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이장면]손흥민처럼 잠시 멈춰라, 메시처럼 때론 걸어라

입력 2022-12-17 07:38 수정 2022-12-17 11:25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이번 월드컵 기간 ESPN이 내놓은 '손흥민의 일시정지' 기사는 참 좋았습니다. 우리 축구의 16강 길을 열어준 골, 그러니까 포르투갈전의 마지막 순간을 세밀하게 들여다봤습니다. 손흥민의 치고 달리는 순간부터 황희찬이 마지막에 슛을 결정하는 순간까지, 그 짧은 시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묘사했는데 그 분석이 신선했습니다. '환상적인 골'이란 수식어가 놓치고 있는 그 순간을 차분하게 살펴본 게 돋보였습니다. 몇 문장을 소개합니다.
손흥민이 60m 넘게 공을 몰고 달려가서 패스한 순간을 이렇게 포착했습니다.
 
손흥민의 질주는 언제나 시원합니다. 포르투갈전에선 그 질주 만큼이나 잠깐의 멈춤이 경기 결과를 바꿨습니다. (사진=연합뉴스)손흥민의 질주는 언제나 시원합니다. 포르투갈전에선 그 질주 만큼이나 잠깐의 멈춤이 경기 결과를 바꿨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나서 잠깐 멈춥니다. 하나, 둘. 손흥민이 얼마나 오래 공을 잡고 있는지 셀 수 있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서 앞에 선 포르투갈 수비수 3명을 쳐다봅니다. 다음 순간 왼쪽에서 페널티지역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황희찬을 봅니다. 잠깐의 정지가 없었다면 그 다음에 뒤따를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사의 마무리도 훌륭했습니다.
 
이 순간 기억하시나요. 손흥민이 포르투갈 수비 사이를 뚫고 공을 건네며 황희찬의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진=연합뉴스)이 순간 기억하시나요. 손흥민이 포르투갈 수비 사이를 뚫고 공을 건네며 황희찬의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역습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또 이를 위해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손흥민의) '축구 지능', 또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일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정심', 수비수들이 에워쌌을 때 공을 그 사이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또 동료에 대한 '믿음'. 이런 것들이 좋은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가르는 일종의 작은 순간입니다.

모두가 손흥민의 무서운 '질주'에 찬사를 보낼 때, 잠깐의 '멈춤'을 주목한 시각이 놀라웠죠. 축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됐을 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메시 역시 그런 재미를 던져줍니다.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많이 걸어다니는 선수'로 확인받았으니까요. 축구 하면 많이 뛰고, 빨리 달려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메시는 그런 인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영국의 스포츠 매체 '토크스포트'는 이번 월드컵에서 메시가 가장 많이 걸어다닌 선수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미 조별리그 통계에서도 이 통계는 유효했죠. 메시는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많이 걷는 선수로 분석됐습니다.
 
메시는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걸어다니는 선수로 분석됐습니다. 그래도 축구는 잘 합니다. (사진=EPA연합뉴스)메시는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걸어다니는 선수로 분석됐습니다. 그래도 축구는 잘 합니다. (사진=EPA연합뉴스)
이 매체에 따르면, 메시는 아르헨티나의 4강전까지 6경기를 뛰면서 53.11km를 누볐고, 그 중 30.61km를 걸어다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월드컵 경기에서 절반 이상(57.64%)을 걸어다닌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떻게 축구 선수가 이렇게 많이 걸어다닐 수 있는지 의아하죠.

 
그렇다고 게으른 건 아닙니다. 공을 잡으면 속도 기어를 높입니다. (사진=AP연합뉴스)그렇다고 게으른 건 아닙니다. 공을 잡으면 속도 기어를 높입니다. (사진=AP연합뉴스)
메시의 '걸어다니는 축구'는 영국 BBC에서도 집중조명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수비수 출신 퍼디낸드는 '걷는 축구'를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메시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갑자기 살아난다”면서 “어느 위치에서도 경기를 풀어낼 수 있는 선수”라고.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의 과거 발언도 상기시켰죠. 과르디올라는 “메시가 걷는 건 경기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다. 머리를 계속 움직이면서 수비라인의 오른쪽, 왼쪽을 살피고 그 중에서 약점을 찾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게으른 축구가 아니라 어슬렁거리면서 뭔가 기회를 엿본다는 거죠. 한편으로 그 '느림'이 있기 때문에 한 순간에 치고 들어가는 '빠름'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거겠죠. 축구는 계속 빠른 것보다는 속도의 차를 통해 상대를 따돌리는 과정이라 풀이할 수 있습니다.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음바페의 프랑스와 만납니다. (사진=연합뉴스)메시의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음바페의 프랑스와 만납니다. (사진=연합뉴스)

한 없이 질주하고, 더 빨리 뛰어야 성공할 것처럼 보이지만 잠시 멈춰서고, 때론 걸으면서도 축구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일궈낼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축구의 또다른 면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듯. 월드컵은 축구 보는 법도 한번쯤 되돌아보게 합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