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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수십년전부터 이어졌던 경고에도 '발등의 불'? 탄소국경조정

입력 2022-12-19 08:00 수정 2022-12-19 08:0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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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62)

“EU와 미국 등이 탄소세를 부과하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상품 15개의 수출은 연간 16억 3천만달러 감소할 것이다.”

산업연구원의 한 박사가 이같이 경고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각종 노력과 비용을 들이는 자국 상품의 대외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한 조치로,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선 상계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거죠. 우리가 EU와 미국, 일본 등에 내야 하는 상계관세는 3억 6천만달러에 달한다는 설명입니다. 단순히 상계관세를 내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이는 수출 감소로도 이어져 대미 수출에 있어서는 8.9%, 대일 수출은 2.7%, 대EU 수출은 1.5%의 타격을 입게 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탄소세에 직격탄을 맞는 자동차, 석유화학, 전자제품 등은 우리의 주력 수출 상품이고, EU와 미국은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인 만큼, 그 영향은 매우 클 거라는 경고입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8년 전, 1994년 여름에 나온 경고입니다. 탄소 배출은 곧 경제적 손실, 특히나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엔 피할 수 없는 손실이라는 경고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EU와 우리나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수십년전부터 이어졌던 경고에도 '발등의 불'? 탄소국경조정
1990년 이래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최근 연도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해봤습니다. 먼저, 이 경고의 근간이 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입니다. 분명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EU는 우리보다 1인당 탄소배출량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1994년, 우리나라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7.3톤, EU는 7.1톤으로 역전된 이후, 격차는 커져만 갔습니다.

EU는 1990년부터 줄곧 내림세를 이어갔습니다. 일시적 '반짝 상승'이 있었음에도, 감축 기조는 분명했죠. 반면, 우리나라는 줄곧 증가세를 이어갔습니다. 우린 EU와 반대로 '반짝 감축'이 있었죠. 1998년과 2020년, IMF와 코로나 19의 해였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 때문이 아닌, 심각한 경제 침체로 인한 비자발적 감축이었기에 낙폭이 컸고, 이후 다시 바로 증가세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배출량은 EU 대비 5.9톤이나 많게 됐습니다.

1인당 전력 사용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0년의 세월 동안, EU의 1인당 전력 사용량은 거의 변동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1990년 1인당 4.8MWh의 전력을 사용했던 유럽에선 2020년 1인당 5.3MWh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과 0.5MWh 정도 늘었을 뿐입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 전기차는 그저 엑스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시대와 '전기 없이는 기초적인 일상생활조차 마비되는 시대'의 전력 사용량이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죠.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2.4MWh에서 10.8MWh로 4.5배가 됐습니다. 밀레니엄을 맞이한 2000년,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 사용량은 5.9MWh로 5.2MWh의 EU를 넘어선 이후 줄곧 증가를 거듭했습니다. 한국만 스마트해지고, 유럽은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렀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전등을 켜는데, 유럽은 등불을 비추기라도 한 것일까요?

물론, 우리도 EU처럼 '긍정의 변화'를 맞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1,000달러의 GDP를 얻기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의 양은 계속해서 줄었습니다. 경제의 에너지집약도가 계속해서 낮아졌다는 뜻입니다. 30년의 세월, 우리는 1,000달러를 벌기 위해 최대 10.4GJ(1997년)의 에너지를 쏟아부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을 정점으로 이는 감소세를 이어가 7.1GJ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문제는, EU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여낸 결과인 2020년 7.1GJ이라는 GDP 1,000달러당 총에너지 공급량. EU는 이미 1991년, 이 수치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엔 이를 3.9GJ까지 줄여냈고요. 같은 액수의 돈을 벌기 위해 EU는 우리의 55% 수준의 에너지만 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흔히들 이런 데이터를 마주할 때마다 '제조업 비중이 높아서 그렇다'는 반박은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그래서, 제조업의 에너지집약도를 살펴봤습니다. 이는 EU 차원의 통계를 찾아볼 수 없어 EU 회원국 중 하나인 독일과 비교해봤습니다. 20년의 세월, 격차를 줄이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2019년 제조업 에너지집약도는 4.6MJ/USD PPP로, 독일(3.1MJ/USD PPP)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며, 20년 전인 2000년 독일의 집약도(4.2MJ/USD PPP)보다도 많습니다.

약 30년 전 이뤄졌던 경고는 지난해 여름, 구체화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EU 집행위가 강화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각종 정책, 법안을 담은 〈핏 포 55(Fit for 55)〉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말이죠. 과거 '탄소세'라고 불렸던 것의 이름은 탄소국경조정(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으로 정해졌고요. 그리고 과거에 EU와 미국, 일본의 탄소세 도입을 경고했던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이 경고를 더욱 구체화했습니다.

“한국과 EU 탄소가격의 격차를 최대치로 가정할 경우,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에선 각각 9.7%, 7.1%의 관세가 부과되는 효과가 발생하고, 20.6%, 21.9%의 수출 감소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22년 12월 현재, 한국에선 범부처, 민관 합동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태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십년전부터 이어졌던 경고에도 '발등의 불'? 탄소국경조정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선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범부처 EU 탄소국경조정(CBAM) 대응현황 점검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엔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외교부, 환경부 장관이 참석했습니다. 이 회의에 앞서,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왔습니다. 대내적으로는 민관 합동 논의를 통해 산업계의 우려를 듣고, 전문가와 함께 대응전략을 논의하는 세미나도 여러 차례 개최했습니다. 또한, EU에 직접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이날 점검회의에선 어떤 진전된 내용이나 그간 노력의 성과가 담겼을까요. 회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간 정부는 여러 채널을 통해 EU 측과 적극 협의해왔다.
-CBAM의 최종법안을 도출하기 위한 3개 기관(EU 집행위원회, 각료이사회, 의회)의 3자협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 내용은 잠정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정합의 결과,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을 대상으로 한다. 여기에 스크류, 볼트 및 일부 품목이 더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내년 10월 1일부터 전환기간(시범기간)이 시작되고, 본격 시행은 2026~2027년부터 이뤄진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우리 기업의 대응능력을 강화하고, 국내 탄소배출량 검증인력 및 기관 등 관련 인프라를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며 “통상교섭본부를 중심으로 전환기간 EU와 협의를 지속하고,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무역장벽에 대한 움직임도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것”을 당부했다.
-12월 말,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대(對) EU 협의방안 및 국내 대응방향을 추가 논의한다.

EU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해외에서 EU에 상응하는 수준의 저감 성과나 노력 없이 만들어진 상품에 대해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입장 말입니다. '자유무역주의 훼손', '또 다른 무역장벽의 등장' 등등의 표현을 통해 이를 비판한다 하더라도 EU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CBAM의 대상 품목을 늘리려는 시도가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의 우방인 미국과의 공동 대응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 역시 이와 비슷한 제도를 담은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 상태니까요.

30년 전부터 이어졌던 경고였지만, 실제 CBAM이라는 제도가 등장하고 나서야 대응하려니 쉬울 리 만무합니다. 처음 '탄소세'라고 불렸던 시기부터 이 카드를 쥐고 있던 EU, 미국 등이 관련 제도의 절차적 하자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엔 '불공정'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그리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십년전부터 이어졌던 경고에도 '발등의 불'? 탄소국경조정
지난 2021년, 우리나라가 EU에 수출한 CBAM 대상 품목의 수출 규모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철강은 43억달러, 알루미늄은 5억달러, 비료는 480만달러, 시멘트는 140만달러에 이릅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전체 합금강 및 합금강 반제품의 수출 중 EU 수출 비중은 31%, 국내 전체 스테인리스 강선 수출 가운데 EU 수출 비중은 30.3%에 달하죠. 철강 수출에 있어 EU 시장의 비중은 10.7%입니다. 과연,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무시해서 될 일일까요.

한국 경제에서 EU 시장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지, 반대로 EU에 있어 한국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지. CBAM과 관련한 '지피지기'는 다음 주 연재를 통해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십년전부터 이어졌던 경고에도 '발등의 불'? 탄소국경조정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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