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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가 지시한 일 다 할 의사 구합니다"…배짱 채용 공고로 본 시골 의료 체계

입력 2023-01-30 19:03 수정 2023-01-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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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 등 세부 조건 제시한 산청군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계약서 〈사진=배승주〉'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 등 세부 조건 제시한 산청군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계약서 〈사진=배승주〉

“연봉 3억 6천만 원에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의 고민입니다.
내과 전문의를 뽑는다며 지난해부터 공고를 올렸지만 허사였습니다.
이후 의사들에 대한 비난과 함께 지역 의료의 열악한 상황 등 여러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이후 마침내 지원자가 나타났습니다.
산청군은 3차례 공고 끝에 내과 전문의 3명이 지원서를 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의사협회는 물론 앞서 이곳에 지원하려고 했던
전문의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제대로 알고 나면 지원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겁니다.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김영철〉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김영철〉

도대체 산청군 보건의료원은 어떤 곳일까?

취재진이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휠체어를 탄 노인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합니다.

“아픈데 한번 짚어보세요. 갈비뼈?”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에서 휠체어를 탄 노인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하고 있다. 〈사진=김영철〉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에서 휠체어를 탄 노인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하고 있다. 〈사진=김영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자신이 보는 환자 2/3 정도는 성인이라고 답했습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환자의 상당수는 내과 환자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외래진료를 맡은 전문의는
소아청소년과와 마취통증의학과, 외과 등 3개 과에 공중보건의 3명뿐입니다.

공중보건의는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농어촌 등에서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입니다.

전체 환자의 절반가량인 내과는 아예 전문의가 없습니다.
지난해 4월 내과를 맡았던 공중보건의가 전역한 뒤 공석이 된 겁니다.

내과가 없는 산청군보건의료원 내부 모습 〈사진=김영철〉내과가 없는 산청군보건의료원 내부 모습 〈사진=김영철〉

이 때문에 산청군에선 연봉 3억 6천만 원을 걸고
지난해 11월부터 내과 전문의 채용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었던 겁니다.

이곳에 지원을 하고자 꼼꼼하게 내용을 살펴본 뒤 포기한
한 내과 전문의 A 씨는 업무가 비상식적이라 황당했다고 말합니다.

기존 공중보건의들이 해왔던 의료수준에
다른 부가 업무까지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외래를 보면서 응급실도 봐야 한다 내시경도 해야 된다. 초음파도 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무엇보다 1~2년마다 연장하는 계약직에 개인사업자를 등록하고,
손해보험에 가입하는 조건도 걸림돌입니다.

'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 등 세부 조건 제시한 산청군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계약서 〈사진=배승주〉'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 등 세부 조건 제시한 산청군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계약서 〈사진=배승주〉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손해보험 가입 등은 의료사고나 분쟁이 생겼을 때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지라는 조건이라며 말도 안 되는 채용공고라고 답했습니다.

A 씨는 노예계약과 다름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군수의 지도감독을 받으면서 군수가 지시한 일은 다해야 된다 이렇게 돼 있어요.”

이에 대해 산청군은 열악한 지역 의료환경을 고려해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공고를 올렸다고 해명했습니다.

경북 울릉군 보건의료원도 2년 전 연봉 3억 원에 비슷한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 9차례나 공고를 올렸습니다.

9차례 보건의료원 의사 채용 공고 올린 울릉군 홈페이지〈사진=김영철〉9차례 보건의료원 의사 채용 공고 올린 울릉군 홈페이지〈사진=김영철〉

결국 개인사업자 등록과 손해보험가입 등 논란이 된 내용을 뺀 뒤에 70세가 넘은 퇴직한 의사 2명을 구했습니다.

울릉군 보건의료원 관계자는 “정형외과 같은 경우에는 71살이고요. 가정의학과도 정년으로 퇴임하시고 오신 분입니다. 봉사하시겠다고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단순히 의사 처우 문제가 아닌 열악한 지역 의료 현실을 반영한 사례로
지역 공공 의대 설치 등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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