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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로 비롯된 손실과 피해…누가, 어떻게 책임지나

입력 2022-11-21 08:00 수정 2022-11-21 08:1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8)

국경 없는 손실과 피해, 그리고 책임 (상)

기후변화 대응 위해 COP27서 다시 머리 맞댄 국제사회
"온실가스 줄이자" 선언 넘어 구체화된 논의
'손실과 피해' 그 책임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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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8)

국경 없는 손실과 피해, 그리고 책임 (상)

기후변화 대응 위해 COP27서 다시 머리 맞댄 국제사회
"온실가스 줄이자" 선언 넘어 구체화된 논의
'손실과 피해' 그 책임은 어디에 있나

지난해 영국에 이어 올해엔 이집트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렸습니다. 올해로 27번째를 맞은 COP27의 키워드는 바로 '손실과 피해(Loss & Damage)'입니다. 이는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려가 아닌 만큼, 논의 자체의 무게감은 매우 커졌습니다. 과거, 우리가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엔 “앞으로 ○○년 후, 지구의 ○%가 물에 잠기고, ○만명이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면, 이젠 그 피해가 실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지난해, 아프리카 지역은 심각한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그나마 지중해와 인접해 상황이 나은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은 가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만 5800만명이 영양 부족을 겪었죠. 그런데 계속된 가뭄 속, 이 지역에는 '단비'가 아닌 '폭우'가 찾아왔습니다. 목마름을 풀어줄 비가 내린 것이 아니라, 곳곳이 침수되고 삶의 터전을 앗아간 집중호우가 내린 것이죠. 결국 남수단에서만 430만명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로 비롯된 손실과 피해…누가, 어떻게 책임지나
이렇게 2021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이주자의 수는 전 세계 이주자 수의 3분의 1을 넘었습니다. 한 대륙에서 1400만명 넘는 사람이 다른 나라 혹은 난민촌을 찾아 떠난 겁니다. 과거, 이 지역의 이주는 내전이나 폭정 등 불안정한 정세와 폭력을 이유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재해로 이주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 지역 이주자 가운데 5명 중 1명은 내전이나 분쟁이 아닌 '기후변화'로 고향을 등져야만 했습니다.

미국 노터데임 대학은 해마다 ND-GAIN 지수를 발표합니다. 이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각종 문제에 따른 각국의 취약성과 대응력을 종합한 지수입니다. 2020년, 가장 높은 ND-GAIN 지수를 보인 나라는 노르웨이(75.4)였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취약도, 이에 대응하는 능력 모두에 있어 우수한 역량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국(67.2)은 세계 15위로, 상위권에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하위권에 든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최하위 10개국을 살펴봤습니다. 이들 나라의 ND-GAIN 지수는 우리나라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당장의 기후변화에 취약할뿐더러, 그로 인한 각종 재난재해에 대응할 역량 또한 부족했던 것이죠. 10개 나라 중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 9개 나라는 모두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로 비롯된 손실과 피해…누가, 어떻게 책임지나
그런데, 지난해 대륙 전반에 걸쳐 심각한 가뭄으로 큰 피해를 겪었던 아프리카에 올해엔 폭우와 홍수가 찾아왔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유엔 WFP(세계식량계획)의 크리스 니코이 서아프리카 본부장을 만나 들어봤습니다.

“같은 기후위기가 찾아왔을 때,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은 더 큰 피해를 겪게 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도가 더 큰 것이죠. 특히 올해엔 대규모 홍수가 서아프리카 전반을 덮치며 피해가 이어졌습니다. 차드의 경우, 10월 전후로 100만명 이상이 홍수 피해를 입었고, 농경지와 목축지의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348만명 가량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농경지 63만 7,000ha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차드나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이 지역 다수의 국가들은 대부분 농업과 목축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을철 추수를 앞둔 상황에서 폭우와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 것이죠. 또한 가축을 키우던 장소가 홍수로 물에 잠기고, 가축들이 죽게 됐습니다. 결국,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식량의 손실, 식량안보의 위기로 이어지는 겁니다.”
크리스 니코이 유엔 세계식량계획 서아프리카 본부장

 
폭우와 홍수로 심각한 침수 피해를 겪은 차드의 농경지. (사진제공: 유엔 세계식량계획)폭우와 홍수로 심각한 침수 피해를 겪은 차드의 농경지. (사진제공: 유엔 세계식량계획)
WFP에 따르면, 올해 홍수 피해로 이 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수만 5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피해지역의 복구는 고사하고, 당장 갑작스럽게 집과 일터를 잃은 이들에게 쉴 곳과 먹을 것조차 부족한 상황인 것이죠. 니코이 본부장은 “일부 지역의 경우,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원의 절반 밖에 지원받지 못할 정도”라고 현지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했습니다.

안 그래도 기후위기 대응에 취약한 지역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현상은 더욱 빈번해지고,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라는 굉장히 광활한 지역 모두, 점차 악화하는 기후변화의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만 특히 사헬 지역에 집중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역대 통계를 들여다보면, 사헬 지역엔 5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분명 가뭄도, 홍수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최근 20년의 추세를 보면 이전과 큰 차이가 나타납니다. 빈도가 잦아질뿐더러, 한 번 찾아오는 재해의 피해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겁니다.

우선 전과 달리, 심각한 가뭄이 찾아오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7~10년에 한 번 겪을 법한 심각한 가뭄이 이젠 2~3년에 한 번 꼴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홍수 또한 더욱 빈번해지고 있고요. 지난해만 해도, 우기가 평소보다 매우 늦게 시작해서 평소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결국 강수량은 평년 대비 매우 적었습니다. 이는 수천만명의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반대로 서아프리카 지역에 80년간 최악의 폭우와 홍수가 찾아왔습니다.

결국, 기후변화로 온갖 극한 기상현상 기록이 갈아치워지면서 이처럼 재난과 또 다른 재난 사이의 시간 간격은 갈수록 좁아지게 됐습니다. 결국 그 피해 역시 계속해서 누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크리스 니코이 유엔 세계식량계획 서아프리카 본부장

 
크리스 니코이 유엔 세계식량계획 서아프리카 본부장이 JTBC와의 인터뷰에서 지역내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크리스 니코이 유엔 세계식량계획 서아프리카 본부장이 JTBC와의 인터뷰에서 지역내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재난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아프리카와 같은 특정 지역이 취약한 것처럼, 한 지역에서 재난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그 피해 양상이 모두에게 같지만은 않습니다. 니코이 본부장은 “아프리카 대륙 내 모든 계층이 피해를 봅니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노년층과 아이, 여성은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이주'라는 선택지를 쉽게 택하지 못한다는 설명입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홍수나 가뭄에 발 빠르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또한, 니코이 본부장은 농민 역시 취약한 계층으로 꼽았습니다. 땅에 의존해 곡물이나 가축을 키우는 이들에게 가뭄과 홍수는 좀처럼 대처할 수 없는 재해이기 때문입니다.


 
올 가을 기록적인 홍수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나이지리아의 모습. (사진제공: 유엔 세계식량계획)올 가을 기록적인 홍수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나이지리아의 모습. (사진제공: 유엔 세계식량계획)
결국 이같은 '손실과 피해'에 대한 지원,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 규명'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COP27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진 '손실과 피해'에 대한 니코이 본부장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 즉 '손실과 피해'가 국가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작고 힘 없는 나라나 지역일수록 그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으니까요. 선진국들이 이들처럼 기후변화의 전선에 내몰린 국가와 지역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인 이유입니다.

또한, 이는 기후정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 선진국들의 책임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피해를 입는 나라들보다 선진국의 배출량이 더 많으니까요. 이는 선진국들에 그저 '친절과 관용을 배풀어달라'는 문제가 아닙니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지원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죠.”
크리스 니코이 유엔 세계식량계획 서아프리카 본부장

실제, 산업화가 본격화한 1850년 이래 아프리카 지역이 뿜어낸 이산화탄소의 양은 2.8%에 불과합니다. 1850년부터 2021년까지의 누적 배출량 가운데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유럽(30.8%)이죠. 유럽에 이어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한 지역은 아시아(28%)입니다. 흔히들 북미일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북미의 비중은 27.5%로 아시아보다 적었습니다. 이처럼 배출 지역은 국경선을 따라 구분지을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인 '이산화탄소'는 국경에 굴하지 않고 세계 각지로 퍼집니다. 그로 인한 기후변화 역시 온갖 극한 기상현상을 세계 각지에 일으키고 있고요.

 
환경재단과 이제석광고연구소는 COP27이 진행중인 이집트 현지에서 거리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제공: 환경재단)환경재단과 이제석광고연구소는 COP27이 진행중인 이집트 현지에서 거리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제공: 환경재단)
“뿌린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라는 반전 캠페인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이제석광고연구소의 이제석 대표는 온실가스의 이러한 속성을 담아 COP27이 개최 중인 이집트에서도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환경재단과 함께 거리 사진전에 나선 겁니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작품엔 “기후엔 국경이 없다! 네가 한 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The Climate has No Borders! Pay for What You've Done!)”는 메시지가 적혀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외침에서 한국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역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 대한민국의 지분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 내용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로 비롯된 손실과 피해…누가, 어떻게 책임지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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