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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비자 시스템…"운전면허보다 쉽고 시험문제 '족보' 돌아"

입력 2023-02-16 15:18 수정 2023-02-16 17:29

불법 취업·체류 현장을 가다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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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취업·체류 현장을 가다 < 하 >

■ 불법체류자를 인터뷰하다

2014년, 농축산어업에서 일할 수 있는 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인도네시아인 35살 아르야(가명) 씨.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아르야 씨는 "포항 멸치잡이 어선에서 3개월 정도 일했지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야반도주를 택했다"고 했습니다.

월 120만 원을 받느니 200만 원을 주는 공장에서 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불법 취업, 불법 체류의 길을 걸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경력이 쌓여 1년 전부턴 부산 건설현장에서 월 400만 원 이상 받는 조건으로 일해왔다고 했습니다.

아르야 씨는 "'불법체류 동료' 대다수가 지인에게 더 나은 일자리 소개를 부탁하거나 불법체류 조직 혹은 브로커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취업 알선 글을 보고 직장을 옮겨 다니며 숙식을 해결한다"라고도 했습니다.

■ "운전면허보다 따기 쉬운 한국 비자, 입국 수단 악용"

그런데 인터뷰 도중 한국에서 발급하는 비자 시스템이 너무 허술하단 지적을 했습니다.

E-9 비자 등 일부 비자들이 인도네시아 현지인들 사이에선 운전면허보다도 따기 쉬워 한국 이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일단 E-9 비자를 따서 한국에 들어온 뒤, 돈을 더 주는 곳으로 몰래 달아나면 된다는 식입니다.

■ 비자 필수 '한국어 시험'..정작 현지에선 '족집게식 족보' 유행

허점은 또 있었습니다.

외국인이 E-9 비자를 받으려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한국어 시험, EPS-TOPIK을 통과해야 합니다.
 
EPS-TOPIK 한국어 시험 예시EPS-TOPIK 한국어 시험 예시

200점 만점에 제조업은 110점, 건설업·농축산업은 80점, 어업 특례는 60점을 넘어야 합니다.

문제는 출제 패턴이 반복적이라, 응시생들은 '족집게식 족보'를 만들어 보며 손쉽게 시험을 통과하고 있다는 겁니다.
 
산업인력공단 편찬 한국어 표준 교재산업인력공단 편찬 한국어 표준 교재

취재를 더 해보니 산업인력공단이 펴낸 '한국어 표준 교재'에서 수년간 비슷한 패턴으로 각국 EPS-TOPIK의 문제로 나온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출제위원을 지낸 대학교수들은 "비자 발급 취지가 퇴색된 지 오래"라며 개선이 시급하단 목소리를 냈습니다.

대구대 김명광 교수는 문제 패턴만 보고 시험공부만 하면 산업 안전이나 직무 능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고, 계명대 민경모 교수는 교재에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정보나 실제 현장에 맞는 예시들을 담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표준교재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급여 담보 잡혀야" 극단 목소리부터 "사회적 합의 필요" 제안까지

국내에 있는 불법체류자는 41만 명을 넘었습니다.

외국인 다섯 명 가운데 한명 꼴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공장 밀집 공업단지 공장 밀집 공업단지

일부에선 합법적으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의 현장이탈을 막기 위해선 '한 달 치 급여만이라도 저축성으로 담보를 잡아 다음 달에 지급하자'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민정책전문가들은 불법 고용 자진신고나 자진 출국 시 범칙금 면제를 확대하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유학생들을 국내에 취업시키는 시스템을 추진하는 등 국민적 합의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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