만들어지죠. 모든 꽃이 다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듯, 쌀도 마찬가집니다. 쌀알이 여무는 비율을 등숙률이라고 하는데, 현재 92.2% 수준인 등숙률은 2050년대 51%로 뚝 떨어질 전망입니다. 벼꽃 중 절반만 쌀알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쌀알이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깨진 곳 없이 완전한 쌀알을 '정상립'이라고 하는데, 현재 73.1%인 이 정상립의 비중은 2050년대 46.5%로 떨어질 전망입니다. 쌀의 양도 줄고, 품질도 크게 떨어지는 겁니다.

“사실 현재까지의 생산량에 있어서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기후변화보다 재배 면적 감소의 영향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이 더욱 심각해지는 2050년대에 이르게 되면,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급속히 이뤄지기 때문에 식량안보의 위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후변화로 변동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변동성이 커지면서 저희가 기상 상태나 기후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게 되면, 쌀 수급 등을 조절하는 정책을 세우기 어려워지죠. 이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

 
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가 기후변화로 인한 쌀 생산성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가 기후변화로 인한 쌀 생산성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남는 쌀'로 문제를 겪은 이유입니다. 식습관의 변화, 인구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앞으로의 감소세 역시 지속될 걸로 예상됩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쌀 소비 총량이 2031년까지 해마다 0.9%씩 떨어질 걸로 내다봤죠.


'이제 좀 수급 균형이 맞겠네' 반가워해야 할 일일까요? 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는 “기후변화로 변동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변동성이 커지면서 기상 상태나 기후의 예측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사는 “결국 쌀 수급 등을 조절하는 정책을 세우기 어려워진다”며 “이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안보의 영향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반응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사라진다기보다, 그 종류가 바뀐다는 것 아니냐!”, “귤 대신 망고, 사과 대신 바나나를 먹으면 되겠네!” 기후변화로 각종 열대과일이 국내에서 재배된다는 뉴스는 어느새 '경각심'을 키우기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뉴스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정도로 끝날 일일까요.

“과수는 재배 위치가 이동될 수 있지만, 쌀은 전국적으로 다 재배되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과수보다 찾기 어렵습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지나치게 오르고, 특히나 남쪽인 전남에서 제대로 재배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상황은 심각해지죠.

또한, 쌀이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재배되긴 하지만, 전남의 경우 재배 면적이 제일 넓습니다. 전남에서의 생산량 감소가 국내 쌀 생산량 감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것이죠. 결국 식량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단위면적당 국내 쌀 생산량이 어떻게 달라질지 살펴보면, 그 영향은 더욱 분명히 보입니다. 벼 경작지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각종 기술의 도움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늘려왔죠. 21세기 들어 우리가 남는 쌀을 걱정했지 부족한 쌀을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농토는 줄고, 기후도 나빠짐에 따라 '남는 쌀 걱정'이 '배부른 걱정'으로 불릴 날은 그리 머지않았습니다.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RCP 8.5 시나리오에 따르면, 2040년대 우리나라의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은 1980년대 수준으로, 60년대엔 70년대의 수준으로 뚝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경작지는 해마다 줄어드는데, 단위면적당 생산량마저 떨어지면, 국내 쌀 생산량 자체는 이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이번 주 기후 1.5는 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으로 보리를 바라보던 농부의 말로 마칩니다.

“이런 농사짓기도 앞으론 무진장 힘들 것 같아요. 쌀, 보리 생산량도, 식량 자급률도 그렇고 앞으로 미래가 걱정입니다. 앞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기후변화가 그렇게 심각하게 온다면 앞으로 문제가 있겠죠. 그나마 우리는 어느 정도 다 살았으니까. 난 80살 다 됐는데, 우리 밑에 동생들, 후손들이 조금 편히 살아야 할 텐데, 마음 놓고… 우리는 살 만큼 살았으니까.”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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