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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입력 2023-01-02 08:00 수정 2023-01-02 08:0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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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64)

탄소에 값을 매긴다. 오래전부터 나온 이 개념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은 그 세월 동안 달라져왔습니다. 1990년대, 해외 선진국의 탄소세 도입 가능성이 전해졌을 때엔 '아예 무관심'이었습니다. 2010년대, 다시금 이 이야기가 나오자 '실현 가능성 없는 선언적인 수사'라고 반응했죠. 2020년대, 제도가 구체화되어 등장하자 '그동안 마음껏 탄소 뿜어냈던 서방의 농간'이라고 합니다. 신속한 대응을 이야기하면 '서방 사대주의자'로 낙인찍기 바쁩니다. 지난 30년간 달라져온 반응이지만 '현실을 부정한다'는 면에선 궤를 같이 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지난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배출, 한국은 글로벌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에서 1850년 이래 세계 각국의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누적 배출은 세계 17위. EU 회원국 27개 나라 가운데 우리보다 배출량이 많은 나라는 독일, 영국, 프랑스, 폴란드, 이탈리아 총 5개 나라뿐입니다. 나머지 22개국은 우리보다 누적 배출량이 적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개도국과 군소도서국 등 취약 국가들의 피해를 지원하는 데에 있어 '한국 책임론'을 피할 수 없는 수준이죠. 지역으로 나눠봤을 때, 아시아의 누적 배출량은 13.3만MtC로 북미(13만MtC)보다 많습니다. '너희(유럽 또는 북미)처럼 우리도 늦게나마 뿜어내겠다는데 무슨 소리냐'고 더는 외칠 수 없는 것이죠.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산업구조 특성상 어렵다', '지금껏 우리가 뿜어낸 양은 서구 선진국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에너지전환은 한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은 과거의 주장일 뿐, 새해부터는 나오지 말아야 할 주장입니다. 과거에도 이는 '국내 논쟁의 장에서만 통하는 주장'일 뿐이었습니다. 숫자도, 논리도 없는 '부끄러운 주장'이기에 국가간 논의의 장에선 통할리 만무한 궤변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논쟁을 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어떻게 감축을 지원할지, 대외적으론 우리의 어떤 노력들을 더 부각시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현실을 만회할지 고민하는 편이 더 생산적일 겁니다.

수출입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건을 교역하는 것인 만큼, 자동차라면 대수로 표현할 수도 있고, 철강이라면 톤으로 표현할 수 있죠. 여러 항목을 다 함께 살펴볼 때엔 원, 달러, 유로 등의 화폐단위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산업연구원은 이를 이산화탄소로 살펴봤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수출하고, 수입하는지 말이죠. 탄소에 값을 매기는 세상이 찾아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EU의 탄소국경조정, CBAM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찾는 것은 '탄소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지난주, 국가별 이산화탄소 순수출량과 순수입량을 살펴봤습니다. '화폐'를 기준으로 무역지수를 바라보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면, 수출 또는 수입하는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를 토대로 '탄소무역지수'를 따져본 것이죠. 순수출국이라면, 지금과 같은 탈탄소 시대에서 더 큰 위기에 빠진 만큼 즉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반대로 순수입국이라면, 이 지위를 십분 활용해 EU의 CBAM과 같은 카드를 만지작거리겠죠.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이를 통해, 왜 EU가 탄소국경조정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는지, 왜 미국이 같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죠. 당장 한국과 EU의 관계를 봐도 이는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정부는 CBAM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26년까지의 과도기간 동안, 우리 기업들의 CBAM 적응을 지원하고, CBAM에 대응하기 위한 배출 데이터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의 경우 “추가적인 탄소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사업장의 탄소배출량 측정과 배출량 자료 관리 능력을 강화하고, CBAM 관련 수출 행정 및 인증 절차를 숙지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론 탄소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생산 공정을 확충하고, 저탄소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수출품목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그럼에도 여전히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CBAM의 영향을 무시하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이는 EU의 CBAM이 이들 제품의 수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면 분명 알 수 있습니다. 애써 그 중요성을 가리려 한다 해도 결코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산업연구원은 지난 2021년 철강과 알루미늄, 시멘트와 비료 등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CBAM의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선 최초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나라입니다. 분명 의미있는 일이고, EU에 이를 어필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려면 우리나라의 탄소 가격과 EU에서의 탄소 가격이 비슷해야겠죠. 당시 산업연구원은 3가지의 시나리오로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EU ETS와 우리나라 배출권의 가격 차이가 5.9달러, 33.1달러, 55.4달러일 때로 나눠서 말이죠.

가격의 차이가 클수록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커집니다. 55.4달러의 차이가 있다는 가정 하에, 철강은 20.6%, 알루미늄은 21.9%, 시멘트는 3.1%, 비료는 3%의 수출 감소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EU의 CBAM은 결국 철강에 대해선 마치 9.7%의 관세가 부과되는 효과를 갖게 될 거라는 것이 산업연구원의 계산 결과였습니다. 알루미늄엔 7.1%, 시멘트와 비료엔 3.2%의 관세가 붙는 것과 같은 셈이고요. 상호 무관세로 무역을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겁니다.

혹자는 '중국의 경우, 비용 인상 효과가 더 커지는 만큼 한국의 수출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낙관론입니다. 국가별 조강 생산량과 탄소 집약도, 에너지 집약도를 따져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당장 중국의 생산량은 우리가 따라잡으려야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EU 수출 시장을 한정으로 생각하더라도, 중국의 대(對) EU 철강 수출은 금액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배에 가깝습니다. 갑자기 EU 시장에 중국을 대체하는 선수로서 나서기가 어려운 것이죠. 게다가, 우리보다 조강 생산량이 많은 미국은 철강 1톤을 생산할 때, 불과 0.96톤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중입니다. 우리나라(1.46tCO2/t-steel)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는 것이죠. 중국산 철강의 악재가 우리의 기회라기보다, 미국과 EU 역내 국가의 기회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또한, EU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뿐 아니라 그린수소 생산 역량의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수소를 '쓸 줄만 아는' 나라지만, EU는 수소를 '만들 줄도 아는' 나라죠. 현재 유럽에선 다양한 수소의 용처가 있습니다만, 그중 EU 회원국들이 집중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수소환원제철입니다. 우리는 이제서 R&D를 시작해 '꿈의 기술'처럼 여기는 수소환원제철이지만, 앞선 연재를 통해 자세히 전해드렸듯, 이미 유럽에선 수소를 이용한 그린스틸을 생산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러한 그린스틸로 자동차를 만들기까지 이르렀죠.

 
스웨덴 철강기업 SSAB가 생산한 그린스틸로 볼보CE가 그린스틸 트럭을 생산했다.스웨덴 철강기업 SSAB가 생산한 그린스틸로 볼보CE가 그린스틸 트럭을 생산했다.
2022년 1월, 스웨덴 철강기업 SSAB의 CTO(최고기술경영자)인 마틴 페이와의 단독 인터뷰를 담은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이 '수소차' 머무는 사이 수소로 자동차 만든 유럽〉에서 파일럿 생산한 그린스틸로 스웨덴의 볼보CE(건설기계)가 세계 최초의 '그린스틸 트럭'을 생산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볼보트럭은 세계 최초 그린스틸 전기트럭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이를 인도했다.볼보트럭은 세계 최초 그린스틸 전기트럭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이를 인도했다.
당시의 일이 첨단 기술력을 뽐내기 위한 프로토타입에 가까웠다면, 그린스틸로 자동차를 만드는 일은 어느새 현실이 됐습니다. 2022년 11월, 볼보트럭이 SSAB의 그린스틸로 만든 세계 최초의 트럭을 생산해 실제 소비자에게 인도된 겁니다. 이 트럭은 전기 트럭으로써, 그린스틸로 만든 말 그대로 '그린트럭'이었습니다. 여기에 SSAB는 자국 자동차 기업인 볼보뿐 아니라 미국의 특수차량 제조사 오시코시와도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상용차 시장으로의 철강 공급에 본격 뛰어든 겁니다.

한중일 아시아 3국이 쥐고 있는 글로벌 철강 산업의 패권을 탈탄소 전환에 발맞춰 뺏어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곳이 EU입니다. '한국 철강 산업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중국산의 파이를 가져올 기회다'라고 이야기하기엔 우리 철강 산업의 탄소 감축 성과가 너무도 미약할 따름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이쯤되면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EU의 에너지전환과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그저 지구, 환경만을 위해서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 말입니다. 또한, CBAM 대상 품목이 지금의 6종에 그치지 않고 금방 확대될 것이라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연구원은 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산업별 EU 교역에 내재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꼽았습니다. 탄소 순수입량이 많은 품목일수록 CBAM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이번에 CBAM 대상이 된 품목이 광업, 기초금속, 가공금속, 비철금속에 해당한다면, 앞으로 확대될 품목으로는 컴퓨터 및 전자제품, 코크스 및 정유(석유화학), 전기장비가 유력해보인다는 것이 산업연구원의 판단입니다. 이와 더불어 고무 및 플라스틱 또한 EU가 CBAM 대상으로 삼으려는 품목 중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EU의 CBAM만이 아닙니다. 미국도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법안이 의회 계류중인 상태입니다. 바로, 공정한 전환과 경쟁법(Fair Transition and Competition Act)입니다. 개념은 동일합니다.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수입되는 제품엔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 말이죠. 이 법안에 담긴 주요 품목도 CBAM과 대동소이합니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이죠.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연간 50억~160억달러의 세수가 기대된다고 합니다. 산업연구원은 이 법안에 대해 “미국 제조업과 노동자를 배려한 조치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산업연구원은 미국과 한국의 배출권 가격 차이가 각각 5.9달러, 33.1달러, 55.4달러일 때, 한국의 대미 수출 효과에 대해서도 분석했습니다. 현재 미국은 아직까지 연방 차원의 배출권거래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10여개 주에서 주차원의 배출권거래제가 운영중이죠. 현재 주 단위의 거래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곳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의 배출권과 우리나라 배출권의 가격 차이는 2만원가량. 앞으로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산업연구원의 시나리오 중 중간값(33.1달러 차이)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도 철강의 영향이 제일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출이 8.6% 줄어드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죠. 알루미늄 역시 탄소국경세가 4.3%의 관세 수준으로, 수출이 6.9%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할 거라는 것이 산업연구원의 분석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EU CBAM의 적용 시기가 다가오고, 앞으로 대상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우린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이 제도는 나쁜 거야, 자유무역을 훼손하는 일이야'라고 국가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일이 실제 국익에 부합하는 일일까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그것도 우리나라의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이 일찍이 경고했던 일이 이제서 현실로 다가왔는데 왜 시민들은 아직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걸까요.

“CBAM 과도기간 이후 EU 집행위는 이행성과와 적용대상의 확대(품목 확대, 서비스 산업 포함 여부 등) 가능성을 재평가할 예정이다. 확대 가능성이 높으므로 대상품목 및 배출부문의 확대 가능성까지 고려해 범산업 차원에서 탄소국경조정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경고한 내용입니다. 부디, 30년 전처럼 전문가들의 경고를 그저 지나치지 않기를 바라며 새해 첫 [박상욱의 기후 1.5]를 마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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