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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보기] "여성은 더 많이 내라?" 생활경제 곳곳에 녹아든 핑크택스

입력 2023-03-10 12:03 수정 2023-03-13 17:11

의류 등에서 소비자 고개 갸우뚱하게 만드는 '핑크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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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등에서 소비자 고개 갸우뚱하게 만드는 '핑크택스'

※ [깊이보기]는 중요 이슈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JTBC 모바일제작부 기자들의 취재 결과를 알기 쉽게 풀어 드리겠습니다.

10일 JTBC 취재진이 찾아 간 서울의 한 미용실은 여성 커트 가격을 3만원, 남성 커트 가격을 2만 5000원으로 매겨 받고 있었습니다. 성별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정해진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사이트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여성 커트 비용은 평균 2만 1308원으로 남성 1만 1692원의 약 1.82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이른바 여성용에 더 높은 가격 매기는 '핑크택스' 현상 공공연히


이처럼 소비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가격을 올려 받는 현상을 '핑크택스(Pink Tax)'라고 합니다.

여성들에 세금처럼 더해졌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뜻입니다.


최근 들어 공정을 중시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성별에 따른 가격 차별은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하며 이런 현상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 남자 옷엔 있는데 여자 옷엔 없다?


이런 핑크택스와 비슷한 현상은 의류 업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2020년 A 의류 브랜드는 남성용 슬랙스엔 있는 여러 기능을 여성용 슬랙스에선 뺐는데도, 여성용 슬랙스를 남성용보다 더 비싸게 판매해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옷 마감 처리나 뒷주머니, 허리 부분 히든밴드, 상의를 넣었을 때 이를 잡아 주는 실리콘 프린트 등이 남성용엔 있었지만 여성용엔 없었습니다.

당시 A 브랜드는 남성용은 기능성에, 여성용은 실루엣 등 패션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결국 성별 차이를 없앤 상품을 새로 내놨습니다.

10일 JTBC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 SPA 브랜드 매장에서는 뒷주머니가 있는 남성 슬랙스(왼쪽)와 달리 뒷주머니가 없는 여성 슬랙스(오른쪽)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장연제 기자〉10일 JTBC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 SPA 브랜드 매장에서는 뒷주머니가 있는 남성 슬랙스(왼쪽)와 달리 뒷주머니가 없는 여성 슬랙스(오른쪽)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장연제 기자〉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

JTBC 취재진은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의 한 중저가 의류 브랜드 매장을 찾아 남성과 여성 슬랙스를 비교해봤습니다.

스타일과 가격이 동일한 슬랙스의 경우 남성 제품은 깊이가 깊은 뒷주머니가 있었지만 여성 제품은 따로 없었습니다. 취재진이 매장에 있는 여성 슬랙스 4종을 모두 살펴봤지만 뒷주머니가 있는 제품은 없었습니다.

쇼핑을 위해 매장을 찾은 20대 직장인 B씨는 "슬랙스를 종종 입는데 남성과 여성 디자인이 이렇게 다른 줄 몰랐다"며 "가격이 4만 9900원으로 동일한데 왜 여성 슬랙스에만 뒷주머니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여성용 의류제품의 경우 남성용 의류보다 옷 맵시를 더 살리기 위해 주머니를 적게 달거나 생략하기도 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핑크택스 막을 제도 만들어야 할까? 객관적 조사 먼저 의견도

전문가들은 여성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핑크택스를 없앨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실제로 2020년 미국 뉴욕주에서는 용도나 기능적 디자인 등에 차이가 없는 제품을 여성용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다르게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했습니다. 성차별의 장벽을 허물고 합리적인 제품을 동등한 경쟁의 장으로 올려놓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핑크택스 방지 제도를 만들어 강제하는 것 보다는 일단 정확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현재 관련 실태조사와 연구 사례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이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이르다"며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일 JTBC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대형 SPA 브랜드 매장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슬랙스 디자인이 다르게 판매되고 있었다. 사진은 취재진이 뒷주머니 유무 확인을 위해 슬랙스에 직접 손을 넣어본 모습. 〈사진=장연제 기자〉10일 JTBC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대형 SPA 브랜드 매장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슬랙스 디자인이 다르게 판매되고 있었다. 사진은 취재진이 뒷주머니 유무 확인을 위해 슬랙스에 직접 손을 넣어본 모습. 〈사진=장연제 기자〉
반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될 일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디자인과 가격 책정 등은 법적인 기준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조 판매자가 결정한다"며 "마케팅 차원에서 비슷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남성보다 여성 가격이 높게 책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한 소비자가 이러한 것에 대해 상담이나 민원, 피해구제를 신청한다 해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보상 등 대책을 지원받기가) 사실상 어렵다"며 "(제품, 서비스 등 가격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인데 만약 (정치권 등을 통해) 제도적 규제가 이뤄지면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는 등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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